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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의 합작품인가?


입력 2021.07.05 09:01 수정 2021.07.05 12:51        데스크 (desk@dailian.co.kr)

선비 고장 가서 역사 왜곡이라니

오해 소지 있다면 정정부터 해야

영악한 재주꾼이 궤변에 능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재명 경기도지사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김원웅이라는 사람의 말은 치지도외(置之度外)할 수도 있다. 한국인의 상식과는 엇나가기로 작정한 듯 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선거 유력주자의 말은 다르다. 옳고 그름을 분명히 가릴 필요가 있다. 무지·무식의 소치라면 그것부터 보완하라고 말해 줘야 한다.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라면 그 저의를 말하도록 요구해야 마땅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하필이면 김 씨의 화법을 흉내 냈다. 그는 지난 1일 경북 안동의 이육사문화관에서 “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나. 깨끗하게 나라가 출발되지 못해서 이육사 시인 같은 경우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옥사하셨지만, 나중에 보상이나 예우가 부족하다. 친일 잔재가 완전히 청산되지 못하고 여전히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선비 고장 가서 역사 왜곡이라니


조선 선비 정신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안동에 가서 하필이면 편 가르기 식의 발언을 했다는 것부터가 문제다.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으니 대한민국은 민족적 정통성을 결여했다. 그래서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되지 못했다.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예우가 부족한 게 그 탓이다.’ 이런 맥락의 발언이었다고 읽힌다.


‘점령군’이라는 표현(이는 김 씨가 지난달 21일 양주 백석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구사한 용어와 같다. 좌파의 공통된 인식 및 화법이기도 하고…)에 대해 논란이 일자 오히려 반박을 하고 나섰다.


△승전국인 미국 군대는 패전국인 일제의 무장 해제와 그 지배 영역을 군사적으로 통제하였으므로 ‘점령군’이 맞다. △미군 스스로 포고령에서 ‘점령군’이라고 표현했고, 한반도를 피해국이 아니라 패전국 일본의 일부로 취급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 미 군정기의 해방공간에서 발생했던 일을 말한 것이다.


해명 및 반박의 요지가 그렇다. ▲존 하지 중장이 이끌고 1945년 9월 8일 인천에 상륙한 미 제10군 제24군단이 ‘점령군’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는 그다음 날 일제의 조선총독부와 북위 38선 이남의 조선 주둔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점령의 의미는 일제가 점거한 지역을 장악하고 항복을 받아냈다는 데 있다.


▲‘맥아더 포고령 제1호’에 “나의 지휘하에 있는 승리에 빛나는 군대는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부분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다만 이 포고령은 바로 이어서 “조선 인민의 오랫동안의 노예 상태와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리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명심하고, 조선 인민은 점령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자기들의 인권 및 종교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다는 것을 보장받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한반도를 피해국이 아니라 패전국 일본의 일부로 취급했다’는 것은 말장난이다. 일왕의 항복 선언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는 일제의 조선총독부와 주둔군이 존재하고 있었다. 일제와의 교전 국가로서 조선을 일본의 일부로 취급했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당시엔 ‘피해국’이라고 할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피해 민족’이 있었을 뿐이다. 일본의 일부로 취급하지 않았다면 점령을 하지 말아야 했다는 것인가.


오해 소지 있다면 정정부터 해야


▲태평양 전쟁 승전의 결과로 일본의 항복을 받아낸 미군이, 일제가 불법적으로 점거해서 오랜 기간 식민통치를 해 온 지역을 접수한 것은 당연한 전후 처리 절차였다. 문제는 김 씨나 이 지사나 굳이 우리 국민의 피해의식을 자극할 수 있는 ‘점령군’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썼다는 사실이다.


▲이 지사가 이 단어를 구사한 까닭은 그 스스로가 설명하고 있다. ①친일 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②그 때문에 나라가 깨끗하게 출발되지 못했다. ③그 결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보상‧예우가 부족해졌다. ④이 같은 인식 혹은 평가는 ‘점령군’이라는 용어를 사전적 의미로만 쓴 게 아니라는 뜻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은 출발에서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묻어 나온다.


▲이 지사의 ‘점령군’ 언급에 대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4일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광복회장의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는 황당무계한 망언을 집권 세력의 차기 유력후보 이 지사도 이어받았다. 온 국민의 귀를 의심하게 하는 주장이다.…이에 대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다는 것이 더 큰 충격이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내 발언을 왜곡 조작한 구태 색깔 공세라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친일 세력과 미 점령군 합작’을 굳이 강조한 저의를 감추려는 태도다. 정말로 대한민국의 민족적·역사적 정통성을 부인하고자 한 말이 아닌가?


▲이 지사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의 일을 두고 한 말이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정작 부각시켜 보이고자 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이었다. 대한민국의 점령군과 친일 세력의 합작품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역사적 사실로는 없고, 그 자신의 의식에만 있는 것 같은데 오해이고 오독인가?


▲정말 아무런 저의가 없이 문서 표현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라고 주장하려면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정정부터 해야 옳다. 그런데 그는 되레 비판자들을 향해 ‘무지’하다고 몰아세웠다.


영악한 재주꾼이 궤변에 능하다


“독립된 한국 정부와 패망 후 점령당한 일제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역사 인식 부재’라고 마타도어 하기 전에 본인의 ‘역사 지식 부재’부터 돌아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인정은 하겠다는 뜻인가? 좌파 일각의 심하게 비뚤어진 역사 인식과 자신의 것은 좀 다르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참 황당한 선심이다. 역사 지식이 남다르다고 자부하는 것 같은데, 차제에 몇 가지 배웠으면 한다.


△‘깨끗하지 못했던 출발’을 강조한 배경은? △식민 통치 35년여를 지나 연합군(태평양 전쟁의 경우 거의 전적으로 미군)의 대일 승전의 결과로 성립된 새 조국이었다. 미군이 조선총독부와 주둔군의 항복을 받은 즉시 38선 이남에서 철수했어야 ‘깨끗한 출발’이 가능했다는 뜻인가? △승전국의 질서유지와 보호 없이 대한민국의 건국이 그 정도로라도 평화롭게 이뤄질 수 있었을까? △38선 이남 지역에서 새로운 나라 건설과 관련, 수많은 정파들이 온갖 논리를 내세우며 험하게 대립하던 시절에 미군이 손 떼고 철수해 버렸다면 어떤 상황이 초래됐을까? △소련군(자기들 말로 ‘해방군’)이 점령했던 북한에서 어떤 이론(異論)이나 저항도 없이 김일성 중심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이야말로 깨끗한 출발이었다고 여기는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영리함을 과신해 궤변으로 실언을 덮을 생각 따위는 하지 말아야 한다. 둔한 사람은 ‘궤변’을 꾸며낼 줄을 모른다. 영리함이 넘쳐 영악해졌을 때 그런 말재주가 발휘된다. 자신의 과실·과오·무지를 교묘하게 꾸민 말로 정당화·합리화 하는 교활한 언변이 곧 궤변이다. 현 정권 실세라는 사람들은 그간 너무 화려한 궤변 실력을 뽐내왔다. 이제 국민들은 그런 말재주에 지쳤다고 한다. 어눌하더라도 진솔하게 하는 말이 소망스러운 때다.


이 지사는 말재주 자랑하기 전에, 역시 대선 출마를 선언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의 질문에 대한 성실하고 자세한 답변부터 할 일이다.


“알면서 치는 사기인가? 책은 읽어 보셨나?”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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