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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 한강 벨트①] 호남선의 끝자락 '관악을'에서 다시 만난 정태호와 오신환


입력 2020.03.11 08:51 수정 2020.03.11 09:22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호남선의 출발점이나 종착역 관악

지리적 요인으로 전통적 민주당 강세

지난 두 번의 선거로 확인된 지역변화

서울 관악구 난곡 사거리 인근에 캠프를 차린 정태호 후보와 오신환 후보 ⓒ데일리안 서울 관악구 난곡 사거리 인근에 캠프를 차린 정태호 후보와 오신환 후보 ⓒ데일리안

관악을은 호남선의 출발지이자 호남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첫 관문이다. 목포에서 출발해 가장 빠른 길로 달리면 전북 군산, 경기도 안산을 거쳐 관악에 도착하게 된다. 서울 4대문을 중심으로 놓고 보면 남태령을 기준으로 좌측에는 양재를 거쳐 부산으로 가는 경부선이, 우측에는 관악을 거쳐 목포로 가는 호남선이 놓여진 꼴이다.


관악구 신림동에 ‘고시촌’이 형성된 연유를 이런 맥락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과거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한 선비들이 낙향을 위해 관악산을 넘다가 재시를 결심하고 눌러 앉은 곳이 대학동 고시촌이라는 얘기다. 관악산의 ‘화기’를 받아 공부하겠다는 선비가 많아 ‘벼슬산’이라고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호남과의 지리적 인접성으로 인해 관악구는 금천구와 함께 서울시 내 행정구 가운데 전라도 출신이 많이 정착한 곳으로 꼽힌다. 호남향후회의 결속력이 어느 곳보다 막강한 지역이기도 하다. 관악지역 호남향우회의 한 관계자는 “이희호 여사 생전 매주 화요일 동교동 식구들과 김대중 대통령 참배를 했는데, 거기서 나온 이야기가 호남으로 내려갔다가 거의 실시간으로 관악에 전달됐었다”고 회고한다.


호남지역 여론과 맞닿아 있다보니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세가 강했다. 소선거구제가 시행된 13대 국회부터 관악갑과 을에서 각각 치러진 16번의 총선에서 민주당계열이 통합당계열에 내준 것은 4번 뿐이다. 특히 관악을은 오신환 현 의원이 2015년 재보선에서 승리하기까지 무려 24년 간 민주진영의 아성이었다.


광장서적 주인 이해찬이 내리 5선을 한 지역
운동권과 호남세력의 결합으로 ‘진보의 상징’ 부상
16대 대선 노무현 후보가 가장 마지막 유세를 한 곳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태호 전 일자리 수석 ⓒ뉴시스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정태호 전 일자리 수석 ⓒ뉴시스

관악을이 민주진영의 ‘성지’가 된 데에는 한 가지 서사가 더 있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 이해찬 대표가 1978년 고시촌 인근 녹두거리에 사회과학서점 ‘광장서적’을 오픈한 것. 운동권 선후배들 사이 공감대를 확산시키는 공간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고, 1988년 이 대표가 관악을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큰 영향을 줬다. 이후에도 이 대표의 의정활동을 돕고자 광장서적에서 책을 샀다는 후배들이 적지 않았다.


이를 두고 지역적으로 호남과 이념적으로 학생운동권이 결합한 상징적인 계기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16대 대선 마지막 유세를 한 곳이 관악을이었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자발적 ‘시민 분향소’가 처음 생겨난 곳도 관악을이었다. 19대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이 선거연대의 조건으로 민주통합당에게 관악을을 요구한 것도 이런 상징성과 무관치 않다.


끈끈했던 결합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재보선이다. 전북지역 강자였던 정동영 의원이 친노진영의 이른바 ‘호남홀대론’을 끄집어 내며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관악을에 도전장을 낸 것이다. ‘노무현과 문재인의 사람’을 내세웠던 민주당 정태호 후보와 대립하며 진보분열로 이어졌고, 반사이익을 얻은 오신환 의원이 당선되는 정치적 격변기가 시작된다.


2016년에는 호남에서 불어닥친 국민의당과 안철수 열풍이 관악을 덮쳤다. 재보선에 이어 3파전으로 진행된 선거에서 국민의당 이행자 후보는 23.1%를 득표하며 진보진영의 표를 상당부분 잠식, 정태호 후보는 또다시 패배의 쓴 잔을 마셨다. 1위였던 오 후보와의 격차는 불과 861표였다. 호남이 ‘민주화의 성지’나 ‘진보의 뿌리’라는 ‘신성’에 갇히지 말고 세속적 욕망을 표출하라는 김욱 서남대 교수의 ‘아주 낮선 상식’의 영향권에 관악이 있었던 셈이다.


진보분열로 인한 패배와 지역구성원의 변화
고토회복 노리는 정태호와 진가입증 나선 오신환의 3연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는 오신환 미래통합당 의원 ⓒ뉴시스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서는 오신환 미래통합당 의원 ⓒ뉴시스

하지만 따지고보면, 진보진영의 분열로 패했다는 것은 결과론적이고 정치적인 해석일 수 있다. “그 사이 주민구성이 상당히 바뀌었다”는 게 지역민들의 얘기다. 실제 사법시험이 폐지된 뒤 대학동 고시촌은 원룸촌으로 탈바꿈해 직장인과 공시생들로 채워졌다. 난곡동 인근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신림역 사거리는 서울에서도 유동인구가 많기로 첫 손에 꼽는 지역이 됐다. 더 이상 민주당의 깃발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는 ‘격전지’가 된 셈이다.


관악을 선거가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과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이런 서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정 후보 측은 지난 두 번의 패배를 몸에 쓴 약으로 삼아 설욕전에 나선다.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과 일자리수석을 거치며 쌓은 국가운영 경험은 누구보다 강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라는 점은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이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집권여당의 힘 있는 후보’를 캐치 프레이즈로 내건 배경이다.


정 후보 측 관계자는 “3파전으로 진행됐던 지난 선거와 달리 1대 1 상황이 됐기 때문에 구도는 조금 유리해진 게 사실”이라면서도 “이제는 관악을이 민주당에게 유리한 지역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절실하게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후보도 만만치 않은 경력을 쌓았다. 재선 국회의원으로 원내대표에 올라 각 정당의 이견을 조율하는 등 체급을 키웠다. 국회 상임위 활동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관악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모두 졸업한 ‘순수 토박이’라는 점은 지역 유권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요인이다. “더 크게 써달라”는 캐치 프레이즈에는 지역에서 배출한 인재를 더 키워달라는 의미를 담았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매주 정기적으로 지역민들과 만나 민원해결에 힘썼다는 것은 인정받는 사실”이라며 “지난 두 번의 선거가 진보진영의 분열로 어부지리를 얻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양자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실력으로 이겼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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