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 연출이 있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의 신인 감독답지 않은 연출력을 보여주었다. 이정재가 여러모로 새 역사를 써가고 있다.”
영화 ‘헌트’(감독 이정재, 제작 ㈜사나이픽처스․㈜아티스트스튜디오, 배급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가 19일 자정(프랑스 현지시간) 제75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을 통해 공개됐다. 뤼미에르대극장에서의 상영이 끝난 뒤 만난 전찬일 평론가의 얘기다.
실제로 ‘헌트’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인감독, 그것도 배우 경력 감독의 데뷔작 범주를 벗어나는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시작부터 좋았다. 사나이픽처스(대표 한재덕)라는 베테랑 제작사를 만나면서 편집부터 음악, 미술부터 액션까지 최고 능력의 제작진이 꾸려졌다. 사나이픽처스 특유의 남성적 장르영화 아우라가 영화의 공기를 채운다.
지난해 ‘킹메이커’를 비롯해 10년 넘게 칸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쉽게도 문턱을 넘지 못했던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대표 홍정인)이 ‘이번엔 기필코!’를 다짐하며 제공 및 배급사로서 전폭적 지원을 다한 것도 영화의 완성도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순제작비 204억 7500만원, 어느 신인감독도 누린 적 없는 제작비다.
캐스팅 역시 역대 신인감독 최고 수준으로 집결됐다. 영화 ‘태양은 없다’(1999년 개봉) 이래 23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나게 된 배우 정우성이 주연(김정도 역)을 맡았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이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이정재가 연출에 더해 주연(박평호 역)도 겸했다.
두 깐부(‘오징어게임’ 속 진정한 내 편)는 누가 추격자이고 누가 추격을 당하는 인물인지 무색하게 관객을 교란시키며, 서로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심리전과 결투 액션을 선보인다. 세상 어디에도 작은 두 발 붙일 곳 없이 가난하고 불안한 두 청춘을 보여주었던 ‘태양은 없다’에서 20여년이 훌쩍 흐른 시점을 보여주듯, 정우성과 이정재는 ‘헌트’에서 각자의 신념과 명분 또 생존의 교차로에서 뜨겁게 격돌했다.
특히 배우 정우성은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우리나라에도 두 손으로 고삐 대신 장총을 잡고 말을 달리고, 밧줄을 타고 공중을 가르며 내려와도 ‘폼’나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과시했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할리우드 스파이액션에서 튀어나온 듯한 외형과 타격감 넘치는 액션으로 관객의 시선을 붙든다.
프랑스 칸 현지 레드카펫뿐 아니라 길을 걸어도 걸음을 지속하기 힘들 정도로 화제를 모은 두 사람, ‘그림 같은’ 투샷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영화에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계속 등장한다. 칸에서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만큼 배우 전혜진이 리듬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고, ‘오징어게임’의 허성태 또 탄탄한 연기력의 정만식과 김종수가 조연으로 힘을 보탰다.
사나이픽처스의 전작 ‘공작’에서 무서운 호흡을 보여 주었던 배우 황정민과 이성민이 강렬함을 스크린에 드리웠고, 주지훈 조우진 김남길 등의 스타배우들이 카메오로 등장해 ‘눈 호강’을 선물한다. 주연부터 카메오까지 어느 신인감독도 누리지 못한 행운이 이정재 감독에게로 향했다.
그래도 역시 영화는 감독의 것이다. 감독 이정재는 신인답지 않은 무게감과 속도감을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차가운 심리전과 뜨거운 육탄전, 양립하기 힘든 두 요소를 공존시켰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의 음표 액션처럼 처음 보는 시퀀스가 있는 건 아니지만, 꽤나 신선한 ‘한 팔 매달리기 신공’의 액션이 배우 이정재를 통해 이뤄졌고 수천 번은 봤을 계단 구르기 액션도 정우성과 함께 몸을 던지고 고심한 카메라 각도로 담아내니 인상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주제의식에서 길을 헤매지 않았다는 것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폭력적 진압으로 시작해 피비린내 진동하고 상식이 통하지 않았던 그 시대, 짐승의 세월 속에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역사를 도모하고 국민을 아끼는 이들이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영화 ‘헌트’에는 커다란 반전이 처음부터 싹을 틔워 결말 부분에 만개하는데, 단지 영화적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라 명분과 생존의 갈림길에 선 인생과 인간에 관한 본질적 물음이기에 심적 파동의 파고가 높다.
모든 측면에서 신인감독의 데뷔작 범주를 넘어서는 영화의 규모와 매무새에 대해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의 한세진 팀장은 “예정된 대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19일 오후에 만난 한 팀장은 “코로나19 속에서도 촬영이 꾸준히 진행됐다. 당초 예상됐던 것보다 규모가 조금 커진 부분이 있으나 10억~20억원 정도에 불과하고, 200억원 대작이 되리라는 것은 시나리오를 보면 예상되는 바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신인감독의 영화라는 측면보다는 거대한 현대사의 흐름 속에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한 줄 한 줄 성실히 시나리오를 각색한 이정재 감독에 대한 믿음 속에 부족함 없는 지원이 제작사와 공동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는 8월 개봉에서 한국 관객들이 얼마나 열광해 주느냐다. 현지 호응으로 볼 때 해외 판매도 호조를 보이겠지만, 신인감독에게 가장 설레고 긴장되는 부분은 국내 관객들의 반응일 수밖에 없다. 설사 과거 역사를 모른다 해도 상업적 장르영화, 스릴러 첩보물로 즐기기에 충분한 영화적 재미를 지닌 ‘헌트’의 흥행 성적이 벌써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