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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식량안보에 ‘올인’하는 까닭은


입력 2023.03.12 07:07 수정 2023.03.12 07:07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미·중 갈등 심화·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요인

習 주석, 지난해말 "농업강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근간"

작년 1억 4687만t 수입…올해 식량비축예산·생산량 대폭 늘려

갈등 빚는 미국에 수입 의존도 높은 대두 생산에 총력전 펼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농업 강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근간"이라며 "자기 힘에 의지해 밥그릇을 든든히 받쳐 들어야 한다"며 식량안보를 강조했다. 사진은 이 회의에서 연설하는 시 주석의 모습. ⓒ 신화/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12월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농업 강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근간"이라며 "자기 힘에 의지해 밥그릇을 든든히 받쳐 들어야 한다"며 식량안보를 강조했다. 사진은 이 회의에서 연설하는 시 주석의 모습. ⓒ 신화/연합뉴스

중국은 지난달 13일 농촌진흥방안이 핵심 기조로 담긴 2023년 ‘중앙 1호문건’을 공포했다. 중앙 1호문건은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정부)이 해마다 가장 먼저 발표하는 정책 과제로, 중국 지도부가 최우선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심중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농촌 활성화의 핵심 업무를 전면적 추진을 위한 의견'이라는 제목의 올해 중앙 1호문건은 "중국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기회와 도전의 위험이 공존하고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시기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삼농’(三農·농업·농민·농촌)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당의 최우선 과제"라고 명시했다. 삼농문제 해결에 두 팔을 걷고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중국이 식량안보에 ‘올인’하고 있다. 미·중갈등 증폭과 우크라이나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는 상황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농업강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근간"이라며 ‘식량안보’에 방점을 찍은 까닭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올해 식량비축 예산을 1329억 위안(약 25조 1725억원)으로 편성해 지난해(1136억 위안)보다 16.9%나 늘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이 지난 7일 보도했다. 2020~2022년 관련예산 규모가 1100억~1200억 위안 수준이고, 연간 평균 증가율이 2.3%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올해 예산 증가폭은 이례적으로 크다. 리궈샹(李國祥) 중국사회과학원 농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식량비축량을 늘리면 정부의 규제 능력이 향상된다”며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각종 위험과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올해 식량생산량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식량생산량을 최대 5000만t 늘릴 계획이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는 5일 보고서를 통해 식량생산량을 6억 5000t 이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공급의 적절한 공급과 가격안정에 중요하다고 밝혔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정부업무보고를 통해 "식량 재배면적을 안정적 수준으로 유지하고 종자작물 생산을 촉진하면서 곡물생산 능력을 확장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23∼24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 연설을 통해 "농업강국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의 근간"이라며 "자기 힘에 의지해 밥그릇을 든든히 받쳐 들어야 한다"며 식량안보를 강조한 바 있다.


중국이 ‘식량안보’를 외치고 나선 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의 정치·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데다 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에 따른 곡물 공급부족 문제가 노출된데 따른 대응책으로 해석된다. 블룸버그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장기화로 곡물 유통과 비료 공급에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식량안보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실 중국의 식량생산은 비교적 안정적인 편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곡물수확량은 6억 8653만t에 이른다. 2015년 이후 줄곧 6억 5000만t 이상을 생산해 기복이 별로 없다.


중국은 세계 최대 식량 생산국이지만 일부 곡물은 전 세계 교역량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실정이다. 2021년 수입량은 1억 6454만t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중국 전체 식량생산량의 21.4%(1억 4687만t)를 수입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미 농산물의 최대 수입국이라는 약점도 안고 있다. 미 농업부에 따르면 중국이 구매한 미 농산물은 최다 시점인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수입량(748억 달러)의 절반을 넘는 388억 5000만 달러(약 50조원)에 이른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전국인대) 14기 1차회의 개막식에서 정부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AP/뉴시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5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회의(전국인대) 14기 1차회의 개막식에서 정부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 AP/뉴시스

특히 곡물 가운데 콩(대두)은 중국 농업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힌다. 세계 최대 콩 수입국인 중국의 콩 자급률은 20%를 밑돈다. 나머지 80%는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 대부분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중국의 연간 콩 소비량은 모두 1억 1136만t 규모다. 콩 제품 및 단백질 가루 등 식용은 국산을 위주로 전체의 15%(약 1400만t)이고 나머지 85%는 사료 및 식용유용이다.


이에 따라 콩은 미·중 무역전쟁에서 직접 영향을 받는 무역상품 중 하나다. 중국에서 사료용 콩은 돼지사육 등에 필수적인 농산품으로 중국인 식탁의 주식 생산과 직결된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에게 돼지고기 가격은 곧 생활물가의 척도다. 돼지값이 비싸지면 민심도 악화하기에 정치적 의미까지 띠고 있을 정도다.


중국이 미국과의 갈등이 본격화한 2019년 이후 식량안보 차원에서 콩 경작 면적과 생산량 확대에 주력하는 주요 배경이다. 덕분에 중국은 4년 만인 지난해에는 콩 생산량 2000만t을 돌파하면서 일부 성과를 낸 바 있다.


중국의 지난해 콩 경작지는 전년보다 21% 확대된 1020만ha(약 10만 2000㎢)에 이른다. 쩡옌더(曾衍德) 농업농촌부 발전계획국장은 "이는 1958년 이래 콩 생산에 사용된 최대 규모의 경작지"라고 말했다.


콩 생산 증대에 힘입어 중국의 지난해 콩 수입은 감소했으며 수입량도 계속 감소할 전망이라고 SCMP는 전했다. 지난달 중국 해관총서(海關總署·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콩 수입량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1% 줄었다.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콩 자급률은 전년보다 3% 증가한 18.5%로 집계됐다. 네덜란드 라보방크은행은 지난주 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점진적인 콩 수입 감소가 글로벌 공급망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 농가에서는 채산성이 떨어지는 콩보다 옥수수 경작을 선호하는 탓에 콩 생산 확대에 제동이 걸렸다. 콩의 단위당 생산량은 옥수수나 밀(소맥)의 3분의 1, 벼(쌀)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런 만큼 중국 당국이 콩 경작을 독려해도 농민들이 콩 농사를 기피하는 바람에 사료용 콩은 여전히 수입 의존도가 높다. 중국 정부가 삼농을 올해 중앙 1호문건으로 채택해 생산을 독려하는 한편 콩 재배면적을 1000만무(畝·1무는 200평) 이상 확대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이 콩 소비량 전체를 국내 생산분으로 대체하려면 최소 6억 9000만무의 경작지가 필요하다. 중국의 경작지 총면적이 19억 1800만무인 점을 감안할 때 거의 7억무의 밭에 콩만 심어야 한다는 얘기다.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은 미국의 토지를 공격적으로 구매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개인 및 기업, 중국인 주주가 있는 미 기업 등이 보유한 미국 내 농업용 토지는 2010년 말 7만 5000에이커(약 303.5㎢)에서 2020년 말 33만 8000에이커로 10년 새 4.5배 증가했다.


이에 당황한 미국은 중국의 토지 투자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 노스다코다주의 그랜드포크스시에서 중국 푸펑(阜豊)그룹의 농산물 가공공장 건설 계획을 무산시킨 게 대표적인 사례다. 푸펑그룹은 중국 1위의 비상장 농업기업으로 발효식품과 비료, 설탕 대체재 등을 주로 판매한다.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브랜든 보첸스키 그랜드포크스시가 푸펑그룹의 3700에이커 규모의 토지 구입을 승인한 것은 2년 전이다. 황량한 땅에 옥수수 제분소 건설을 계획했고, 7억 달러 규모의 기업식 농업시설이 관내 들어서면 700명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된 덕분이다.


그러나 계획은 곧 반대에 부딪혔다. 해당 토지에서 승용차로 20분 거리에 첨단 시설을 갖춘 그랜드포크스 공군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기지는 최첨단 군용드론 기술은 물론 신형 우주네트워크센터를 보유해 ‘전 세계 모든 미군통신의 근간’으로 불리는 곳이다.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 자료: 국가통계국, 중상(中商)산업연구원

현지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고 지역사회를 넘어 워싱턴DC 정가에까지 경고음이 울렸다. 일부 주민들은 중국이 공군기지 염탐 활동을 은폐하기 위해 농업시설을 짓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다른 주민들은 "중국 공산당을 우리 마을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이크 라운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중국은 통신 등을 통해 핵심 군사시설을 감시할 수 있는 만큼 이번 농지 거래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국 기업들이 농지를 구매하거나 농업 기업의 투자·인수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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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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