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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높은 세상’은 또 뭔가


입력 2021.06.21 08:58 수정 2021.06.21 07:52        데스크 null (desk@dailian.co.kr)

추미애, 문재인 정부 시즌2 선언

두려워서 목소리를 키우는 건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페이스북
Ⅰ. 추미애, 문재인 정부 시즌2 선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20일, ‘사람이 높은 세상’ ‘사람을 높이는 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내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공식 선언식은 23일에 가진다고 한다. “‘사람이 높은 세상’을 향한 깃발을 높게 들기로 했다”는 말로 출전의 의지를 다졌다.


차라리 그냥 문재인 대통령 흉내를 내서 ‘사람이 먼저다 시즌2’ 혹은 ‘사람 중심 시즌2’를 구호로 삼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왜 굳이 요령부득의 말 짓기를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은 돈보다 높고, 땅보다 높으며, 권력보다 높다.”


“‘사람을 높이는 나라’는 주권재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며, 선진강국의 진입로에서 무엇보다 국민의 품격을 높이는 나라이다.”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라고 언론들이 보도했다. 문 대통령의 경우보다 더 어색하다. 어느 정권, 어떤 정당은 ‘사람’을 주어로 삼지 않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정치 자체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고 질서를 만들고 이해 조정을 해 가는 과정 아니던가. 그런데 새삼 ‘사람’을 내세우는 까닭이 뭔가.


북한 김일성 일가의 전체주의적 왕정 체제가 사회주의 헌법에서 ‘사람 중심의 세계관’,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를 명시한 것은 체제 위장(僞裝)이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民主) 원리를 배제하려니까 어쩔 수 없이 민본(民本)으로써 호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람 중심’ ‘사람이 먼저다’ 운운할 필요도 없이 ‘민주’ 자체가 그 모든 것을 다 규정하고 설명해 준다. 민본은 군주의 순천(順天) 애민(愛民)의 의무에 기초한다. 주권은 왕이 갖되 그 권력을 백성을 위해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민주 대한민국에서 언필칭 진보(進步)를 내세운 정치세력이 민본과 유사한 ‘사람 중심’을 내걸었다. 그것도 북한 정권을 흉내 내서.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황당했는데, 추 전 장관이 그걸 또 각색하며 군더더기를 잔뜩 붙여서 신상(新商)인 것처럼 내놨다.


거기에 그친 것도 아니다. 추 전 장관이 ‘국민의 품격’을 높이겠다고 한다. 이보다 더한 개그가 달리 있을까? 재임 기간 내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 압박하고 밀어내는 일에 몰두했다. 그의 공명심은 활활 타올랐고, 그 덕에(?) 성격은 있는 대로 다 드러났다. 민주당 초선 의원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면서(2020. 6. 25.) “틀린 지휘하지 않고, 장관 말을 들으면 지나갈 일을, 지휘랍시고 해서 일을 꼬이게 만들었다”고 윤 당시 총장을 조롱 조로 비난했다. 손바닥으로 책상을 탁탁 치는 제스처도 보였다.


그처럼 완장 자랑을 원도 한도 없이 했던 사람이 ‘품격’을 말하다니!


“윤석열이 여론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상급자로서 그를 혼내주기에 남다른 역량을 과시했던 내가 구경만 할 수는 없지.”


그런 생각일까? 윤 전 총장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의 처지가 난감해질 수 있으니 어떻게 하든 블로킹을 해야 하겠다는 뜻일까?


Ⅱ. 두려워서 목소리를 키우는 건가


윤 전 총장이 공개적으로 대선 행보에 나선 데 이어 최재형 감사원장이 머지않아 출마 의사를 표명할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야권으로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당사자들에겐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야권의 집권 가능성을 높이려면 선수층이 두터워져야 한다. 물론 난립해서 무한 투쟁 식 경쟁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지만 상호보완적 역할을 해줄 내부의 유력 경쟁자는 꼭 필요하다. 최 원장이 출마 결심을 굳힐 경우 야권으로의 정권 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은 안도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상황 전개가 정권 측으로서는 큰 위협으로 느껴지는 듯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5일 “윤석열의 수많은 사건 파일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었다. 일종의 협박이다.


(야권 인사라는 사람이 파일 전문을 입수했다며 “방어는 어렵겠다”고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졌는데 그 배경을 도무지 모르겠다. 자기 말대로 정말 정권교체를 바란다면 페이스북에 바로 공개하기보다는 당사자 측에 확인부터 했을 만한데…).


흑석동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청와대 대변인직에서 물러났다가 지난 4월 이른바 ‘(국회의원직이란)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열린민주당 김의겸 의원은 윤 전 총장을 12·12를 주도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비유했다. 다른 날엔 윤 전 총장의 행보를 가리켜 “총칼의 번뜩임이 보이지 않는 은폐된 쿠데타다. 탱크의 굉음이 들리지 않는 조용한 쿠데타다”(식자우환이 달리 없다) 라고 몰아붙였다.


최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민주당 신동근 의원이 “뭐가 뛰니까 뭐도 뛴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고 공격하고 나섰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속담을 패러디한 것 같은데 최소한의 예의도 내다 버린 말투다. 아무리 못마땅해도 그렇지, 감사원장을 ‘망둥이’에 비유하다니! 민주당 대선주자의 한 사람인 최문순 강원지사도 최 원장의 ‘정치 행보’를 비판하면서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으로서는 윤 전 총장 상대하기에도 힘이 부치는데 최 원장까지 가세할 조짐을 보이자 철퇴를 맞은 기분이 된 것 같다. 하긴 등판 기미를 보이기만 했는데도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적합도 5위에 랭크됐을 정도이니 놀랄 만도 하다.


이런 현상으로 미루어 민주당, 나아가 문 정권의 고민은 이해가 된다. 그러나 누워 침 뱉기도 정도껏 할 일이다. 윤 전 총장이나 최 원장이나 문 정권하에서 그 직책을 맡았었다. 두 사람 모두 문 대통령이 대단히 높이 평가하며 임명했다. 그들이 지금 문 정권의 반대편에 서서 집권 경쟁을 벌이려 하고 있는 배경을 정권의 유력자들은 얼마나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지 궁금하다.


문 정권의 궤도이탈 정도가 오죽했으면 그 정부의 핵심 요직에 있거나 있었던 인사들이 (말하자면) 반기를 들고 나서겠는가. 이에 대해 반성하는 빛은 추호도 안 보이면서 모진 말로 공격부터 하고 나서는 모습이 차라리 애처롭다. 자기성찰이 없는 개인이나 조직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 그런 교훈으로 채워진 것이 동서고금의 사서(史書)이다.


‘180석의 저주’가 현실화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덩치가 너무 커서 자기성찰·자기 쇄신에 굼뜰 수밖에 없는 듯하다(눈 뻔히 뜨고 정권을 놓칠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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