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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편 내편 가르기" 난처한 K반도체, 일관된 목소리 내야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5.26 11:33 수정 2023.05.26 12:34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격화되는 미·중 '반도체 전쟁'…'양자택일' 강요로 난처해진 韓 반도체

노골화되는 美 요구에 단호한 입장 보여야…한·미 동맹 강조하되 경제적 실리 끌어낼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를 계기로 미·중 관계가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칩 구매 중단을 결정하자 미 백악관은 곧장 "마이크론 제재는 근거가 없다. 동맹 및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며 공동 대응을 시사했고, 중국 외교부는 부당하게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이라며 맞받아쳤다.


패권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양국은 '내편 만들기'에도 치열하게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 외교부장은 네덜란드 부총리를 만나 "상호 개방적이고 공평하며 비차별적인 비즈니스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네덜란드가 중국에 협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네덜란드는 첨단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만드는 기업(ASML)을 두고 있다.


그런가하면 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국 편에 붙었다. 오는 7월부터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통제를 실시하겠다고 해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적극적으로 합류하겠다는 뜻을 시사한 것이다. 격화되는 반도체 전쟁 속 이같은 경제·안보 이익을 앞세운 '국가 편가르기'는 한동안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일본과 네덜란드와는 상황이 달라 난처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두고 있고, 상당 부분 매출도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전적으로 미국 편을 들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하지만 이런 특수성이 있는 한국 반도체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미국은 누구 편에 설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미 하원 중국특위 위원장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지목해 "마이크론 빈자리를 채우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한국산이 마이크론 대체재로 쓰이는 것을 막아 중국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을 차단시키겠다는 의도다.


미국의 발언은 자유경쟁시장에서 한국 기업에 판매 간섭을 벌였다는 측면에서 도를 넘어섰다. 중국의 반격에 따른 조급증으로 외국 기업까지 쥐락펴락해 자국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이는데 지나친 처사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선 넘는 행태에 분명하고도 단호한 입장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엔비디아 젠슨 황 대표는 "미국의 중국 제재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미국 기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을 옥죄는 것은 결국 기업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고, 이는 공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다. 미국 AI 반도체 최대 기업도 정부에 쓴소리를 하는 마당에 우리가 입을 닫고 피해를 감수할 이유는 없다.


물론 현재 미국과의 보조금 협상이 진행중인데다,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연장도 코 앞으로 다가온 만큼 우리 부담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갈수록 노골화되는 미국의 요구에 인형처럼 끌려다닐수만은 없다. 한국은 시장으로서의 중국을 잃을 수 없고, 한미 동맹 가치도 지속·발전시켜야 한다. 이 같은 입장을 관철시켜 국익을 끝까지 지키는 태도가 요구된다.


자칫 어느 한 편에 서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가는 미·중의 반발을 사 한국 경제가 두동강이 날 수 있다. 마이크론을 겨눈 중국의 칼 날이 다른 한국 기업에 향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뜨거워진 동맹관계도 하루 아침에 냉각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히 한국 기업들이다.


'반도체 전쟁'을 둘러싼 외교·안보 해법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실리와 균형을 앞세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강조하며 경제적 실리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국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동맹은 원칙적으로 갑을 관계가 아닌 대등한 관계다.


최근 우리 정부가 '중국 내 반도체 생산설비 증설 비중을 늘려달라'고 미국에 요청한 것과 같이 실리를 챙길 부분은 확실히 챙겨야 한다. 지나친 저자세는 미국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욱 가볍게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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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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