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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낭만적인 ‘연가’


입력 2007.11.23 17:31 수정        

시인이자 수필가인 육인숙 신간 ‘해질녁 풍경소리’ 출간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당신’…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의 서사시

겨울은 모순적인 계절이다. 혼자임을 깨닫게 해주는 추위에 사람의 온기가 그립고 따끈한 차 한잔에 뜨뜻한 구들장이 아쉽다.

‘해질녁 풍경소리’(더 오름, 육인숙, 293쪽, 9000원) ‘해질녁 풍경소리’(더 오름, 육인숙, 293쪽, 9000원)
그러나 날씨가 추우니 혼자 있어도 가슴의 시려움을 감출 수 있고 영하의 날씨에 오들오들 떨다 보면 외로움은 훌쩍 달아나 버린다. 추위에 떠는 육체의 고통은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에 공감하고 나누려는 마음을 갖게 한다.

그래서 겨울은 혼자라서 외롭지만 동시에 ‘혼자’임이 외롭지 않은 계절이기도 하다.

한 해의 끝과 다음 해의 시작이 맞물려 이 계절은 어찌 보면 축복이다. 살아있는 것들은 잠시 멈춰서 숨고르기를 하고 사람들은 연말연시를 핑계삼아 자기 마음 속의 ‘동굴’을 들여다본다.

꽃이 지고 동물이 동면하는 자연의 섭리에 새삼 숙연한 마음이 드는 이 때,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는가’란 거창한 물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고민과 사색에 잠기게 된다. 어디를 향해 가야겠다는 의지도, 어디를 가고 있다는 자각도 오롯이 나만의 것이다.

긴 동야(冬夜)를 지나 청량한 짧은 새벽을 기다리는 두근거림도 이 계절만의 축복이다.

‘해질녁 풍경소리’(더 오름, 육인숙, 293쪽, 9000원)는 소소한 것의 신비,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겨울을 닮았다.

장르 불문, 손 가는 대로 마음이 흐르는 대로 쓰는 것이 수필이라면 ‘해질녁 풍경소리’는 수필의 미덕을 그대로 살린 책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인 육인숙씨는 시와 수필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작품으로 엮어냈다.

‘해질녁 풍경소리’를 꿰뚫는 정서는 감사와 겸허다. 작가는 끊임없이 사랑을 말하고 그 사랑의 감정을 갖게 해 준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당신께 다가가기 위한 작고 소소한 아픔들까지도 사랑스럽습니다. 그리움이 살아서 나의 영혼을 새로이 옷 입혀주고 그대가 걷는 길 따라 나의 걸음이 더듬거린다는 것이, 아, 이렇게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중략) 내가 곱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당신에게 있다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더욱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야 한다는 것이 당신의 존재로 인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당신이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내가 먼저 中)

희망, 꿈, 사랑...한때는 가슴 떨리게 만들던 단어가 빛이 바래진 것은 인간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사랑에 인색해진 탓이리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이 지나치게 넘쳐흐르고 흔해빠진 ‘이야기’로 전락하면서 소소한 기쁨을 주는 대상마저 그저 그런 것으로 변했다.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는 각종 실용서적은 어쩌면 인간이 그만큼 계산적이 됐고 그래서 낭만을 잃은 현실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런 세태에도 작가는 나를 있게 해주는 당신에 고마움을 말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따뜻한 긍정의 시선으로 세상살이는 ‘몸 낮춰 마음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되풀이되는 삶을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하는 과정’이며 ‘녹록치는 않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되어지는 대로 기쁘게 순응하는 삶’이 가장 풍요롭다고 말하는 작가는 우리가 잊고 있던 작은 아름다움을 소박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아주 오래 전에 잊었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들이 가슴에 꼭꼭 누르고 살아온 꿈과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면, 멀고 먼 기억 속의 사람으로부터 어느 날 문득 날아온 편지 같이 생각된다면 단지 그것이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해질녁 풍경소리’는 빌딩숲에 묻힌 현대인의 꿈과 낭만, 사랑과 희망을 떠올리게 해 주는 어른들의 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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