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액션장르 자기반성’으로 연출 데뷔
영화 ‘보호자’의 개성적 시도와 명장면 셋+1
오랜만에 영화를 보며 그 장면에 대해, 배우에 대해, 음악에 대해, 인간과 인생에 대해 생각할 계기와 시간을 주는 영화를 만났다. 오랜만에 ‘익숙한 소재에 등장할 법한 장면이니 이렇게 흐르겠지, 이렇게 그려지겠지’ 하는 추측과 짐작, 클리셰를 벗어나는 영화를 보았다.
정우성 연출의 영화 ‘보호자’(감독 정우성, 제작 영화사 테이크, 제공․배급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얘기다. 범죄조직에서 벗어나려는 무적의 에이스 조직원, 그를 막아서다 못해 제거하려는 조직, 남자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보호하고 싶은 상대, 폭력을 끊고 싶어 하는 남자가 다시금 폭력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발생, 소중한 이를 구하기 위해 그나마 자신이 제일 잘하고 능숙한 폭력을 쓰게 되는 아이러니.
처음엔, 감독 정우성은 왜 자신의 연출 데뷔작으로 이 흔하디 흔한 구조의 이야기를 꺼냈을까 의아했다. 그리고 오해했다. 워낙 액션에 능한 신체구조와 감각을 지닌 배우 정우성인 만큼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처럼 액션의 끝판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첫 장면부터 우수가 스며든 공기를 느끼며, ‘한국의 존 윅이라면 정우성이 최고지’라는 생각과 함께 키아누 리브스 못 잖은 기럭지와 애수에 찬 눈빛, 대중에게 널리 공유된 선함을 살려 ‘너희들 잘못 건드렸다’ 식의 핏빛 누아르를 보여주려는 것인가. 아이, 딸이 등장하는 만큼 리암 니슨의 ‘테이큰’처럼 납치된 딸 구하기 스토리인가.
세 작품의 공통점은 끝을 모르는 액션 퍼레이드다. 몇 명이 죽어나가는지, 그것도 얼마나 사소한 이유에 의해 사람이 죽어나가는지 어리둥절해서 사망자의 수를 셀 수 없다. 아니, 세려는 게 이상하다. ‘벚꽃 흩날리듯’은 아름답기나 하지, 먼지 대청소하듯 사람의 목숨이 털려 나간다.
그런데 ‘보호자’에선 카체이싱도 있고, 육탄액션도 있고, 폭발도 있고, 총도 쏘지만 좀처럼 사람이 죽지 않는다. 어, 뭐지? 이 영화, 장르가 액션이 아닌가 보네. 수혁(정우성 분)의 자동차와 하나 된 액션, 둘이 만나면 불사조가 되는 듯 초강력 드라이브를 보여주고 볼펜이나 수건, 휴지심 따위 없어도 맨몸으로 절도감 있는 격투 액션을 보여지만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
수혁 잡겠다는 응국(박성웅 분) 조직원들 손에 식겁하는 무기가 들려 있지도 않고 기껏해야 넘버2 성준(김준한 분)이 집어든 사냥총이 위협적인데 ‘치 떨리는 2인자 콤플렉스’에 손이 떨려 명중률이 엉망이다. 조직원들은 넘버1 응국의 사람들인 건지, 파괴력 최고인 게르(박준 분)조차 성준이 처절하게 당할 때 열성으로 돕지 않는다.
뿐인가. 성준이 고용한 전문킬러 ‘세탁기’ 팀의 우진(김남길 분)과 진아(박유나 분)의 무기도 포켓몬 몬스터볼을 연상시키는 모양의 폭탄에 총알 대신 못이 발사되는 총이다. 둘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여자인 진아가 몰고 우진이 뒤에 탄다. 더 어려 보이는데 진아가 엄마처럼 좀 모자라 보이는 우진을 살뜰히 챙기며 팀을 이룬다. 우진은 어느 순간엔 ‘다크 나이트’의 조커(히스 레저 분) 같았다가, 어느 순간엔 ‘추격자’의 지영민(하정우 분) 같은 섬뜩한 소년미도 있었다가, 대부분은 게임 좋아하는 초등 3학년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동안엔 세탁 성적이 꽤 좋았는데 이번에 성준이 의뢰한 수혁이라는 얼룩은 잘 제거하지 못한다.
자꾸만 예상을 빗나가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행동, 문득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하고 주연한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떠오르며 머릿속에 해가 들며 맑아진다. 아! 배우 정우성은 자신이 배우로서 몸담아 밥 벌어 먹고 살아온 영화, 그중에서도 멋짐 휘날리며 일가를 이뤘던 액션영화에 대해 감독으로서 자기반성을 하고 있구나. 마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자기복제를 거듭한다 할 정도로 반복했던 서부극에서의 ‘폼나게’ 분위기 있던 총질, 그것이 영화 장르 문법과 사람들의 심성에 끼친 악영향을 스스로 반성하며 영화를 연출했듯이.
서부극을 서부극으로 반성하듯이 사람목숨 가벼이 여기고, 사적복수를 멋짐으로 승화시키고, 긴장의 극대화를 위해 딸아이는 납치되지만 딸아이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이용만 당할 뿐 영화적 존재감은 전무하거나 그저 보호를 기다리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고, 빌런은 무조건 죽어야 하고 그것도 처참히 죽기를 응원하게 하는 ‘문법’이 이대로 좋은 것인지 감독 정우성은 영화 ‘보호자’를 통해 우리가 곱씹어보자고 말을 건다.
소재는 똑같이 하되, 다르게 그리고 전개시키는 방식으로 화두를 던진다. 사람목숨 파리처럼 취급하지 않고, 사적복수를 정당화하지 않고, 딸 인비(류지안 분)는 나약하지 않을뿐더러 영화 결말에 이르러서는 수혁과 서로의 보호자가 될 만큼 존재감이 있고, 우진과 진아는 물론이고 성준마저도 미운정 고운정이 들어 가만히 있는 사람 건드린 잘못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으라고 외치지 않게 한다.
신선한 도전이자 용기가 필요한 시도, 배우로 살아온 정우성의 감독 출사표다. 기존 문법과 다른 길을 선택한 도전, 기존 상업영화 흥행코드를 따르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는 역풍이 두려웠을 것임에도 포기하지 않은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예술은 익숙한 것을 새롭게 볼 수 있는 기회를 내포한다. 누가 키스를, 입맞춤이 가져오는 행복감을 모른다 하랴. 하지만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키스’를 보면, 내가 직접 경험한 적이 있든 없든 키스가 입을 맞춘 당사자의 심장과 뇌, 온몸에 일으킨 전율과 환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발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에 서 있고, 두 사람을 감싼 공기는 금빛으로 찬란하고 빛나는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마법의 양탄자를 두른 듯 두 연인은 고귀하고 아름답다.
영화 ‘보호자’에도 익숙한 것을 처음 보는 눈으로 만드는 명장면이 있다. 보는 이마다 다르게 발견할 수 있는데, 세 가지만 꼽겠다. 먼저 수혁과 인비가 만들어내는 두 장면이다.
수혁이 인비를 처음 보는 장면, 수혁의 미안함과 존재에 대한 신비로움과 묵직한 보호본능이 얽힌 복잡미묘한 감정을 배우 정우성이 당황하는 얼굴 근육과 형언할 수 없는 놀라움으로 커지는 눈동자, 순식간에 차오르는 눈물로 표현했다.
타오르는 불길을 피해 수혁이 인비를 안고 몸을 던진 수영장, 둥근 물속에서 수혁과 인비는 붉은 불길을 하나로 잇는 탯줄 삼은 듯 새로운 관계로 거듭난다.
“수혁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으로 생각했어요. 수혁이 인비라는, 자신을 어른으로 만들어 주는 존재와 엄마의 자궁 속에서 두 쌍둥이가 태어나려 준비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이 존재가 없으면 나의 존재조차 가치가 없는, 그런 감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이자 주연인 정우성의 설명이다. 보태자면, 수혁뿐 아니라 인비에게도 새로운 시작이다. 아픈 엄마와 길고양이들의 보호자였던 인비는 이제 혼자가 될 뻔했지만, 나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거는 보호자와의 새로운 동행이 시작되는 참이다.
세 번째 명장면은 수혁과 우진, 정우성과 김남길의 앙상블이 빚은 장면이다. 우진은 누군가를 해치기 전 어릴 적 얘기를 한다. 그동안 봐왔던 상대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하기도 하거니와 마치 자신이나 진아처럼 뭐 하나에 꽂히니 물불 가리지 않는 이상한 아저씨여선지 평소보다 길게, 보다 진실된 듯하면서도 보다 잔인한 얘기를 감상적으로 들려준다. 그리고 수혁 역시 얘기를 들려주는데.
여기서도 보기 좋게 기존 문법이 위반된다. 서로 센티멘탈 모드가 되어, 그 짧은 순간만큼은 우정인지 연민인지 모를 브로맨스가 싹틀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는데. 수혁의 대답은 우진과 진아가 가벼이 한 행동의 처참한 결과를 상기시키는 말이다. 감독 정우성은 감상적으로 타협하지 않았다. 예상을 뒤엎게 어긋나는 엔딩이 주는 여운이 깊다.
세 장면만 말한다 하고선 하나만 덧붙이고 싶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오리무중 안개 낀 도로에서 벌어지는 사고다. 전혀 웃긴 장면이 아닌데, 영화 내내 보여주었던 캐릭터들의 상처와 이를 뒤트는 반전이 차곡차곡 쌓이다가 이 장면에서 터진다. 아, 이렇게까지 웃고 싶지 않은데 참아도 참아지지 않는 기침처럼 웃음이 터진다. 와, ‘보호자’의 블랙코미디, 센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