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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사랑하는 사람을 AI로 볼 수 있다면


입력 2023.02.02 16:19 수정 2023.02.02 16:19        데스크 (desk@dailian.co.kr)

넷플릭스 영화 ‘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 본 적이 있는가. 딸이든 아들이든 또는 배우자, 부모 등 가족을 먼저 보낸 이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영역이다. 떠나버린 사람을 다시 만난다거나, 그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 어쩌면 남아있는 사람의 가장 보편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욕망이 현실로 실현되고 있다. MBC 스페셜 다큐멘터리 ‘너를 만났다’에서는 가상현실을 통해 먼저 세상을 떠난 딸과 엄마가 만나는 모습을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최근 글로벌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정이’ 또한 AI(인공지능)를 통한 딸과 엄마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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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이’는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우주에 새로운 터전을 만든 미래, 군수 AI 개발회사인 크로노가드는 식물인간이 된 용병 윤정이(김수현 분)의 뇌를 복제해 AI 전투 용병을 개발하려 한다. 영화는 이 프로젝트를 맡은 연구원이며 윤정이의 딸인 서현(강수연 분)의 이야기를 담은 SF영화다. 영화 ‘부산행’ ‘지옥’ 등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의 작품이자, 배우 강수연의 유작으로 공개 전부터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시각효과다. 사이버펑크 장르인 영화 ‘정이’는 비주얼적인 측면에서 확실히 압도한다. 사이버펑크란 기계화된 세상과 암울한 분위기를 띠는 영화 장르를 말하는데 ‘정이’는 지구 멸망 후,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AI 로봇, 뇌 복제 등 사이버펑크 장르물에서 볼 수 있는 시각적 요소들을 영화 속에 잘 담아냈다. 특히 SF장르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에서 연상호 감독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높은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또한, VFX (시각효과)를 맡은 덱스터는 2021년 선보인 ‘승리호’에 이어 넷플릭스 한국형 SF영화 프로젝트에 연이어 참여하면서 아시아 최고 VFX 기업으로서 저력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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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모성애를 담아 눈물샘을 자극한다. 윤정이는 어린 딸 서현의 폐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용병으로 출동해 식물인간이 된다. AI 군수회사는 싸움에 능한 그녀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AI 전투 용병으로 개발한다. 연구원이 된 서현은 자신을 위해 평생 희생한 어머니 정이를 영원한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수십 년간 AI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자본의 논리로 용병개발이 폐기되고, 정이가 지닌 과거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로봇이지만 자신이 엄마를 두 번 죽이는 것 같아 힘겨워한다. 영화는 첨단기술의 AI를 배경하지만 모성애를 자극하며 눈물샘을 자극한다. 모성과 가족애, 휴머니즘을 담아 해외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인기를 얻었던 이유다.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였다. 유작이 된 강수연의 연기는 자신을 위해 평생 희생한 어머니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어머니보다 나이든 딸의 복잡한 감정을 잘 그려냈으며 정이를 맡은 김현주는 로봇과 사투를 벌이는 액션 장면과 로봇으로 분했지만 엄마라는 감정을 계속 끌고 가면서 모성애를 잘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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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점도 있다. 시각적 비주얼은 진일보했지만, 한국에서는 낯설고 미개척지인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다루면서 클리세와 짜깁기식의 이야기 전개로 흥미롭거나 신선하지 못했다. 영화는 장르를 막론하고 이야기가 중요하다. 지금과 같이 감독이 시나리오를 담당하는 경우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의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해외 관객들로부터 소비되고 인기를 얻기 위해서 각 장르별 시나리오 작가군을 지원하고 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정이’는 AI를 통해 한국적 모성애와 가족애 그리고 휴머니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한국영화의 취약점과 나아가야 할 방향, 특화된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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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미 /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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