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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당신은 참 멋진 사람…'찬실이는 복도 많지'


입력 2020.03.27 13:05 수정 2020.03.27 14:20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최근 입소문 타고 2만 관객 돌파

강말금 주연·김초희 감독 연출

<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찬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찬란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남자도 없고, 새끼도 없지만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의 엔딩송이다. 역경 앞에서도 자신만의 생각과 방식대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찬실이(강말금)를 표현한 노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40대 여자 찬실이가 갑작스러운 실직 후 겪는 이야기를 경쾌하게 담았다.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갑자기 일마저 뚝 끊겨버린 영화 프로듀서 찬실. 하루아침에 실직자 신세가 된 그는 서울 산 중턱에 위치한 오래된 집에 얹혀살게 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했을 즈음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 네 가사도우미로 취직해 살길을 찾는다.


그런데 웬걸, 소피의 불어 선생님 영(배유람)이 찬실이의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장국영(김영민)이라 우기는 묘한 분위기의 남자까지 등장한다. 이 와중에 새로 이사 간 집주인 할머니(윤여정)도 정이 넘쳐흐른다. 평생을 워커홀릭으로 살았는데, 막상 일을 그만두니 전에 없던 복이 날아 들어온다. 찬실이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제목에서 말해주듯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찬실이가 끌고 가는 이야기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졸지에 백수가 된 찬실이. 아닌 척하려 해도 내 인생은 망한 것 같고, 현실은 시궁창이다. 그래도 찬실이는 주저앉지 않는다. 오히려 밝고 씩씩하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찬란 '찬실이는 복도 많지' 스틸.ⓒ찬란

인생의 고비에 선 그가 희망을 찾는 과정은 거창하지 않다. “난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 대신 애써서 해"라는 복실의 대사처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뿐이다.


영화는 상업 영화에서 물리도록 봐온 반전이나 사건을 소재로 찬실이가 다시 취직을 하거나 뚜렷한 꿈을 갖는 완성형 결말로 매듭짓지 않는다. 대신 그의 평범한 일상을 따라가며 묵묵히 지켜본다.


찬실이의 삶은 우리네 인생과 다르지 않다. 인생의 한고비, 한고비를 넘을 때마다 고민하고 좌절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또 하루를 살아간다. 영이가 찬실에게 건넨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 조금만 더 힘내요”라는 말은 찬실이 뿐만 아니라 지칠 대로 지친 우리에게 전하는 위로일 것이다. 너무 슬퍼하지 말고 꼿꼿하게 일어서기를.


찬실이를 맡은 배우 강말금은 이름처럼 ‘맑음’이다. 배우가 주는 분위기도, 연기도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다. 찬실이는 강말금이라는 옷을 입고 훨훨 날아다닌다. 세상에 짓눌린 찬실이의 발걸음이 그 누구보다 가벼운 이유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프로듀서로 오래 활동하고 단편 영화 '겨울의 피아니스트', '우리순이', '산나물처녀'로 주목받은 김초희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3관왕(한국영화감독조합상·CGV아트하우스상·KBS독립영화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 등을 수상했다.


영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여파로 개봉을 앞둔 영화들이 줄줄이 일정을 연기하는 와중에도 뚝심 있게 나아갔다. 5일 개봉해 독립 영화 흥행의 1차 관문과도 같은 ‘1만명’을 돌파한 데 이어 25일 2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로 영화관이 텅텅 비는 악조건 속에서 빚어낸 기적이다. 찬실이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관객들 덕이다. 그들은 말한다. '짠내'가 폭발하면서도 묵묵히 걸어가는 찬실이와 나를 응원한다고.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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