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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소소한 영화관] 아픈 현실에도 희망이…‘용길이네 곱창집’


입력 2020.04.03 14:10 수정 2020.04.05 11:32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동명 희곡 영화화…김상호·이정은 주연

재일교포 정의신 감독 연출

<수백억대 투자금이 투입된 영화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영화의 재미와 의미를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선한 스토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작지만 알찬 영화들이 있습니다. 많은 스크린에서 관객들과 만나지는 못하지만, 꼭 챙겨봐야 할 영화들을 소개합니다.>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주)영화사그램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주)영화사그램

"나는 이 동네가 정말 싫습니다."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은 토키오(오오에 신페이 분)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1969년 오사카 간사이 공항 옆 판자촌. 그곳에는 '야키니쿠 드래곤'이라는 곱창집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가게 이름은 토키오의 아버지 용길의 '용'(龍)을 따서 지었다.


용길이네 가족은 아버지 용길(김상호 분)과 어머니 영순(이정은 분), 그리고 세 딸 시즈카(마키 요코 분), 리카(이노우에 마모 분), 미카(사쿠라바 나나미 분), 막내아들 토키오로 구성돼 있다. 시즈카와 리카는 용길이 전처 사이에서 얻은 딸이며, 미카는 영순이 데리고 온 딸이다. 토키오는 용길과 영순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나의 핏줄로 이어지지 않은 가족이지만, 서로를 품어주며 받아들인다.


각 인물의 사연은 다채롭다. 시즈카는 어린 시절 사고로 다리가 불편하다. 한국에서 온 남자 윤대수(한동규 분)의 구애로 서서히 마음을 열지만, 엄마 영순은 딸이 한국인과 사귀는 게 탐탁지 않다. 둘째 리카는 대학까지 졸업하고 놀기만 하는 남편 테츠오(오오이즈미 요 분)가 못마땅하다. 테츠오가 자신의 언니 시즈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자 더 큰 절망에 빠진다.


미카와 토키오의 삶도 순탄치 않다. 클럽에서 일하는 미카는 유부남과 연애하다 덜컥 임신까지 한다. 막내 토키오는 또 어떤가. 일본에서 살아가려면 일본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유명 사립학교에 다니지만, 결국 심한 따돌림을 당한다. 급기야 실어증에 걸리고 등교를 거부한다. 이 와중에 일본 정부가 이 판자촌이 국유지라며 용길 가족에게 퇴거 명령을 내리고, 서로 아끼던 가족 내에서도 곪았던 갈등이 터진다.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주)영화사그램 '용길이네 곱창집' 스틸.ⓒ(주)영화사그램

영화는 1969~1970년 고도성장기 일본을 배경으로 재일교포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극 연출가이자 재일교포인 정의신 감독의 동명 희곡을 영화로 옮겼다.


마치 '콩가루 집안' 같은 용길이네는 오히려 보면 볼수록 정감 간다. 여러 문제를 일으키며 지지고 볶아도, 결국 이들의 정착지는 집이고 가족이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려고 일하고 또 일했어. 그런데 우리는 돌아갈 고향이 없다"는 용길의 말처럼 재일교포가 겪는 설움과 애환도 묻어나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꼭 안아주는 장면에선 이들이 겪은 삶의 지난한 과정이 스치며 마음을 울린다.


소재 자체가 재일교포이긴 하지만, 관객들은 자신의 삶에 용길이네 가족을 이입한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버려진 적이 있기에 관객들은 용길이네를 통해 자신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을 때 겪었던 외로움과 공허함과 이를 딛고 일어선 순간들도 지나가며 공감을 산다.


영화는 팍팍한 현실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을 건드린다. 용길이 하늘을 바라보면서 던진 "내일은 분명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고 대사가 그렇다. 하루하루 떳떳하게 살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온다는 삶의 이치를 길어올린다.


한일 연기파 배우들의 준수한 연기력도 관전 포인트다. 김상호와 이정은은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이를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부부의 모습을 매끄럽게 연기했다. 용길이네 가족으로 합류한 일본 배우들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용길이네 곱창집’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충직 집행위원장은 "1970년대 재일 동포 사회뿐 아니라, 지금의 한국·일본 사회의 모든 갈등과 화해를 다룬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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