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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파업에 수백억 날렸는데…상시파업 조장할 건가 [기자수첩-산업‧IT]


입력 2023.06.01 10:08 수정 2023.06.01 14:23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아 노조, 근로조건과 무관한 불법‧정치파업으로 사측에 피해 입혀

민‧형사상 조치 없다면 정치 사안에 민간기업 휘둘리는 일 반복 우려

노란봉투법 통과시 법적 제재 없이 수시 정치파업 가능해져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3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총파업대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8시간 가동 중단. 추산 생산차질 2700여대. 추산 매출 손실 700억원.


국내 2위 완성차 업체인 기아가 지난달 31일 노조 파업으로 입은 피해다.


파업 자체가 놀랄 일은 아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기아 노조)는 지난 2012년부터 2020년까지 무려 9년 연속 파업을 벌인 기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합법적인 파업이었다. 사측과의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 와중에 이견을 좁히지 못해 쟁의가 발생하고, 노동위원회의 조정 절차로도 해결되지 않아 조정 중지 결정이 내려지면서 쟁의권을 확보한 뒤 파업을 벌였었다.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한 쟁의행위 가결이라는 내부 절차도 밟았다.


이번 파업은 다르다. 쟁의권 확보는커녕 사측과 교섭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조합원 찬반투표도 없었다. 명백한 불법파업이다.


파업 명분은 더 기가 막힌다. 홍진성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은 지난달 29일 성명을 내고 “노조는 31일 기계를 멈추고 거리에 나와 윤석열 정권 퇴진을 위한 투쟁을(할 것을) 결단했다”고 조합원의 동참을 호소했다. 총파업을 주도하고 투쟁 지침을 내려 보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정치파업’에 대놓고 합세한 것이다.


‘윤석열 정권 퇴진’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민간 기업인 기아가 정치적 사안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노조에게 쟁의권이 주어지는 것은 ‘근로조건의 결정’ 과정에서 사측의 일방적인 강압에 대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측이 파업에 따른 손실을 피하려면 교섭 테이블에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노조의 요구조건이 ‘정권 퇴진’과 같은 정치적 사안이라면 사측으로서는 파업을 피할 방법이 없다. 두 손 놓고 앉아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정부는 이미 기아 노조의 이번 파업이 불법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파업 강행시 지게 될 책임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고용노동부는 기아 노조의 파업 돌입 이전인 지난달 26일 기아 노조에 “5·31 파업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므로 자제하라. 강행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다”는 취지의 행정지도 공문을 보낸 바 있다.


불법임을 인지하고도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노조가 쟁의권 없는 불법 파업이자 정치 파업을 벌여 회사에 피해를 입히고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또 반복될 수 있다.


기아 노조의 불법‧정치파업을 계기로 노란봉투법(노조법 개정안)의 폐해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란봉투법에는 노동쟁의 개념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분쟁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고 싶다면 언제든 근로조건 적용의 해석을 놓고 시비를 걸어 쟁의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란봉투법이 통과되면 노사 관계와 무관한 정치파업, 또는 상급단체의 지침에 따른 연대파업도 상시적으로 가능해진다. 이번 기아 노조가 행한 것과 같은 불법파업도 ‘불법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불법파업 조장법’으로 불리는 이유를 생각해 봐야 한다. 기업들은 앞으로 1년 365일 상시파업의 난장판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불안한 시선으로 여의도와 용산만 바라보고 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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