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5분'이 만들어준 배우 현우석의 시간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5.11.02 12:54  수정 2025.11.02 12:54

초등학교 6학년 무렵부터 방송 PD나 감독, 연예계 일을 꿈꿨던 현우석은 외할머니의 조언을 계기로 배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중학교 3학년 때 우연히 모델 일을 시작하면서도 배우의 꿈을 함께 품고 있었다. 그는 "완벽한 준비란 없다. 하면서 완벽해지자"라는 마음으로 현장을 경험 삼아 배워갔다.


그렇게 완벽을 기다리기보다 직접 부딪치며 영화 '내가 죽던 날', '아이를 위한 아이', '빅슬립', '돌핀', '힘을 낼 시간' 브로큰 등 장르와 규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의 폭을 넓혀가던 중 운명같은 '너와 나의 5분'을 만났다.


'너와 나의 5분'은 모든 것이 낯설고 무엇이든 새로웠던 2001년, 음악과 비밀을 공유하던 두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이야기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작품상을 비롯해 오사카아시안필름페스티벌 JAIHO상,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 국내외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개봉 전부터 주목받았다.


현우석은 겉으로 보기엔 활발하고 다정한 모범생 같지만, 정작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소년 재민으로 분해 미묘한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그려냈다.


2001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시대는, 배우 현우석에게도 어쩌면 낯설지만 동시에 자신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태어나 자라던 그 시절의 공기를 직접 기억하진 못하지만, 그는 그 시대의 감성과 온도를 온전히 재현하기 위해 스스로 과거의 풍경을 더듬었다.


"어느 시대에나 낭만이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 2001년은 이제 막 제가 태어나고 살고 있을 때라 어릴 적 사진을 많이 찾아봤어요. 사진 속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분위기 속에서 '너와 나의 5분'과 비슷한 장면들을 발견하기도 했고요. 또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해서 당시에 찍어놓은 다큐멘터리나 유튜브 속 영상들도 보면서 그때의 공기를 최대한 느끼려고 했어요.."


현우석이 '너와 나의 5분'을 만나게 된 계기는 독립영화 '빅슬립'에서의 연기를 본 엄하늘 감독이 시나리오를 건네면서부터다. 현우석은 처음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재민이라는 인물과 작품 세계에 강하게 끌렸다.


"시나리오를 받고 처음부터 끝까지 '너와 나의 5분'이 완벽하다고 느꼈어요. 이후 수정될수록 더 완벽해지는 걸 보니 '이건 꼭 해야겠다' 싶었죠. 재민이란 인물이 경환에게 상냥하게 굴다가 달라지는 감정의 흐름도 다 마음에 들었고요. 특히 재민이가 롤러코스터를 타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글로 읽었음에도 인간적으로 다가와 더욱 잘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죠."


재민이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은 현우석이 가장 공을 들인 지점이었다. 재민은 겉으로는 무심하고 시니컬하지만 그 속에는 따뜻함이 흐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 두 감정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 감독과 함께 조율했다.


"이 친구가 가진 시니컬함이나 냉정함 아래 따뜻함이 있거든요. 감독님과 이런 감정들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특히 시니컬함의 정도에 대해서요. 감독님께서는 재민이가 너무 착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그 톤을 맞춰가는데 많이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화내는 장면에도 이유를 만들어야 했어요. 감정의 명분이 확실해야 중심이 잡히니까요. 또 눈빛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은 툭툭 내뱉어도, 진심은 눈에서 드러날 수 있도록 표현하려고 했죠."


경환과 재민의 관계가 미묘하게 어긋나기 시작하는 시점, 현우석은 감정의 방향을 단번에 꺾은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민이 말하지 못한 마음이 다른 형태로 드러나고는 한다.


"재민이가 과거 왕따를 당했다고 고백하잖아요. 아마 경환과 같은 이유로 놀림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면서 너무 솔직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을 테고요. 재민의 입장에서는 한 번 상처를 받았으니 자신과 같은 질타나 상처들이 경환에게 반복되지 않았으면 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경환을 밀어내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야기의 결말에서 현우석은 재민이의 마음보다, 그 마음이 남긴 여운에 집중했다. 그는 두 인물의 관계를 단순한 성장담이 아닌, 서로에게 흔적을 남긴 기억으로 바라봤다.


"재민이를 찾을 수 없게 된 상황 자체가 경환에게는 신기루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도 사이트 주소는 남아있잖아요. 그러면서 왜 '페이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가 됐을까 생각해 보면 경환과 함께했던 추억들이 그렇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이후 재민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는데 감독님은 재민이가 결혼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다닐 것 같다고하셨어요. 저는 오히려 경환과의 사이를 계기로 시간이 얼마나 걸릴진 몰라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경환이가 현재 남자친구가 있듯이 재민이도 솔직함을 선택했을 것 같아요."



'너와 나의 5분'은 '로비'에서 존재감을 발휘한 배우이자, '피터팬의 꿈, 찾을 수 없습니다' 등을 만든 엄하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현우석은 그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며 엄하늘 감독을 "사랑스럽고 세심한 감독님"이라고 표했다.


"너무 사랑스러운 분이었어요. 포커페이스를 너무 잘하시는 분 같아요. 현서도 처음 오디션 봤을 때 감독님의 표정을 보고 '다 떨어졌나' 싶었대요.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 마음에 들어 하신 상태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감독님과 작업하며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들을 알아가는 시간들이 재미있고 좋았어요. 아마 감독님이 미묘하게 바뀌는 표정들이 재민이의 마음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고요. 현장에서도 배우의 입장에서 생각과 배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감정 나올 때까지 시간 주시고 연기하다 막히면 배우로서 설명해 주기도 하셨고요. 그리고 정말 세심한 분이세요. 보통 단역 배우들은 이름 없이 '학생1', '학생2' 이런 식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데 이번엔 전부 각자 이름이 설정돼 있었고, 감독님이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다 외워주셨어요. 그런 디테일에서 '아, 이분은 진짜 배우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감독님이구나' 느꼈죠.


재민과 경환 중 서로 중 누구의 마음이 먼저 열렸을까. 현우석의 해석은 재민이었다.


"저는 재민이 경환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봤어요. 농구 가르쳐 줄 때도, 음악 얘기할 때도 이미 마음이 움직였을 거예요. 장난처럼 말해도 다 진심이 담긴 말들이었죠. 아마 경환이는 재민이에게 편한 울타리 같은 존재 아니었을까요? 버스 안에서 재민이가 잠에 들잖아요. 흔들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서 잠에 드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경환이가 그 정도로 편하게 느껴져 잠에 빠질 수 있었던 거죠. 그건 신뢰의 표시였다고 생각해요."


상대역 심현서와의 첫 만남부터 친해질 수 있었다. 덕분에 현장에서의 감정 연기도 편한 분위기 속에 진행돼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빌리 엘리어트'에서 빌리 역을 했던 실력은 이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연기야 당연히 잘하겠지, 사람적으로 나랑 잘 맞을까?' 그게 궁금했어요. 첫 미팅 때 현서가 먼저 와 있었는데, 저를 보자마자 너무 밝게 맞아줘서 놀랐어요. 그 순간 마음이 확 열렸어요. 가면을 벗겨주는 사람 같았거든요. 나이 차이는 좀 있지만 형·동생보다는 친구처럼 편했고, 불편한 이야기든 좋은 이야기든 솔직하게 나눌 수 있는 진짜 좋은 동료였어요."


두 소년의 마음을 잇는 매개는 글로브의 대표곡 ‘디파쳐스'(Departures)와 '페이시스 플레이시스'(Faces Places)등 제이팝이다. 당시만 해도 제이팝이 모두에게 익숙한 음악은 아니었기에, 재민과 경환에게 이 노래들은 서로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 언어처럼 작용한다.


"이렇게 유명한 노래들을 이제야 알게 돼 아쉬웠어요. 대구 사투리 배울 때도 첫 시작은 노래 듣기였죠. 이 계기를 통해 제이팝에 흥미를 갖게 됐어요."


강원도 출신인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대구 사투리에 도전했다. 익숙하지 않은 억양이었지만 그만큼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사투리 연기를 해보고 싶었고 너무나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두 달 이상 사투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어요. 감독님과 현서가 대구 사람이라 그들에게도 많이 도움을 받았고요. 최선을 다했으나 역시 대구 출신인 현서를 따라갈 순 없겠더라고요."


'너와 나의 5분'은 지난해 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장편 작품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맞이하기도 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처음 가보는 자리라 정말 설렜어요. 음악영화제라는 게, 말 그대로 음악이 중심이 된 작품으로 참여해야 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이 작품으로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게 돼서 너무 자랑스러웠어요.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죠. 현장 분위기도 정말 좋았어요. 관객 반응이 따뜻했고, 함께 출연했던 배우들과 학생 배우들, 스태프들까지 모두 가서 더욱 즐거웠고요. 영화를 찍은 뒤에도 이렇게 한 작품으로 모두가 끝까지 함께하는 경험은 처음이었거든요.


현우석은 도전해 보고 싶은 연기가 많다. 사극부터 감정의 결이 섬세한 멜로까지, 장르의 폭을 넓혀가며 자신만의 진심과 공감이 담긴 배우로 성장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제가 사극을 좋아해서 사극에 꼭 출연해 보고 싶어요. '헤어질 결심' 같은 복잡한 감정의 멜로 영화도 찍고 싶고요. 롤 모델은 강동원 선배님과 송강호 선배님처럼 진한 공감을 전하는 배우가 되는 거예요."


‘너와 나의 5분’은 현우석에게 단순한 필모그래피가 아니라, 자신을 한층 성장시키고 단단하게 만든 시간으로 남아 있다.


"작년에 '너와 나의 5분'을 찍을 때는 체중을 10~12kg 정도 늘린 상태였어요. 이후 살을 빼기 시작하면서 좋은 기운이 많이 생겼던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살았고, 좋은 기억들로 가득했던 시기였죠. 올해는 넷플릭스 작품 '기리고' 촬영까지 이어지면서 꽤 치열하게 보냈어요. 계속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죠. 돌이켜보면 '너와 나의 5분'을 찍은 이후부터 그런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온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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