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구리시 서울편입 검토 요청에…오세훈 한결같이 "공동연구 진행 후 논의하자" 즉답 피해
전문가들 "오세훈 대세론 형성된 것도 아닌데 어느 쪽이든 결정하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무조건 손해"
"오세훈, 서울편입론 자체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든 본인에겐 득될 게 없다고 판단…소극적 입장 고수"
"메가 서울에 국민여론 비우호적인데 대한 부담도 작용"…"서울의 거대화, 지역소멸 가속화시킬 뿐"
경기도 김포시에 이어 구리시까지 '서울특별시 편입론'을 띄우면서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연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각 지자체장들이 직접 서울시를 방문하며 시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정작 편입 주체인 서울시 오세훈 시장은 "공동연구"외에는 별 다른 언급을 하지 않으며 원론적인 중립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그 속내가 궁금해지고 있다.
시민사회 및 행정 전문가들은 오 시장이 이런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차기 대권주자의 위치에서 아직 불확실한 변수 자체를 회피하려는 입장과, 메가 서울에 대한 국민여론이 비우호적인 데 대한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 시장은 지난 13일 백경현 구리시장을 서울시청에서 만나 구리시의 서울시 편입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서울시 편입론'을 최초로 꺼낸 김포시의 김병수 시장을 만난 지 꼭 일주일만이다.
백 시장은 오 시장과 만나 약 30분간 면담을 가진 뒤 언론과 만나 "구리시는 인구 19만명의 가장 작은 도시로 자족도시의 기능을 발휘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각종 개발을 통해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입장을 오 시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포시가 내세운 편입 명분과는 결이 다르다. 김병수 김포시장은 지난 6일 오 시장을 만난 뒤 "(김포가 서울로 편입되면 서울시가) 해양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 한강 하구까지 전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그레이트 한강'을 만들 수 있다는 점, 김포에는 아직 가용할 수 있는 토지가 많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얘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김포시는 서울에 '제공할 수 있는' 편익을 중심으로 내세운 반면, 구리시는 서울에서 '얻어갈 수 있는’ 편익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오 시장이 내놓은 답변은 한결 같았다. '공동연구'를 통해 편입의 효용성을 검토해 본 뒤 효용성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그 이후에 다시 논의를 진행하자는 것이 골자다. 즉답을 피한 것이다.
오 시장이 이렇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이유에 대해 시민사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오 시장이 가진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위치를 꼽았다. 3년 넘게 남은 차기 대선에서 '오세훈 대세론’이 형성된 것도 아닌데 괜한 변수를 건드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2020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후 '자유시민 서울시장 후보 공천연대'를 결성하고 2021년 보궐선거에 오 시장을 후보로 내야 한다고 공개 지지한 바 있는 박준식 자유언론국민연합 사무총장은 1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오 시장은 차기 대권에 대한 의지를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차기 대권주자로 항상 거론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며 "오 시장이 만약 찬성이든 반대든 어느 한 쪽으로 조금이라도 쏠린 듯한 입장을 보이면 바로 지지도에서 손해를 보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박 사무총장은 "오 시장이 만약 김포나 구리의 서울시 편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취한다고 가정하면 배타적인 이미지가 형성된다. 곧바로 경기권에서의 지지도가 하락하게 된다. 반대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면 편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가진 서울시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며 "오 시장은 서울편입론 등장 자체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든 본인에게 득될 것 없는 변수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그래서 소극적 태도를 고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에서 총선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당론으로 김포시의 서울 편입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 역시 오 시장으로서는 절대 달갑지 않은 이야기"라며 "대선의 최대 중요지역이 서울과 수도권인 것은 맞지만 대선은 서울시장 선거와는 달리 서울 유권자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 시장이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한 "이런 소극적 태도 자체가 역설적으로 오 시장의 대권에 대한 도전의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며 "아직 대선까지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에 굳이 주목받으면서 리스크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방행정 전문가들은 오 시장의 이런 입장에 대해 "한마디로, 메가 서울에 대한 부담"이라면서 '메가 서울'에 대한 국민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최인수 자치분권연구실장(환경공학 박사)은 14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대한민국은 이미 인구감소국가가 됐고, 그 인구마저도 수도권으로의 집중현상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만약 김포나 구리의 서울 편입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메가 서울'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 실장은 "김포나 구리 중 어떤 한 지자체가 서울로 편입되면 그것이 하나의 선례가 된다. 따라서 부천시·광명시·하남시·고양시·의정부시·안양시·남양주시 등 서울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경기도 내 다른 도시들 역시 서울 편입에 대한 요구가 나오게 될 것"이라며 "만약 이들 지자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서울 편입 압박을 가한다면 서울시로서는 전례가 있는 이상 이것을 거절하기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들 지자체가 서울 편입 논리로 내세우는 '메가 서울'은 경남권에서 추진하는 부울경(부산·울산·경남)이나 경북권의 대경(대구·경북), 호남권의 광주·전남 메가시티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며 "비수도권 지역의 메가시티 추진은 지역 인재들을 수도권으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한 각 지역의 자구책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서울의 거대화는 지역의 이런 모든 노력을 소용없게 만드는 블랙홀이 된다"고 우려했다.
최 실장은 "지금도 지역의 젊은 인재들이 모두 수도권으로 몰려가 지역소멸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메가 서울은 서울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는 유리하겠지만 대한민국 전체로는 지역소멸 속도를 몇 배나 빠르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고 서울시 입장에서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안"이라고 경고했다.
오 시장은 오늘 16일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광역시장과 회동을 갖고 수도권 현안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주된 논의 내용은 서울시가 내년 초 시행 예정인 '기후동행카드'를 비롯한 수도권 교통요금 체계에 대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경기도 도시들의 서울 편입과 관련한 현안이 의제에서 빠질 수는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