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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의 은퇴일기⑥] 서울 우면산에 ‘가재’가 있다니!


입력 2022.08.16 14:01 수정 2022.08.16 10:26        데스크 (desk@dailian.co.kr)

어린 시절 시골 도랑에서 가재 잡던 것을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과 함께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마 전에 손자와 함께 우면산 계곡으로 가재 잡으러 갔었다. 10여 년 전 산사태가 나서 모든 계곡에 돌로 축대를 쌓고 시멘트로 마무리하였는데 ‘가재가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따라 나섰다.


계곡에서 가재잡이 하는 모습ⓒ조남대 계곡에서 가재잡이 하는 모습ⓒ조남대

오후에 집에 들어오자 아내가 “사위가 아들을 데리고 우면산 계곡에서 가재를 잡았다”고 한다. “뭐 우면산에서 가재를 잡았다고? 잡아서 어떻게 했대?”라고 하자 “다시 놓아줬다”라고 하여 안심이 되었다. 서울 도심인 우면산 계곡에 가재가 있다는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구나’하고 지나쳤다.


다음날 며칠째 못 본 손자가 보고 싶어 하원할 때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다. 손자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딸을 만났더니 “오늘도 아들 친구 아빠와 함께 우면산 계곡으로 가재 잡으러 가기로 했다”며 “아버지도 같이 가요”라고 한다. 썩 내키지 않았지만 도심 가까운 곳에 가재가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어릴 때 시골에서 가재 잡던 추억이 떠올라 딸과 손자와 손자 친구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채집통 속에 있는 가재ⓒ조남대 채집통 속에 있는 가재ⓒ조남대

남부순환도로에서 조금 올라가서 계곡으로 들어갔다. 어제 와 본 곳이라 스스럼없이 앞장서 간다. 우면산은 2011년 7월 말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하여 주변 지역 아파트가 침수되고 인명이 사상死傷되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던 곳이다. 그 이후 바위처럼 큰 돌로 축대를 쌓고 나무를 심는 등 대대적인 사방공사를 하면서 계곡이 모두 파헤쳐졌다. 가재와 같은 생물이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날이 가물어 계곡의 도랑물은 신발이 잠길 정도로 졸졸 흐른다. 더운 날씨임에도 계곡물에 손을 담그자 생각보다 차갑다. 시간이 지나 퇴적물이 쌓여 물풀이 자라고 있었지만 온 도랑이 시멘트로 발라져 있어 가재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도랑의 돌을 들추며 찾았지만 보이지 않더니 한참 지나자 손자 친구 아빠가 조그마한 가재 한 마리를 손에 들고 흔들며 “가재 잡았다”고 소리 지른다. 집게발로 무는 시늉하며 발버둥을 친다. 고향을 떠나온 이후 50년도 더 지나 가재를 보았다. 올해 태어난 것인지 등껍질이 몰랑몰랑하다. 아이들은 채집통에 들어 있는 가재의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신기해한다.


어린 시절 경험을 떠올리며 흙탕물이 생기지 않도록 살며시 돌 들치기를 여러 번 하다 돌 밑에 가만히 있는 커다란 가재 한 마리를 잡았다. 조금 전에 잡았던 것보다 크고 껍질도 단단하다. 태어난 지 몇 년 된 어미 같았다. 커다란 집게를 벌려 물려는 자세를 취하며 달아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가재 한 마리를 더 잡았다. 한 시간 정도 가재잡이를 하다 도랑물에 모두 놓아주자 ‘이제 살았구나’ 하며 뒷걸음치며 돌 틈으로 얼른 숨는다. 손자와 함께 요즈음 도시에서 보기 드문 가재잡이 체험을 하고 놓아주기는 했지만, 가재는 통속에 있는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서 얼마나 놀라고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미물에게 못 할 짓을 한 것 같아 다시는 가재잡이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비록 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책이나 어린이집에서 배운 대로 생명존중이나 자연보호에 관해 알고 있어서인지 고집부리지 않고 순순히 놓아주는 것이 대견스러웠다.


계곡에서 가재잡이 하는 모습ⓒ조남대 계곡에서 가재잡이 하는 모습ⓒ조남대

옛날에는 도랑에 가면 가재가 지천에 널려있었다. 돌을 들치면 몇 마리씩 웅크리고 있기도 했다. 흙탕물이 생기면 도망가도 보이지 않으므로 돌을 살며시 들어야 한다. 물이 많은 곳에서는 쏜살같이 뒤로 달아나기 때문에 잡기가 쉽지 않다. 커다란 가재는 힘이 세어 집게에 물리면 피가 날 정도로 아프다. 꼬리지느러미 부분에 조그만 알을 촘촘히 달고 있는 어미 가재도 많았었다.


그 당시는 잡으면 불에 구워 먹었다. 큰 어미는 짙푸른 색이지만 불에 구우면 발갛게 변해 딱딱한 등껍질을 떼어내고는 아삭아삭 씹어 먹었다. 가재뿐 아니라 개구리도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었다. 먹거리가 귀하던 때라 맛있는 간식거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배곯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라 그립기만 하다.


우면산 산사태로 모든 계곡을 다 파헤친 데다 바닥과 벽면을 시멘트로 틈새를 발라 마무리했는데도 가재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방사업을 한 지 10여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할지라도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본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가재는 오염되지 않는 1급수에만 산다고 한다. 낮에는 돌 밑에 숨거나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있다가 밤이 되면 활동을 한다. 시골에 있을 때도 등불을 들고 도랑에 가면 돌 밑에서 나와 물속을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위기 시에는 몸을 ㄷ자로 굽히며 꼬리지느러미를 이용하여 튕겨 나가듯 뒤쪽으로 헤엄쳐서 도망친다. 껍질이 단단한 가재도 탈피하는 순간에는 가장 빈약한 시기이다. 허물이 벗겨져 속이 드러난 가재는 타 어종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는데 그 이후 작은 개울이 복개되거나 계곡이 유원지로 개발되면서 2011년 멸종위기종 후보까지 될 정도로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깨끗한 계곡에만 서식할 수 있으므로 청정지역임을 알려주는 지표생물로 쓰인다. 가재가 떼로 발견되는 곳이면 그 계곡물을 마셔도 된다고 한다.


가재와 관련된 이야기로는 ‘가재는 게 편’이라는 속담이 있다. 모양이나 처지가 비슷한 부류끼리 어울린다는 뜻으로 유유상종과 비슷하다. ‘도랑 치고 가재 잡기’라는 말도 있다.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보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속담이 있을 정도로 우리 가까이 있었지만, 지금은 실물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니 안타깝다.


손자와 가재잡이를 하면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서울 도심에서도 가재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주변의 환경이 차츰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러웠고 기분도 좋았다. 비록 체험이라고 할지라도 ‘가재를 잡아서 될까?’ 하는 우려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모두 놓아 주어 마음이 편안했다. 환경을 잘 보존하여 우리 주변의 산과 계곡에서 가재뿐 아니라 그동안 보기 어려운 생물들도 다시 접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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