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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보는 주총-하] 국민연금, 주주권 적극 행사 천명…"과도한 주총개입 우려"


입력 2020.02.20 05:00 수정 2020.02.20 06:02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56개사 블랙리스트…한진가 경영권 다툼에도 캐스팅 보트 쥘 듯

"정부 입김, 여론 향방에 기업 자율성 훼손돼선 안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국민연금공단

다음 달 주주총회를 앞둔 국내 상장사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국민연금의 행보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은 주요 의안에서 국민연금의 판단이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기업은 총 313곳에 달한다. 국민연금은 이들 중 56개사에 대한 주식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키로 하면서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천명했다.


이들 중 효성은 조현준 회장, 대림산업은 이해욱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이 이번 주총에서 결정된다. 롯데케미칼, 만도, 카카오 등도 사내외 이사 선임과 관련해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올해 주주총회의 최대 핫이슈로 떠오른 한진가의 경영권 분쟁에도 국민연금의 행보가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은 내달 말 주총에서 그룹 총수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지주회사인 한진칼 지분을 5% 미만(2.9%)으로 보유하고 있지만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반대 진영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KCGI-반도건설의 3자 주주연합 간 지분율 차이가 미미해 국민연금이 쥐고 있는 2.9%의 지분이 가진 무게감이 작지 않다.


조 회장 측 한진칼 우호지분은 최대 33.45%로 파악되고 있으며, 3자 연합이 확보한 지분은 31.98%로, 양측의 차이가 1.47%에 불과하다. 지분 1%를 보유하고 있는 카카오는 조 회장측 우호지분으로 분류하는 시각이 많지만 만일 카카오가 중립을 선언한다면 격차는 0.47%로 줄어든다.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자체도 중요한 역할을 하겠지만 국민연금이 한쪽에 대한 지지선언을 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움직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마디로 국민연금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상황이다.


재계에서는 다수의 기업 지분을 쥐고 있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광범위하게 행사할 경우 민간기업 경영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을 앞세워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상황이 일반화될 경우 시장의 자율성을 훼손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입맛에 맞게 기업 경영 방향이 뒤바뀌는 ‘통제 경제’ 체제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 총수들의 위법 행위를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처벌하려는 움직임도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광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지난 6일 ‘국민연금 독립성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서 “일부 기업의 위법 행위는 관련법을 통해 처벌하면 된다”며 “정부가 나서서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업들을 제재하겠다는 발상은 기금설립 목적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정부 개입’ 우려를 희석시키기 위해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를 구성해 주주권 행사 논의를 맡기기로 했지만, 이 역시 기업 경영이 여론에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수탁위 상근전문위원 3명과 외부 전문가 6명으로 이뤄진다. 외부전문가는 가입자단체로부터 추천받은 민간전문가 중 가입자단체별로 2명씩 위촉한다. 가입자단체에는 소비자, 시민단체, 자영업자, 농어업인 등 각종 이익단체들도 포함돼 있어 특정 기업 사안에 여론의 향방이나 정치색, 업종별 이해관계 등이 개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이 정부나 여론의 눈치를 지나치게 볼 경우 미래를 내다본 투자보다는 눈앞의 실적이나 현상유지를 추구하는 방어적인 경영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기업 자율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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