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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불의에 YES맨 되지 말랬더니 국민에게만 NO맨 된 환경부


입력 2019.12.26 07:00 수정 2019.12.25 20:39        최승근 기자

청와대 청원 등장한 종이박스 논란…환경부 적극적 중재자 역할 아쉬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의식, 정부 뒷짐만 진다는 지적 불러

청와대 청원 등장한 종이박스 논란…환경부 적극적 중재자 역할 아쉬워
‘나만 아니면 된다’는 안일한 의식, 정부 뒷짐만 진다는 지적 불러


서울시내 주요 대형마트에서 사용 중인 장바구니. 아래가 56L 대형 장바구니.ⓒ데일리안 서울시내 주요 대형마트에서 사용 중인 장바구니. 아래가 56L 대형 장바구니.ⓒ데일리안

“종이박스 자율포장대를 없앤다면? 국민들은 그 크기의 대형장바구니를 구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장바구니는 박스보다 작습니다. 분명 작습니다. 55L 대형장바구니라 해봐야 집에서 쓰는 빨래통 크기입니다.”

지난달 ‘대형마트 종이박스 자율포장대 운영 중단을 하지 말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대형마트에 확인해 본 결과 정확히는 55L가 아니라 56L가 맞다.

하지만 핵심은 대형장바구니조차 종이박스보다 크기가 적다는 것이다. 무게는 별로 나가지 않지만 포장재로 인해 부피가 큰 가공식품이나 모양이 제각각인 과일, 채소 등 신선식품의 경우 장바구니만 이용하기에는 불편하다는 게 소비자들의 주장이다.

동네마다 있는 편의점과 달리 대형마트를 이용할 때는 보통 차를 가지고 가기 마련이고, 트렁크에 실을 때도 규격이 정해져 있는 종이박스가 더 편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한 번 사용한 종이박스를 다시 사용하는 것은 재활용으로 볼 수 있지만 재활용이 되지 않는 소재로 만든 장바구니는 어떻게 보면 다시금 쓰레기를 양산하는 것이란 주장도 청원 게시판에는 올라와 있다. 또 종이박스 퇴출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는 탁상공론이라는 댓글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1위, 포장재 플라스틱 사용량 2위. 우리나라의 이야기다. 1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이제라도 환경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한 치도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운용의 묘를 살려볼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종이박스 퇴출 작업은 대형마트 간 자율협약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 정책이나 정부의 강요로 추진되는 사업이 아니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환경부 1회용품 줄이기 중장기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사업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형마트의 책임으로 미루고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자율협약이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중재자의 역할을 자처할 수는 없는걸까.

환경 정책의 핵심은 국민이 맞다. 자발적으로 환경을 위해 덜 쓰고 절약한다면 그것이 바로 최상의 대안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정부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책도 입안하고, 캠페인도 하고, 기업과 자율협약 이라는 것도 하는 것 아닌가. 소비자들의 불만과 불편을 최소화 하면서 환경보호의 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이번 종이박스 관련 취재를 진행하고, 보도 내용에 대해 담당 공무원의 항의를 받으면서 환경부 조직 내에도 뒷짐만 지는, 혹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메일을 보낸 환경부 직원이 소속돼 있는 모 과의 책임자는 항의 메일을 보낸 이유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제가 메일 드린 거 아니잖아요. 저는 기사만 토스해줬고, 사무관이 메일을 드렸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부서 내 업무는 공유하고, 윗선에 먼저 보고하는 것이 조직 내 생활이고, 또 조직의 리더는 후배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않는 것 이라고 배웠던 기자에게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이었다. 개인의 의견을 전했다는 말인가.

내가 흔히 말하는 꼰대 기질이 있어 요즘 조직 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번 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부서 책임자가 몰랐다는 이야기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직접 한 일이 아니니 나는 모르겠다는 무성의한 답변인건지 한참을 고민해봤다.

국가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중앙 부처 공무원의 답변치고는 참으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정부의 1회용품 줄이기 중장기 계획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만큼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소비자들의 불만과 지적이 쏟아질 지 모른다.

ⓒ데일리안 최승근기자. ⓒ데일리안 최승근기자.
국민들도 환경보호라는 대의명분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반대 여론을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일일이 모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기는 힘들지라도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해보면 탁상공론이란 지적 만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공언을 그들의 윗선이 아닌 애꿎은 국민과 기업에게 실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최승근 기자 (csk348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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