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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인이 유색인 주인공에 분개할까 [하재근의 이슈분석]


입력 2022.12.10 07:07 수정 2022.12.10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디즈니+와 미국 방송국 ABC가 12월 15일에 공개할 '미녀와 야수' 30주년 스페셜 방송 포스터. ⓒ ABC 디즈니+와 미국 방송국 ABC가 12월 15일에 공개할 '미녀와 야수' 30주년 스페셜 방송 포스터. ⓒ ABC

최근 디즈니+와 미국 방송국 ABC가 12월 15일에 공개할 '미녀와 야수' 30주년 스페셜 방송의 캐스팅을 발표했다. 여주인공 벨 역을 세계적인 R&B 가수 허(H.E.R.)가 맡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캐스팅에 한국 누리꾼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바로 허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실린 관련 기사엔 좋아요, 응원해요, 축하해요, 기대해요 등 긍정적인 클릭이 총 163인 반면, 놀랐어요와 슬퍼요 등 부정적인 클릭은 모두 2387이었다. 네이버가 싫어요, 화나요 등 노골적으로 부정적인 반응 키워드를 삭제했기 때문에 놀랐어요와 슬퍼요가 과거 싫어요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


부정적 반응이 긍정적 반응보다 14배 이상이나 더 많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누리꾼들이 ‘미녀와 야수’ 여 주인공에 흑인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 놀랍다.


왜냐하면 우리가 유색인이기 때문이다. 유색인인 우리가 그동안 디즈니에서 만든 백인 위주의 동화를 우리 이야기처럼 봐왔다. 그렇게 우리 뇌리 속에 백인 공주님, 왕자님이 이상적인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작 비판할 일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그리고 전 세계인이 왜 백인 동화를 보고 동경해야 하는가?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최근 디즈니가 주인공의 인종 다양화를 추진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얼마 전엔 ‘인어공주’ 실사 영화의 여주인공을 흑인인 할리 베일리에게 맡긴다고 했다. 이렇게 대중문화 주류 콘텐츠에서 유색인들의 영역이 확대되면 그것이 유색인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이어지고, 그런 흐름은 결국 우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백인의 특권적 지위가 조금이나마 해체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동안 백인 중심주의의 철옹성이었고 전 세계에 백인 공주님, 왕자님의 신화를 세뇌시켰던 디즈니가 앞장서서 인종다양화에 나서는 건 박수칠 일이다. 이런 흐름을 이어 흑인뿐만 아니라 동양인도 부각되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 많은 누리꾼들은, 왜 백인이 아닌 흑인이냐고 따졌다. 특히 ‘인어공주’ 캐스팅이 알려진 이후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흑인 캐스팅이 원작 훼손이라고 했다. 정작 안데르센 원작엔 인어공주가 백인이라고 명시되지 않았는데도 많은 우리 누리꾼들은 인어공주는 백인이어야만 한다고 강변했다. 설사 원작에 백인이라고 명시됐다고 해도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인종다양성은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는 것인데 그런 부분도 무시했다.


왜 유색인인 한국 누리꾼들이 ‘묻지마’ 백인 캐스팅을 외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미녀와 야수’ 실사 영화판 여주인공을 백인인 엠마 왓슨이 맡았을 때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왔었다. 미녀는 백인만 해야 하나?


요즘 인터넷에선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PC)에 대한 강한 반감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 흐름 속에서 억지스럽게 여성 액션 장면이 많아지는 등 공감하기 힘든 설정들이 나오기도 한다. 주로 젊은 남성 누리꾼들이 이런 흐름에 강한 반감을 보인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캐스팅에 민감한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연관이 있다. 여성주의 이슈와 인종 이슈가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 범주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모든 이슈에 대해 일괄적으로 부정적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논의는 별개로 하더라도 인종다양화 만큼은 동양인 입장에선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백인 지상주의가 이어졌을 때 우리도 피해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배우, 가수들이 서구권에서 활약하는 모습에 누리꾼들이 ‘국뽕’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렇게 우리 연예인의 지위가 올라간 것에도 정치적 올바름의 영향이 있다. 이런 인종다양화에 우리가 반대하고 나서는 건 자해라고 할 수 있겠다.


ⓒ

글/하재근 문화평론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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