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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속의 그늘 [조남대의 은퇴일기(53)]


입력 2024.06.04 14:40 수정 2024.06.04 18:27        데스크 (desk@dailian.co.kr)

오월의 상암동은 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젊은이들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청춘의 푸르름에 가슴이 탁 트이는 역동적인 하루였지만 그 속에서 경쟁이 불꽃 튀는 치열한 삶을 보았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리자마자 인파는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든다.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남아 있음에도 관중을 싣고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두 대는 그 무게가 버거워 끙끙거리며 신음하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자 여유 있게 도착했건만 워낙 인파로 붐벼 즐비한 푸드트럭에서 치킨 한 통을 간신히 사 아내와 함께 허기를 달랬다. 오랜만에 들린 것이지만 관람객이 이렇게 많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봄인 데다 오랜만에 날씨가 화창하여 나들이 차원에서 많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관람객 ⓒ

사부인 가족을 경기장 앞에서 만났다. 오랜만에 온 우리는 어리둥절한데 자주 경기를 관람해 온 사부인은 익숙한 듯 앞장서서 들어간다. 평소에는 중앙에 있는 저렴한 경로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곤 했지만, 오늘은 더운 날씨를 피해 그늘진 서쪽 벤치 쪽으로 표를 구매했다고 한다. 서울 FC 응원석 부근으로 골대가 아래로 보이는 삼 층 좌석이다. 사돈 측에서 여러 번 축구나 야구 경기관람을 하자고 권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오늘에 이르렀다. 활동적인 성격이라 가끔 만날 때도 식사만 하는 것보다는 게임과 같은 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차량 트렁크에는 농구공과 탁구 라켓을 갖고 다닐 정도다. 정적인 우리와는 취향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분기마다 한 번씩은 얼굴을 보는 편이다.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 운집한 관람객 ⓒ
운집한 관람객이 응원하는 모습 ⓒ

경기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렁찬 함성, 커다란 응원 소리에 취해 가슴속에서는 혈기가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이미 관중으로 절반 이상이 채워져 있었고 경기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5층 모서리를 제외하고는 빼곡히 들어찬다. 곳곳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의 등 번호와 이름을 새긴 티셔츠를 입고 온 열성 팬도 상당하다. 몇 년 전에는 제주도에서 대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비행기 타고 단체로 왔다는 분들도 만났다. 어떤 일에 열정을 갖고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취미라는 생각이 든다. 부부와 자녀들이 함께 왔거나, 연인이나 친구들끼리 온 젊은이도 응원팀의 티셔츠를 입고 오는 등 열정적이다. 우리보다 나이 많은 관객은 눈에 띄지 않아 오늘만은 소급된 젊음을 갖고 있다는 뿌듯한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온 관람객 ⓒ
좋아하는 선수들의 이름과 번호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온 관람객 ⓒ

경기가 시작되자 사부인은 큰 캔맥주와 안주를 사 와서 한 캔씩 건넨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기분이 한껏 고조되고 응원 열기에 서서히 빠져든다. 사부인은 서울 FC의 열성 팬이라 환호하며 손뼉을 치거나 안타까울 때는 발을 구르기도 한다. 만만치 않은 나이에도 주체하지 못하는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경기관람을 자주 하다 보니 결과에 대한 예측력도 남다른 것 같다. 울산현대는 지금까지 4연승을 한 강팀이라 서울 FC 측이 질 것 같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할 때는 시무룩하기도 한다. 보통 응원하는 팀이 이길 것이라고 하는 데 질 것으로 예측하다니 전문가 판단 못지않아 보인다. 나는 응원이나 관람을 떠나 망원렌즈가 달린 카메라로 들고 멋진 순간을 포착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이리저리 다녀보지만 신통치 않다. 사부인이 보기에 괜히 폼만 잡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는지.


골대 부근에서 공을 차지하가 위해 치열히 경쟁하는 선수들 ⓒ

경기가 시작되자 서울 FC 골대 부근에서 선수들이 몰려다니다 어느 순간 울산 쪽으로 가서 ‘슛’하더니 골인이라고 소리친다. 모두 일어서 환호성을 울리는데 심판이 오프사이드 깃발을 든다. ‘에이’ 하는 깊은 탄성이 터진다. 상대 팀의 실수에 환호하고 반칙에는 야유를 보내는 가운데 점점 격렬해져 심한 몸싸움으로 다칠 것만 같은 위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멀리에서 쏜살같이 달려와 태클을 걸자 공중으로 솟구친 후 바닥으로 나동그라진다. 그런데도 벌떡 일어나 다시 뛰다니 놀랍기만 하다. 많은 연습에 본능적으로 몸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다. 이런 광경을 보는 가족이나 부인은 얼마나 조마조마하고 가슴 아플까.


공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하는 선수들 ⓒ
라인 밖에서 몸을 풀거나 연습하고 있는 교체 선수들 ⓒ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교체선수 몇 명이 라인 밖에서 쉼 없이 연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교체선수로 들어가 실력을 발휘해야 다음에는 주전 선수로 뛸 수 있을 테니 그런가. 온 힘을 다해 연습하는 후보들을 보자 애처롭기까지 하다. 직장에서도 경기장에서도 주변을 맴도는 이들의 처지는 비슷하다. 누구라도 처음부터 스타가 될 수는 없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았던가.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만이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후보로 남아 있다가 경기장을 떠나는 쓸쓸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치 프로 축구 경기장처럼 매 순간 냉혹한 경쟁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교체 맴버로 들어기가 위해 기다리는 선수 ⓒ

젊은이들의 함성 속에 휩싸이다 보니 오랜만에 가슴속에 잠재되어있던 청춘의 혈기를 발산하기도 하였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진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다. 역동적이지는 않지만 나도 글쓰기를 즐겨하니 얼마나 다행인가. 경기장 라인 밖에서 교체를 기다리며 연습하는 선수들에게 유독 마음이 쓰인다. 측은함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수많은 아웃사이드가 주전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보는 것 같아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이름과 등 번호를 달고 활기차게 뛰어다니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원하면 역설일까.


조남대작가 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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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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