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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대란에 中 “농촌서 일자리 찾아라”


입력 2023.06.03 06:30 수정 2023.06.03 06:30        김규환 기자 (sara0873@dailian.co.kr)

中, 문혁 시절 마오쩌둥 ‘하방운동’ 떠올리는 캠페인 강화

경제회복 더뎌 청년실업률 치솟자 청년들에 농촌행 권유

광둥성, 2025년까지 대졸자 30만명 농촌파견 계획 발표

도시 미관 훼손 이유 금지한 노점상 허용하는 방안 검토


지난 4월 중국 충칭시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구직 청년들이 몰려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 4월 중국 충칭시에서 열린 취업박람회에 구직 청년들이 몰려 들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AFP/연합뉴스

지난달 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1면 머릿기사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편지 한 통을 실었다. 시진핑 주석이 사흘 전에 쓴 중국농업대 학생대표가 보낸 편지에 대해 답하는 글이다. 시 주석은 편지에서 “여러분이 농가에 깊게 들어가 일을 하면서 민생을 이해하고 학문을 연마한다니 매우 기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여러분이 말하길 농촌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무엇이 실사구시(實事求是)이고 어떻게 군중과 하나가 될 수 있으며, 또 청년은 모름지기 고생을 사서 해야 한다고 했는데 참으로 옳다. 새로운 시대 중국 청년은 마땅히 이런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적었다.


중국 정부가 문화혁명(1966∼1976년) 시기 마오쩌둥(毛澤東)이 노동을 통해 학습하고 농촌에서 배우라며 학생들을 강제로 산간벽지와 농촌지역으로 대거 내려보냈던 '하방(下放)운동‘을 떠올리는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지난 29일 보도했다.


이 캠페인을 펼치는 대표적인 곳이 중국 남부 광둥(廣東)성이다. 광둥성은 오는 2025년 말까지 대졸자 30만명을 농촌으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도시에서 일자리를 찾기 힘든 청년들을 농촌으로 보내 취업과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농촌으로 내려간 대졸자들은 그곳에서 풀뿌리 간부, 기업가 또는 자원봉사자로 일한다. 청년(16~24세)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동시에 낙후된 농촌을 활성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펑펑(彭澎) 광둥성체제개혁연구회장은 “도시 쳥년들이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과 전례없는 대졸자 급증으로 일자리를 구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농촌 취업정책은 청년들에게 더 많은 취업기회를 주고 그들의 재능과 기술이 필요한 농촌을 활성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동부 장쑤(江蘇)성도 기존에 5개 저개발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대졸자 농촌취업 프로그램을 지난해부터 장쑤성 전역으로 확대했다. 장쑤성은 해마다 적어도 2000명의 대졸자를 농촌으로 보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농촌 현장 실습을 나간 중국 안후이농대의 한 교수가 지난 3월 농작물을 살펴보며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농촌 현장 실습을 나간 중국 안후이농대의 한 교수가 지난 3월 농작물을 살펴보며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 신화/연합뉴스

일부 지방정부에선 '삼지일부‘(三支一扶)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졸자를 농촌으로 내려보내고 있다. 삼지일부는 시골에 내려가 농촌·교육·의료사업 세가지 분야를 지원하고 빈곤층을 부축한다는 뜻이다. 농촌개발과 빈곤퇴치에 도움을 주고 도시 일자리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취지에서다.


이런 캠페인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실업률이 올라갈 때마다 비슷한 정책을 시행했다. 앞서 지난해 6월 10일 중국 교육부와 재정부, 인적자원·사회보장부 등은 공동성명을 통해 지방정부가 대졸자를 마을 관리로 고용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기조는 ‘강한 농촌’이라는 기치 아래 농촌을 현대화하고 이를 통해 도농(都農)격차를 줄이려는 시 주석의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의 청년실업률이 사상 처음으로 20%를 돌파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4월 청년실업률은 전달보다 0.8%포인트 상승한 20.4%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극단적인 방역정책인 ‘칭링팡전’(淸零方針·zero Covid policy)이 시행되던 2021년 1월에 12.3%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급상승한 수치다.


이에 중국 정부는 청년고용 대책을 잇따라 내놨지만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에도 경제회복이 더뎌 민간 기업들의 고용 여력이 별로 없는 탓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알렉스 카프리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학 교수는 "교육을 잘 받은 도시 쳥년들은 공산당에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며 ”그러나 청년들을 시골에 분산시키면 이런 위험을 줄일 수 있고, 도시와 가난한 지역의 소득격차를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6∼7월 대졸자들이 대거 교문을 나선다는데 있다. 올해 대졸자는 지난해보다 82만명 증가한 1158만명에 달한다. 대졸자 1100만명을 넘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미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청년실업자가 코로나 유행 전보다 300만명 더 많아졌다고 추산했다. 첸난윈(錢楠筠) 미 노스웨스턴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을 미루거나 구직활동을 포기한 청년들은 공식통계에서 구직자로 집계되지 않는다”며 “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청년실업률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9월 후난성 천저우시 루청현 사저우 요족촌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신화 웨이보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0년 9월 후난성 천저우시 루청현 사저우 요족촌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신화 웨이보 캡처

중국에서 청년실업이 급증하는 것은 전공과 취업가능 일자리 간 불일치에서 기인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골드만삭스는 정보기술(IT)과 교육, 부동산 등 과거 청년 근로자들을 대거 고용했던 산업에서 일자리 수요가 크게 약화해 청년실업 증가로 이어졌다며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에도 중국의 성장세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탓에 전공과 일자리 간 괴리도 있다고 분석했다.


예컨대 2021년 교육과 스포츠를 전공한 직업학교 졸업생이 2018년 대비 20%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교육업계의 신규채용 수요는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으로 대폭 줄었다는 것이다. 부동산 부문 역시 중국 2위 부동산개발업체 헝다(恒大)그룹의 파산 이후 업계 전반에 걸쳐 연쇄 부도가 잇따르면서 채용수요가 급감했다.


IT부문은 알리바바그룹 창업자 마윈(馬雲) 전 회장이 이른바 ‘설화’(舌禍) 사건에 휘말리면서 일자리 수요가 위축됐다. 마 전 회장은 2020년 10월 상하이(上海) ‘와이탄(外灘) 금융서밋’에서 당국의 규제를 강도높게 비판한 이후 중국 정부의 규제와 단속이 대폭 강화되는 바람에 IT업체들의 감원 열풍이 불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IT 부문은 2018~2021년 대졸자가 가장 많이 증가한 분야 중 하나다.


이에 비해 2018~2021년 일자리 수요가 가장 많이 증가한 장비제조업을 전공한 졸업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은 까닭에 중국 공장들이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중국의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생들이 존재하지 않는 고임금·고숙련 일자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국 정부는 연일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우선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실업 청년이나 졸업한 지 2년 미만인 미취업 대졸자를 1년 이상 고용하는 기업에 1회성 고용 보조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많은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에는 대출금리를 우대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유기업에는 대졸 신규채용 규모를 지난해 수준을 밑돌지 않게 하라고 지시했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한 것은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이후에도 경제회복이 더딘 탓에 기업들이 신규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고 중국 정부는 판단하는 것이다.


창업을 원하는 대학 졸업생들에게 창업지원 대출과 이자할인 혜택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허위 채용 등 취업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행위와 고용차별 행위를 엄격하게 단속하도록 했다.


중국 교육부는 청년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100일 질주’도 추진하고 있다. 국유기업들에 대졸자를 더 많이 고용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청년들에게는 블루칼라 직업에 종사하거나 농촌으로 이주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 ⓒ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인력자원·사회보장부

과거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금지시켰던 노점상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노점상을 활용해 청년 일자리도 늘리고 내수도 진작하겠다는 구상이다. 광둥성 선전(深圳)이 오는 9월부터 지정된 구역 내에 노점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상하이도 특정 시간에 일부 구역을 지정해 노점상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창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산하 중국연구소장은 "중국 지도부가 고용을 창출하고 (사회·경제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는 면에서 젊은 사람들에게 노점상이 되라고 하는 것 이상의 방법을 못 찾은 것 같다"며 "디지털 시대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나 대학 졸업자가 창조적인 사고가 아니라 노점에 힘을 쏟는 건 절망적인 징후"라고 비판했다.


■용어설명


‘하방운동’은 문화혁명때 지식인과 학생들을 농촌에 내려보내 육체노동을 하게 함으로써 이들의 정신을 개조하고 정신·육체노동자 간의 위화감을 없애려는 운동을 말한다.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내려가 농민으로부터 교육을 받아라.” 1968년 12월 22일 인민일보가 전한 마오쩌둥의 지시다. 이에 따라 10년간 1700여만명의 지식청년들이 농촌으로 향했다. 산으로 올라가고 농촌으로 내려가는 이른바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이 펼쳐진 것이다.


농촌에서 노동하면서 사상을 단련하고 농촌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말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문혁 광풍으로 경제가 망가져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자 사회불안을 우려한 끝에 내놓은 고육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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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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