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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2, 디즈니가 제출한 미국의 반성문


입력 2019.12.02 08:20 수정 2019.12.02 08:09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이슈분석> 메시지를 먼저 정한 영화

<하재근의 이슈분석> 메시지를 먼저 정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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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내용 있음)‘겨울왕국2’가 폭발적인 흥행가도를 달린다. 전편 ‘겨울왕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 주 초반에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평일에도 관객이 몰려들어 최종 관객은 ‘겨울왕국’의 1029만 6101명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이 영화의 흥행과 관련해 어린이 입장 금지관 논란으로 어린이 관객이 주목받고 있지만, 성인 여성 관객도 흥행 열풍을 이끄는 핵심 관객층이다. ‘겨울왕국’이 전통적인 여성상의 전복을 그리며 여성들을 후련하게 했기 때문에 여성 관객의 기대와 지지가 ‘겨울왕국2’에도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겨울왕국’에서 전복된 여성 캐릭터와 관련해선, 주로 주체성이 많이 거론됐는데 그것 말고 ‘요염함’도 있었다. 엘사가 각성하고 홀로서기를 선언할 때 요염한 자태로 바뀐다. 기존 애니메이션에서 성적인 도발은 오로지 악녀들만의 몫이었다. 여주인공은 순수, 순결로만 무장해야 했다. 엘사가 그 틀을 깬 것이고, 이번 ‘겨울왕국2’에서 올라프가 엘사의 ‘몬로워크’를 패러디하며 한 번 더 강조한다. ‘겨울왕국2’에서 엘사는 몬로워크에서 바지로 한 단계 더 넘어갔다. 여성적 옷차림을 일부 벗어던진 것이다.

이 대목에선 설리가 떠오른다. 설리도 여아이돌에게 순수, 순결만 요구하는 한국 사회 풍토에서 성적 도발 이미지로 알려졌다가 마녀사냥을 당했다. 언론과 누리꾼으로부터 범죄자보다 더한 취급을 받았다. 나중에 설리는 여성 속옷을 착용하지 않으면서 여성적 옷차림의 일부를 거부했는데 이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겨울왕국’과 달리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현실엔 마법이 없기 때문일까? 그런 현실이어서 더욱 여성 관객들이 상영관으로 몰려들 것이다.

이번 ‘겨울왕국2’에서 디즈니는 마법을 대폭 확충했다. 1편에선 얼음마법만 등장했는데, 이번엔 바람, 땅, 불, 물의 정령이란 이름으로 마법들이 총출동한다. 이렇게 마법 장르를 늘린 것은 시각효과를 더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서일 것이다. 거기에 더해 메시지도 있다. 바람, 땅, 불, 물을 합치면 자연이다. 즉 대자연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 네 요소가 모두 필요했던 것이다. 엘사의 마법은 이 대자연과 연관이 있는 것이었다.

엘사와 안나는 과거의 비밀을 찾다가 선조가 저지른 잘못에 직면한다. 그리고 엄청난 피해가 예상됨에도 잘못을 바로 잡고 사과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 잘못이란 일차적으로 미국의 잘못을 연상하게 한다. 대자연을 해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몰살시킨 원죄다. ‘겨울왕국2’는 그 잘못을 바로 잡아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역설하는 듯하다. 더 나아가 서구문명 자체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 서구문명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이 미대륙에서 했던 것과 같은 일을 저질렀다.

전통적으로 왕자님이 타자를 물리치고 공주를 차지하는 내용을 그렸던 디즈니가 작심하고 미국과 서구문명의 반성문을 제출한 것이다. 제작진은 처음부터 결말을 상정하고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메시지를 먼저 정한 영화다.

엘사와 안나의 투톱 체제도 제작진의 의도였다. 전통극에서 여성들은 흔히 서로 질투하는 관계인데 여기선 둘이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1편의 깜짝 흥행으로 여성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작진이 얻었다고 한다. 이번 2편이 더 크게 흥행했으니 다음 편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겨울왕국2’의 흥행은 한국에선 아쉬움을 남겼다. 개봉 첫 주말인 30일의 상영점유율 73.9%로 스크린을 유감없이 독점했다. 원주민들이 누리던 대자연을 독차지했던 선조의 잘못을 반성한 영화로, 한국의 스크린을 독차지한 것이다.

‘군함도’, ‘광해’ 같은 한국 영화가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스크린 독과점을 했을 땐 엄청난 질타가 쏟아졌는데 ‘겨울왕국2’의 독점엔 누리꾼 비판도 없다. 씁쓸한 일이다. 이번엔 한 멀티플렉스 지점에서 전 상영관, 전 회차를 ‘겨울왕국2’가 100% 싹쓸이한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자본의 마법을 바람, 땅, 불, 물의 정령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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