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조정장치' 노동계 눈치에 미적거려
주 52시간제·전국민 25만원 지원금처럼
'오락가락' 행보에 '연금개혁' 혼선 반복
여야가 국정협의회와 국회 내 연금특위를 통해 난항에 봉착한 연금개혁안 논의를 이어간다. 민주당은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노동계 반발이 거세자 일단 소득대체율(받는 돈) 합의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그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52시간 예외' '전국민 25만원 지원금'에서 보여준 정책 혼란상을 두고 이미 신뢰를 잃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여야는 26일 양당 원내대표 회동을 통해 국회 연금특위 설치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오는 28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연금개혁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모수개혁과 관련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모수개혁 부분 가운데 소득대체율(받는 돈) 합의가 이뤄지면 연금개혁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3월 임시국회도 내달 5일부터 열린다.
민주당 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조금이라도 도움되는 방향부터 먼저 시작하자는 게 당연한 우리 입장이고 그렇게 가야만 하는 게 맞다"며 "작은 차이부터 일단 극복하고 그다음에 전진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 4자 회담에서 '국회 승인시 발동'이란 전제 하에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었다.
'자동조정장치'란 연금 재정 상황과 국가 인구 추계 등에 따라 보험료율(내는 돈)과 소득대체율(받는 돈) 등을 자동으로 조정해 연금 고갈을 사전에 막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혁안에서 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노동계는 이를 1인당 평균 연금수령액이 7000만원가량 깎이는 '연금삭감장치'라고 강하게 반발해왔다.
민주당도 반대해왔으나 이 대표가 지난 20일 4자 회담에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현행 40%(2028년 기준)에서 44%로 올리고 자동조정장치를 발동할 때 국회 승인을 받는다는 조건이 받아들여지면 이 제도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소득대체율 43%를 고집하면서 끝내 협상이 좌초됐다는 게 민주당 쪽 주장이다.
이후 민주당은 노동계와 이른바 시민사회가 "연금개악"이라고 강하게 반발하자 구조개혁인 '자동조정장치' 대신 모수개혁인 소득대체율 합의에 집중하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자동조정장치 수용 의사가 부각되자 '집토끼' 표심에 대한 부담이 작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25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자동조정장치를) 국회 승인 조건으로 시행한다고 하는 만큼 논의에서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자동조정장치는 구조개혁에서 논의하면 되는 문제다. 이런저런 조건 걸지 말고 모수개혁부터 합의하자"고 국민의힘의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반도체 연구·개발(R&D) 분야 '주 52시간제 예외'→ 노동계 반발로 철회 △전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포기 시사→사흘 뒤 발표한 추가경정예산에 1인당 25만~35만원 '민생회복 소비쿠폰' 포함 등의 '전적'을 보인 상황에서 또다시 혼선 행보를 반복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은 뼈아프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용주의 '우클릭' 행보를 하면서 전통적 지지층인 '집토끼'도 계속해서 가져가려는 속내로 읽히는데, 오히려 지지층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이재명만의' 정책과 비전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갈지자 행보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신중한 결정을 주문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표변(豹變)이 아니라 돌변(突變)에 불과하다. 신뢰성이 흔들릴 수 있는 문제"라고 했다. 또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이재명 대표가 '세상이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는데 변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때 그때 누가 옆에 있는지에 따라 입장과 생각이 매번 바뀌고 있다"며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로 보인다면 어느 국민이 신뢰하겠느냐"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