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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이 시점에, 왜 ‘여‧야 연대’로 개헌안 발의했을까?


입력 2020.03.09 09:00 수정 2020.03.09 08:17        데스크 (desk@dailian.co.kr)

의원 148명이 소리 소문도 없이

직접민주주의 꿈 못 버려서?

통합당 의원들의 황당한 동참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새 국회의원 148명이나 서명한 개헌안이 지난 6일 국회에 발의됐다. 강창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들, 그리고 26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국민발안개헌연대’가 주도했다. 개헌안이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4·15 총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쳐지게 되리라고 한다.


무엇보다 어떻게 그처럼 소리 소문 없이 그 많은 의원들의 서명을 받았는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운 재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누가 주동해서 왜 이런 요사스런 술법을 부렸는지 알 수 없지만 두렵기까지 한 재주넘기다. ‘국민개헌발안권’만 담은 개헌안이라는데, 개헌은 그게 원포인트이든 멀티포인트이든 기습적으로 발의하고 처리할 일이 아니다.


의원 148명이 소리 소문도 없이


당연히 국회 또는 정부 차원에서 장기간에 걸친 검토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 공론화는 필수 절차다. 공청회 혹은 토론회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판단되면 그 때 공식 절차에 들어가는 게 순리이고 순서다. 그런데 보도 자료나 기자회견도 없었다. 이처럼 비밀스럽게, 기습적으로 개헌안을 발의한 것은 국민정서는 물론이고 민주적 입법의 요건에도 맞지 않는다.


그 많은 의원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개헌안에 서명을 해 줬는지 궁금하다. 자신의 신념과 부합했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왜 갑자기 국민에게 개헌 발의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소신이 생겼다는 것인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이런 논의는 전혀 없지 않았는가.


서명하지 않은 의원들의 처신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기습 발의할 것을 알면서도 입을 다물어 줬는지가 우선 궁금하다. 다른 일도 아니고 개헌안에 대한 서명이 진행되는데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던 까닭이 뭐였을까? 국민 모르게 슬쩍 해치우자는 발의자 측의 부탁이나 압력이라도 받았던 것일까?


국민 100만 명 이상이 서명하면 개헌을 제안할 수 있게 한다는 게 개헌안의 골자이고 전부다. 현행 헌법상 개헌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거기에 국민도 끼워주겠다는 것이다. 진보‧좌파 측의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직접민주주의’ ‘시민참여정치’를 운위해 왔으니 그렇다고 치자. 일부 자유우파 정당의 의원들은 무슨 생각으로 덩달아 서명을 했는가.


직접민주주의 꿈 못 버려서?


Ⅰ. 직접민주주의는 이상(理想)이라기보다는 향수(鄕愁) 같은 것이다. 아득한 옛날의 민주주의 낙원에 대한 기억을 현실에 끌어오고 싶은 욕구라고 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실망의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근대국가의 체제와는 어울릴 수 없는 정체다. 무엇보다 직접민주주의가 구현되려면 아주 작은 나라일 것이 전제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장자크 루소의 생각이 그러했다. 노자의 이상향(민주주의와는 다르지만)도 ‘소국과민(小國寡民)’이었다.


Ⅱ. 조직된, 혹은 동원된 대중은 민의(民意)의 원천이 아니라 선동정치의 도구이거나 제3의 정치권력일 뿐이다. 100만 명이라면 국민의 대표성이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아니다. 최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코너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100만 명’의 의미를 일깨워줬다. 이들은 이념진영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어렵지 않게 동원될 수 있는 사이버공간의 군중이다.


Ⅲ. 정치적 주장 또는 요구에 힘을 더하기 위해 첨부하는 서명 명부상의 100만 명과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는 100만 명은 전적으로 다른 존재다. 서명에 동원된 100만 명이 실재로 국가의 기본 얼개를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정파 간, 이념집단 간의 투쟁을 국민적 범위로 확대시키는 무모한 모험이 된다.


그런데도 재적 과반수 의원들이 이런 내용의 개헌안 발의에 동참했다.


Ⅰ. 사회‧정치적으로 보아 뜬금없는 처사다. 온 나라가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여 있는 때가 아닌가. 게다가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4‧15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하필 이런 시점에, 왜 그 원 포인트 개헌이라는 것이 그처럼 급해졌는가.


Ⅱ. 그간 많은 논란을 불렀던 권력구조, 대통령 임기,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느닷없이 국민개헌발안권을 들고 나온 것도 이해가 안 된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 때 규정을 신설했다가 1972년 유신헌법 때 삭제된 제도다. 실효성을 발휘한 적이 없다. 이게 왜 갑자기 긴요해졌다는 것일까? 국민은 개헌에 대한 최종적 승인권을 가진 주권자다. 심판을 정치 게임에 끌어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통합당 의원들의 황당한 동참


Ⅲ. 그야말로 생뚱맞은 개헌발의는 21대 국회에서 개헌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사전 포석일지도 모르겠다. 작년 3월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했지만 당시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국회 처리에 실패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국민 100만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아 발의를 하면 야당도 막고 나서지만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인가?


Ⅳ. 더불어민주당은 나름대로 의도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동참한 의도는 뭔가? 어떤 정치적 이익이 있기에, 아니면 어떤 사명감으로 민주당의원들의 들러리를 섰다는 것인지 설명해 줘야 할 텐데 공식적으로는 아무 말도 않고 있다. 별일이다.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동기‧의도‧목적 등을 자랑할 텐데, 아예, 입을 다물고 있다니.


Ⅴ. 혹 21대 국회에서의 정치적 연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덩달아 서명한 사람들은 말고, 민주당과 통합당에서 이를 주도한 사람들의 경우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그런 장기구상까지 한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하도 황당한 일을 벌이고 있으니 별별 상상을 다할 수밖에.


아무리 꿰맞추고자 해도 이 개헌 시도는 이해할 수가 없다. 국민의 시선이 코로나19와 4‧15총선에 쏠린 틈을 타서 은근슬쩍 해치우려는 것이라면 이는 무모한 국민 기만행위다. 특히 통합당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기회를 외면하고, 여당 의원들과 뜻 모를 개헌연대나 해서는 국민적 지탄에 직면하기 십상이다. 총선을 목전에 둔 야당의 소속 의원들로서 자기 정체성을 스스로 확인하기 바란다.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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