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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피가 흐르는 생쥐…한 마리 가격을 아시나요?


입력 2021.09.25 00:55 수정 2021.09.25 16:36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인간화 마우스’ 국산화를 위하여…젬바이오사이언스 의장, 이상욱 박사에게 듣는다

인간화 마우스는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인류의 오랜 노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인간화 마우스는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인류의 오랜 노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역사 속에서 쥐는 여러 질병을 옮기는 매개체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강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중세시대 페스트균에 감염된 쥐가 옮기는 흑사병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어 박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중국에서 흑사병이 발병해 공포감을 자아냈다.


그러나 과학계에서 쥐를 연구에 이용한 것은 벌써 100년이 넘었다. 19세기 말 일부 과학자들이 질병의 원리와 치료법을 찾기 위해 쥐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영국에서는 이미 1876년에 실험용 쥐 관리에 관한 법률이 생겼다. 이처럼 한 세기가 넘도록 쥐는 인류를 위해 희생을 했고, 쥐가 없었다면 인류의 건강과 생명과학의 발전이 지금처럼 빨리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쥐를 실험동물로 가장 많이 쓰는 이유는 쥐의 유전자와 사람의 유전자가 99% 정도 같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80%의 유전자는 완전히 동일하다고 볼 수 있고, 19%는 매우 닮았다고 한다. 결국 사람과 쥐의 유전자 가운데 완전히 다른 것은 1% 정도인데, 이 1%의 차이마저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인간화 마우스(humanized mice)'로 구현되고 있다.


인간화 마우스는 인간의 장기와 조직, 세포(암세포 포함)를 쥐에게 이식한 후 생존시켜 증식시킨 쥐를 말한다. 다시 말해 면역 결핍 상태인 쥐에게 인간의 정상 조직이나 면역 시스템을 이식해 인간과 똑같은 생체 구조를 갖게 하는 것이다. ‘겉은 쥐, 속은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간화 마우스의 필요성은 기존의 실험용 쥐 '모르모트'가 가진 한계로 인해 제시됐다. 기존 실험용 쥐는 사람과는 다른 면역체계를 갖고 있어 바이오 신약의 약효를 검증하기에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인간화 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상욱 박사.ⓒ 인간화 마우스를 들고 있는 이상욱 박사.ⓒ

지난 2017년 설립된 젬바이오사이언스(이하 젬바이오)는 국내를 대표하는 인간화 마우스 제조회사이다.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인 이상욱 박사가 설립자로, 이 박사는 현재 젬바이오의 이사회 의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아 인간화 마우스 국산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 달에 수십 명의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로서, 또 제자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수로서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데, 젬바이오를 설립한 이유는?


-암 치료에 있어 현대 의학의 한계점을 극복하고, 암 치료제 개발을 위한 인류의 지속적인 노력과 도정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동참하고 싶었다.


▲인간화 마우스 생산 사업의 매력은 무엇인가?


-인간화 마우스는 약 20그램의 작은 무게의 생명체인데, 한 마리에 무려 200만원에 달한다. 몸은 귀여운 생쥐지만 그 속에는 인간의 피가 흐른다. 현재 모든 신약 개발은 면역 항암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이런 신약의 최종적인 약효 검증은 인간화 마우스를 이용해야만 가능하다. 인간화 마우스는 암 치료제가 인간의 몸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속성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인간화 마우스를 공급하는 것이 결국 암 정복을 앞당기기 위한 인간의 대장정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보람을 느끼고 있다.


▲ 인간화 마우스의 역할이 그렇게 대단한가?


-한마디로, 인간화 마우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면 암 치료제나 치료방법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인간화 마우스의 이용은 암 치료제 개발에 있어 필수적이다. 사람과 쥐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갭을 기술적으로 채워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젬바이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 세계 시장의 규모와 국산화의 여정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잭슨랩(The Jackson Laboratory)사의 인간화 마우스에 비해 젬바이오의 인간화 마우스가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이미 국내 여러 연구진을 통해 우수성이 검증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연구진들은 기존에 사용해 왔던 마우스에서 비롯된 데이터를 기준으로 실험 디자인을 하다 보니 미국 잭슨랩사의 마우스만 사용하려는 고정 관념을 갖고 있다. 동일한 회사에서 만들어진 마우스를 사용하면 실험 과정에서의 데이터 변화에 외부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고려가 작용한 것이다. 한마디로, 단골 맛집에 별 불만이 없다면 관성적으로 계속 그 단골집을 찾게 되는 이치와 비슷하다.(웃음) 하지만 일단 한 번이라도 젬바이오의 마우스를 사용해 본 연구진들은 “젬바이오가 만든 마우스의 품질에 반했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한 번 사용해 보면 계속 찾게 된다고 확신한다.


▲ 코로나19 사태로 갑작스럽게 공급이 중단된 수입산 마우스들의 공백을 젬바이오가 훌륭하게 채웠다고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해 미국산 또는 일본산 실험동물 수입망이 위축됐다. 검역 통관 등의 절차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유의 팬데믹 상황에서 바이오 회사들의 실험수요는 더욱 커져갔고, 국내 연구진들은 ‘실험동물 품귀’라는 생소한 상황을 겪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젬바이오의 마우스들이 수입산 마우스들을 대신해 국내 연구실로 공급됐고, 놀라운 반응을 얻었다.


▲ 그렇다면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시 수입산들이 몰려올 텐데 대비책은 있는가?


-어떤 연구진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최대 관건이다. 이미 여러 연구소로부터 연구결과 도출 과정에서 일관성 등이 확보됐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솔직히 미국, 일본 마우스들과의 경쟁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미국 잭슨랩사의 경우는 아카데믹 사이트(의학연구 목적)와 커머셜 사이트(의약품생산 목적)에 대해 가격을 차등 적용하고 있는데, 젬바이오의 마우스는 잭슨랩사의 커머셜 사이트용 마우스와 비교해 가격 면에서 대략 2~3배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오히려 향후 과열될 시장경쟁 상황에서 중국산 마우스가 걱정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비슷하겠지만 젬바이오 마우스에 대한 라이센스나 로열티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이 가장 우려스럽다. 관련 제도 등이 시급히 정비돼야 할 것으로 본다.


▲ 위탁연구전문기관(Contract Research Organizations, CRO) 사업에도 뛰어든다고 들었다.


-젬바이오는 유전자가위 기술을 활용해 '고도면역결핍마우스'를 자체 기술로 개발했고, 여기에 인간의 조직과 면역 시스템을 이식해 인간화 마우스를 개발했다. 이제 젬바이오는 인간화 마우스 공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탁연구전문기관 사업에도 뛰어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젬바이오의 마우스들을 이용한 항암제 효력 평가 전문기업으로 성장해 보자는 것인데, 전문적으로 고난도 실험을 대행해 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 외국에서는 수많은 첨단 바이오 기업들이 고난도 실험을 대행해주며 고부가가치 서비스를 창출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 이런 여건이 안되는 국내 바이오 기업들이 해외에 실험 대행을 의뢰하는 과정에서 기술유출 등이 우려되는 것이 사실이다. 수익적 측면 뿐만 아니라 국익적 차원에서도 실험대행 서비스를 서둘러 론칭시키려고 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진료실에서의 이상욱 박사.ⓒ 서울아산병원 진료실에서의 이상욱 박사.ⓒ

안덕관 기자 (ad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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