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수의 90%…박스가 채운 토요스 청과동 모습 [일본 유통·전통주 현장①]

김소희 기자 (hee@dailian.co.kr)

입력 2025.12.02 14:01  수정 2025.12.02 14:01

일본 청과 유통 구조가 드러난 토요스시장

정가·수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거래 체계

규격화와 산지 조직이 만든 상대거래 기반

한국도 정가·수의 확대와 시장 현대화 병행

26일 새벽 5시 30분 토요스시장 수산동에서 참치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11월 26일 새벽 5시. 도쿄도 고토구에 자리한 토요스시장은 조용한 바깥 풍경과는 다르게 열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참치 경매가 열리는 7블록 경매장에는 크기와 선도가 다른 참치 수십 마리가 일렬로 진열돼 있었고, 중개인들은 손가락으로 가격을 표현하며 경매사와 호흡을 맞췄다. 호창이 이어질 때마다 참치 한 마리씩이 순식간에 새 주인을 찾았다.


수산 경매장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진 곳이 청과동이다. 채소·과일이 담긴 박스가 구획마다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사람들의 발걸음만 조용히 오갔다.


이날 경매는 물밤 등 소수 품목에서만 열렸다. 평소 출하량이 많지 않아 시장 가격 형성이 필요할 때만 경매 절차가 이뤄진다고 한다. 현장에서는 JA(일본농협)가 직접 나와 상품을 소개하며 거래를 돕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토요스시장은 2018년 10월 개장한 도쿄도 중앙도매시장이다. 이전 장소였던 츠키지시장(23ha)보다 1.7배 넓은 40ha 규모로, 수산도매동, 수산중개동, 청과동(5블록)으로 구역이 나뉜다.


시장 전체가 폐쇄형 구조로 설계돼 외부 공기 유입을 최소화하고, 블록별 온도 조절을 통해 상품의 신선도를 유지하고 있다. 내부 동선 또한 경매장-중도매매장-중개동-일반인 판매층까지 단계별로 분리돼 있다.


26일 오전 토요스시장 청과동 모습. 농산물은 정가·수의매매 비율이 90%를 넘는다. 때문에 대부분 농산물이 배송되기 위해 박스에 포장돼 있다.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일본 도매시장을 움직이는 ‘정가·수의 90%’ 구조


청과동의 조용함은 일본 중앙도매시장의 거래 방식에서 비롯된다. 일본의 청과 거래는 정가·수의 매매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경매는 예외적인 품목이나 특별한 가격 판단이 필요한 상황에서만 선택된다.


스니카 토모키 도쿄도 중앙도매시장 과장대리는 “청과동 전체로 보면 거의 전량이 정가·수의로 움직인다”며 “경매는 가격이 낮게 형성될 가능성이 있어 생산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가·수의가 가능한 이유는 품질 규격이 명확하고, 산지 조직과 도매법인 간 사전 협의가 오래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토요스시장에 정가·수의가 정착된 배경에는 시장 설계도 크게 작용했다.


야마코시 마사히로 과장대리는 “쓰키지시장에는 없던 소분·가공 기능을 토요스 이전 시점에 반영했다”며 “청과동 3층에 세척·소분·포장 시설이 있어, 도매법인과 중도매인이 즉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 방식 역시 팔레트 규격화를 기본으로 해 물류 속도를 높였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시스템도 거래의 효율을 뒷받침하고 있다.


가격 형성 방식 역시 상대거래 구조에 맞춰져 있다. 스니카 토모키 과장대리는 “기상 영향으로 가격이 흔들리는 품목이 있어도, 최종 가격은 산지와 도매법인의 협의를 통해 조정된다”고 말했다.


오노자키 히로타카 과장대리도 “상대거래가 기본이 되면 출하자는 일정 단가를 예측할 수 있어 불확실성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도쿄도 고토구에 자리한 토요스시장 전경.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산지 조직·규격화·물류 기능이 만든 거래 안정성


일본의 정가·수의 구조는 산지 조직화, 품질 규격화, 도매법인 협의 구조 등 여러 요소가 맞물려 형성된 방식이다.


품목별 규격이 명확해 사전 협의가 수월하고, 시장 내부에는 즉시 포장·소분이 가능한 패키징 시설이 마련돼 있다. 물류는 팔레트 규격화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대부분의 물량이 그날 입고돼 그날 나가는 구조다.


이런 체계는 경매 중심 구조와 다른 방식으로 가격 안정성을 확보한다. 가격이 일시적으로 흔들리는 품목도 산지-도매 협의를 통해 조정되며, 출하자는 상대적으로 단가 예측이 가능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 10월 인천 남동구 남촌농산물도매시장이 제수용 및 선물용 과일을 구입하려는 시민들고 붐비고 있다. ⓒ뉴시스
국내 도매시장 구조 개선…정가·수의 기반 확대 추진


일본과 다르게 우리나라 도매시장은 경매 비중이 약 67%, 정가·수의는 20% 안팎이다. 이에 정부는 정가·수의 기반 확대를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출하자 조직화 강화를 통해 사전 협의 기반을 넓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 중이다. 품목별 규격·등급 체계 고도화도 병행되면서, 품질의 균일성을 높이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산지유통센터(APC)의 스마트화도 진행되고 있다. 자동 선별·포장·라벨링 등 기능을 갖춘 시설을 도입해 출하 단위를 일정하게 맞추고, 정가·수의 매매가 가능하도록 기반을 확충하는 방식이다.


도매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도 추진돼 저온 유통 체계 확립과 물류 동선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시장에서는 사전 협의 기반 거래 시범사업도 운영 중이다.


정부는 디지털 전환에 대응하기 위해 온라인 기반 도매거래 시스템 구축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거래 정보를 투명하게 공유하고 사전 협의 기반을 넓히기 위한 것이다.


정가·수의 확대는 거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이며, 정부는 산지·시장·물류 전반을 고려해 제도 기반을 보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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