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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하 전셋값 1억원 시대, 주거 약자의 계급적 운명 [김하나의 기자수첩]


입력 2022.08.17 07:01 수정 2022.08.16 18:23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영화평론가 정성일 '괴물'서 "현서가 납치된 것은 계급적 운명"

반지하 주거 공간이 폭우 피해에 더 쉽게 노출될 운명 불러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는 운명 내몬 것은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

文정부, 반지하 가구 대책엔 소홀…충분한 주택 공급이 관건

지난 8일 내린 많은 비로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빌라 반지하가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사망했다. 사진은 9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사고가 발생한 빌라 주차장에 물이 차있는 모습.ⓒ뉴시스 지난 8일 내린 많은 비로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한 빌라 반지하가 침수돼 일가족 3명이 갇혀 사망했다. 사진은 9일 오후 서울 관악구에 위치한 사고가 발생한 빌라 주차장에 물이 차있는 모습.ⓒ뉴시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에서 "가난은 현서가 매일, 그 시간에, 그 장소에 학교가 끝나면 와야만 하는 운명을 안겨준다"며 "현서가 괴물에게 납치된 것은 운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계급적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매점에서 살고 있는 현서는 우연히 괴물에게 납치된 것이 아니다. 여의도 매점을 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현서는 한강 원효대교 북단에 살고 있는 괴물이 나타났을 때 마주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마찬가지로 반지하라는 주거 공간이 폭우 피해에 더 쉽게 노출될 운명을 불러냈다. 115년 만의 폭우로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침수로 고립돼 목숨을 잃었다. 장애를 가진 동생, 딸과 함께 침수 피해로 사망한 여성은 백화점면세점 하청업체에서 일하며 가족들을 돌봐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동작구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거주하던 50대 기초생활수급자 역시 빗물이 들이닥치는 집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참변을 당했다.


이들을 반지하에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내몬 것은 바로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이다. 반지하 주택은 2020년 기준 96%가 수도권에 몰려있다. 서울에만 61%다. 집값이 비싼 곳일수록 반지하 수요가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값싼 반지하는 옛말이다. 올해 전용면적 60㎡ 이하 주택의 반지하 평균 전셋값은 1억 1497만원이다. 2011년 6147만원하던 반지하 주택의 평균 전셋값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인 2017년 8000만원대로 급등했고 해마다 천만 원 가까이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에 참석해 봉준호 감독의 발언에 박수치고 있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아카데미 영화상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및 출연진 격려 오찬에 참석해 봉준호 감독의 발언에 박수치고 있다.ⓒ뉴시스

집값을 올려 서민들을 반지하로 내몬 데 책임이 적지 않은 문재인 정부가 정작 반지하 가구 대책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3년 전 '기생충'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뒤 국토교통부가 반지하 가구 주거의 질을 올릴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이후 정부의 대책 마련이 기약 없이 미뤄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기생충' 봉준호 감독과 배우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짜파구리' 오찬을 가졌으나, 이 만남이 반지하에 대한 제도적인 변화로는 이어지지는 못했다.


주거 취약계층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야 반지하 대책은 세상에 나왔다. 서울시는 반지하를 20년 내 순차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일각에서는 '반지하에 살 돈 밖에 없는 사람은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냐'는 항변의 목소리도 있지만 적어도 반지하가 사라지면 폭우로 인한 침수 피해에 쉽게 노출될 운명은 막을 수 있을 터다. 반지하를 앞으로 사라져야할 주거형태로 본다는 말은 곧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주거지를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반지하에 사는 20여만 가구 모두를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키기에는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주거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은 올해 1만 가구로 계획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지하가 사라지면 주거 취약계층은 결국 열악한 주거 환경인 고시원, 쪽방을 전전할 수밖에 없다. 공공은 공공대로, 민간은 민간대로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게 관건이다. 만성적인 공급 부족으로 부동산 폭등을 초래한 전임 정부의 실정이 또다시 반복돼선 안 된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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