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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이장' 정승오 감독 "가부장제, 이젠 끊어내야죠"

    [데일리안] 입력 2020.04.05 00:01
    수정 2020.04.07 10:15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바르샤바영화제 신인 감독 경쟁 부문 대상

"남성중심사회 변해야 할때"

'이장' 정승오 감독ⓒ목요일아침

"가부장제요? 우리 세대에서 끊어내야죠."


가부장제를 소재로 한 영화 '이장'을 연출한 정승오(34) 감독은 자신 역시 가부장제 집안에서 자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외침은 영화 전반에 묻어나 있다. 때로는 유쾌하게, 또 때로는 진지하게.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가부장제 모순을 지적하는 '이장'은 아버지의 묘 이장을 위해 모인 다섯 남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풍자한다. 가부장제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했다.


최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정 감독은 자신의 경험에서 영화가 시작됐다고 털어놨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다. 가부장제에서 육아, 가사 노동은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도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경제활동을 하셨는데 '왜 나만 이래야 하지?'라고 자문하셨을 거예요. 집안일이 오로지 어머니의 일이었거든요."


명절, 제사 때는 더 심했다. 여자들만 부엌에서 전을 부쳤다. 정 감독 포함해서 가부장제 집에서 자란 이들에게 이런 풍경은 당연했다. '부당하고 잘못됐다'고 생각한 사람은 이상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정 감독은 이런 과정을 모두 지켜봤다. "가부장제에 들어간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소환했어요. 집안의 중요한 의식들은 남자들 차지였죠. 여자들은 여자란 이유로 배제됐어요. 가족 내 차별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싶었어요. 그게 가부장제라고 판단했고요."


'이장' 정승오 감독ⓒ목요일아침

영화엔 가부장제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혜영(장리우 분). 둘째 금옥(이선희 분), 셋째 금희(공민정 분), 넷째 혜연(윤금선아 분)은 아버지 묘 이장을 위해 큰아버지 댁으로 가려 한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장남인 승락(곽민규 분) 없이는 묘 이장을 할 수 없다며 버틴다. 누나들은 승락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가족이 완벽하진 않잖아요. 다들 결핍이 있죠. 네 자매들이 마주한 고민은 어머니와 아내가 안고 있는 걱정과 비슷했어요. 우리가 흔히 봐왔던 것들이죠. 왜 이런 차별이 존재했고, 이런 차별이 왜 여성에게만 편중됐는지 궁금했어요."


이 영화의 강점은 메시지와 재미를 동시에 잡았다는 것이다. 감독은 가부장제라는 무거운 옷을 훌훌 털어버리듯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는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그리고 싶었어요. 이들의 사연이 고단하잖아요. 가뜩이나 힘든 시기에 무겁고 힘든 장면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어요. 관객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게 웃음을 주고 싶었죠."


"집구석에서 살림만 하는 게 뭐 얼마나 힘들다고", "기집애들이 말이 그렇게 많아"라는 큰아버지의 대사를 통해선 여전히 뿌리 깊게 박힌 가부장제와 남녀차별의 단면을 꼬집는다.


가족이 해체된 후 어머니와 잠시 살았다는 정 감독은 그제야 어머니의 마음을 알았다. 가부장제 집에서는 자기 삶이 없을 수도 있겠다고. 그는 "저 역시 가부장제를 아무런 의심 없이 수용한 게 아닐까"라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이 영화가 변화의 실마리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부터라도 가부장제에 대한 성찰이 이뤄졌으면 해요. 남성들도 관성을 깨고 나올 수 있거든요."


'이장'은 제35회 바르샤바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신인 감독 경쟁 부문 대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가 수여하는 넷팩상 등을 수상했다. 해외 관객들도 공감했다는 얘기다. 정 감독은 "프랑스 여성 관객들도 공감했다"며 "환경만 다를 뿐이지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 중 초등학생인 동민이(강민준)는 희망을 상징한다. 정 감독은 "동민이가 가부장제의 마지막 세대이길 바란다"며 "우리 세대에서 끊어내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화를 보고 고민하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가부장제에서 자란 정 감독은 어떤 가정을 꾸릴까.


"35년 이상을 한국 남자로 살아왔고, 남성 중심적인 시스템을 느꼈어요. 이제는 가부장제를 깨부수고 나와야 합니다. 골든타임이 있거든요. 지금이야 말로 가부장제와 작별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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