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으로 드라마 도전
시청률 아쉽지만 ‘웰메이드’ 호평
<편집자 주> 작가의 작품관, 세계관을 이해하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작가들은 매 작품에서 장르와 메시지, 이를 풀어가는 전개 방식 등 비슷한 색깔로 익숙함을 주기도 하지만, 적절한 변주를 통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또 의외의 변신으로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현재 방영 중인 작품들의 작가 필모그래피를 파헤치며 더욱 깊은 이해를 도와드리겠습니다.
김지혜는 영화 ‘소원’을 비롯해 ‘우리 집에 왜 왔니’, ‘안녕! 유에프오’, ‘인디안 썸머’ 등 다수의 영화 각본을 쓴 작가다. 진지한 분위기의 멜로 영화에서 두각을 드러냈지만, ‘소원’에서는 성폭행 피해 아동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는 등 폭넓은 장르를 소화해왔다.
현재 방송 중인 JTBC ‘인간실격’으로는 드라마에 도전했다. 결국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길을 잃은 여자 부정(전도연 분)과 결국 아무것도 못 될 것 같은 자기 자신이 두려워진 남자 강재(류준열 분)의 연대를 담은 작품으로, 흔들리는 두 남녀의 애틋하고 미묘한 관계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장점이 그대로 담겼다.
◆ ‘인디안 썸머’→‘인간실격’, 아슬아슬한 관계 통한 긴장감
김지혜 작가의 첫 작품인 ‘인디안 썸머’는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이신영(이미연 분)과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서준하(박신양 분)의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다. ‘사형수와 사랑에 빠지는 변호사’라는 설정이 다소 현실성 떨어져 보이지만, ‘인디안 썸머’는 주인공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이를 극복한다.
준하와 신영은 첫눈에 반하는 사랑이 아닌, 만남을 거듭하다 서로에게 스며들게 된다. 영화는 그 과정을 차근차근 담아내며 점차 설득력을 더한다. 준하가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며 신영을 다시 보게 되고, 또 신영이 준하를 만나 ‘살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게 되는 등 인물들의 변화 포인트들을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포착해 그들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전달한 것이다.
디테일한 전개 위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두 사람의 아슬아슬함이 긴장감을 자아내면서, 한층 풍성한 재미를 만들어낸 김 작가였다.
‘인간실격’에서도 조금 다른 남녀를 다루고 있다. 부정에게는 가정이 있지만, 남편과는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고, 시어머니와는 늘 부딪힌다. 이 가운데 자신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강재와 우연한 만남을 거듭하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게 된다.
이 역시도 보편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김 작가는 그들의 불안한 내면을 긴 시간 정성껏 들여다보며 ‘왜 서로를 이해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납득시킨다. 그들의 어두운 내면을 깊게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라마의 분위기가 어두워졌고, 이에 폭넓은 시청자들을 아우르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에게는 ‘웰메이드’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 여성과 아이·청년, 약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
김 작가는 그간 작품 속에서 약자들을 품는 따듯함을 보여줬다. ‘인디안 썸머’에서는 남편의 상습적인 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살인을 하게 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신영을 향해 연민의 시선을 보냈었다. 그를 마냥 옹호하기보다는 그에게도 짧지만, 폭풍 같은 사랑의 감정을 선물하며 애틋함을 배가시켰다.
영화 ‘소원’에서는 아동 성폭행 피해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호평을 받았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어느 비 오는 아침, 학교를 가던 소원(이레 분)이 술에 취한 아저씨에게 끌려가 믿을 수 없는 사고를 당하게 되는 일을 그린 영화다. 이 일로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소원과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원’이 특별했던 이유는 사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사건 이후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 방점을 찍었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소원이지만, 가족들이 함께 뭉쳐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이 뭉클함을 자아냈다. 여기에 소원 가족을 향한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와 응원 역시 감동을 배가시켰다. 그들을 단순히 피해자의 자리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용감하게 극복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 응원의 메시지까지 함께 전한 것이다.
‘인간실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두 주인공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이 꼬이기만 해 가끔은 부끄러운 선택을 하기도 하는 부정과 강재지만 그들 곁에는 한결같이 응원을 보내주는 가족이 있다. 그들을 향한 지지와 또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보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