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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폐지 주워 3500원…발발이 노인들, 오늘도 막걸리로 끼니 [데일리안이 간다 37]


입력 2024.03.13 05:18 수정 2024.03.13 05:18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폐지 줍는 노인들 "고물상 문 닫는 일요일 빼고 매일 나와…일대 뱅글뱅글 맴돌아 '발발이' 별명"

"이렇게 벌어도 밥 한끼 먹기 어려워 막걸리나 먹어…아픈 이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폐지 주워"

"세가 제일 비싼 나라에서 고물상 땅 임대료도 1년에 1억…그나마 일시불로 지불해야"

전문가 "기초생활수급자, 노인 일자리 참여할 수 없어…추가 소득 보장되는 사회보장서비스 필요"

용산구 후암동 거리에서 윤모(79)씨는 320kg의 폐지를 오토바이와 연결한 수레에 잔뜩 채웠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우리나라의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약 40%로 OECD 37개 국가 중 1위이다. 특히 가진 재산이 없고 별다른 기술이 없는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폐지라도 주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내 폐지수집 노인은 지난해 기준 2411명이고, 10명 가운데 7명(65%)이 76세 이상이었다. 이들의 75% 이상은 '경제적 이유로 폐지를 줍고 있다'고 답했지만, 폐지를 모아 버는 돈은 월 평균 15만원에 그쳤다. 시간당으로 따지면 1226원, 최저임금의 10분의 1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이 추가적인 소득을 위해 폐지 줍는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인데, 정작 기초생활수급자들은 관련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며 이런 것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보장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가 뚝뚝 떨어진 12일 오전 10시 20분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한 고물상 앞. 이 곳에서 만난 민모(81)씨는 오전 5시부터 아침도 거른 채 집을 나서 명동·관철동 등 종로 일대를 돌아다니며 150㎏에 달하는 폐지를 가득 모았다. 하루 4~5시간 넘게 폐지를 수레에 가득 채워 고물상으로 향했지만 손에 쥐어진 돈은 단 3500원뿐이었다. 민씨는 "고물상이 문 닫는 일요일 빼고는 매일 나와 일대를 뱅글뱅글 맴돌아 별명이 '발발이'"라며 "일할 땐 모르는데 일이 끝나고 나면 배도 고프고 온 몸이 아프다. 이렇게 벌어도 밥 한끼 먹기 어려워 막걸리나 먹는다"고 토로했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한 고물상 앞에서 만난 민모(81)씨가 12일 4~5시간을 돌아다녀 수레에 폐지를 가득 채워 고물상으로 향했지만 손에 쥐어진 돈은 단 3500원뿐이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40년 동안 폐지를 줍고 있다는 A씨는 몸집의 2배가 넘는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고물상 안에 있는 무게 계량기에 손수레를 올린 A씨는 "이가 상해서 아픈데 이를 치료 하려면 부지런히 한푼두푼 모아야 한다"며 "폐지를 줍는 것 외엔 돈을 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오전 4시 30분부터 일어나 돌아다녔다는 그는 "피곤하지만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이다. 공사하는 곳에 버려진 다양한 종류의 폐지와 재활용품을 많이 주웠다. 다행히 내가 제일 먼저 주웠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고물상 사장 B씨는 "폐지값이 떨어지면서 찾는 사람이 줄어 지금은 하루에 어르신들이 30~40명 정도 온다"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운이 좋아 고철이 들어와도 기껏 벌어봐야 하루 2만원 정도"라고 말했다. B씨는 "폐지로 받는 돈이 1kg당 100원, 고철이 500~600원이 돼야 어르신들도 좋고 고물상도 운영할텐데 우리도 마이너스로 보태드리면서 본전치기 겨우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세가 제일 비싼 나라에서 고물상 땅 임대료도 1년에 1억이 넘는데 이것도 일시불로 한꺼번에 줘야 한다"며 "그런데도 40년이나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푸념했다.


이날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한 고물상에서 만난 윤모(79)씨는 320kg의 폐지를 오토바이와 연결한 수레에 잔뜩 채워왔다. 2004년도부터 용산구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20년 동안 일하던 윤씨는 건강이 좋지 않아 퇴직한 뒤 폐지를 주워 생계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이날 용산구 일대에서 12시간 동안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골판지 박스, 과자 박스 등 폐지를 꾹꾹 쌓아올려 번 돈은 고작 1만원이었다. 윤씨는 "사람만 힘들지 몇푼 안 된다"며 "폐지 줍는 일은 몸이 아파도 계속 해야지. 또 해방촌 언덕길에 폐지를 주으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 한 고물상 앞에 손수레가 세워져 있다.ⓒ김하나 데일리안 기자

이와 관련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위원은 "노후 소득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일이 결국 폐지 수집 일자리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폐지 수집 노인 일자리로 연계한 사업이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지만 막상 폐지 수집 노인들이 참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배 위원은 "노인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참여 기준 자체가 기초생활수급자는 제외된다"며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지만 더 소득이 필요해서 폐지 수집 등을 하고 있는 만큼 기초생활수급에서 추가적인 소득이 지원되는 사회보장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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