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어진 공간만큼, 더 깊어진 울림…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D:헬로스테이지]

2026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박천휴와 윌 애런슨 콤비의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로 무대를 옮겨 관객을 만나고 있다.

2015년 우란문화재단 트라이아웃 이후 10주년을 맞이한 이번 프로덕션은 기존 40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620석 중극장으로 물리적 공간을 확장한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특히 외형적 변화를 단순한 규모의 확장이 아닌, 작품의 내적 밀도를 높이는 기제로 활용했다는 점이 이번 시즌의 가장 돋보인다.

ⓒNHN링크

규모가 확장됨에 따른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무대다. 기존 구조물에서 후면 벽을 개방하면서 무대의 깊이감을 확보했다. 이는 공간을 억지로 채우는 대신, 헬퍼봇들이 사는 공간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구현하여 그들의 고립감을 우아하게 시각화한 선택이다. 넓어진 공간은 역설적으로 서로에게 닿으려는 인물들의 의지를 더 선명히 보이도록 한다.

이러한 무대의 확장은 영상 및 조명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특히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숲 장면은 넓어진 무대 덕분에 더욱 환상적으로 구현됐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배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의 흐름과 동기화된 시각 효과를 선보이는 것도 인상적이다. 둥글게 마감된 가구와 LP판 등 소품의 디테일 역시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강화하는 요소다.

공간의 확장은 청각적인 변화로도 이어진다. 6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는 연강홀의 공간감과 결합해 더 깊어진 울림을 만들어낸다. 제임스가 연주하는 피아노 솔로는, 실제 음악감독이 위치한 객석 측면에서 진행되면서 연기 공간과 연주 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극적 몰입도를 높이는 연출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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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배우인 전미도와 고훈정은 연기로 작품의 서사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클레어 역의 전미도는 정확한 딕션과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헬퍼봇의 불안함을 눈빛과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하는 등 초연 멤버로서의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임스 역의 고훈정은 특유의 단단하고 따뜻한 음색으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 뉴 캐스트인 정휘 역시 로봇 특유의 경직된 움직임과 순수한 소년성을 강조한 신선한 올리버를 만들어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프로그래밍된 규칙을 위반하고 기꺼이 ‘사랑’이라는 비효율을 학습해가는 헬퍼봇들의 여정을 그린다. 정해진 수명을 향해가는 이들의 선택은 인간의 유한한 삶과 맞닿아 보편적인 공감을 안긴다. 10년의 시간을 거쳐 중극장에 안착한 이번 시즌은, 무대의 물리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작품 고유의 서사가 가진 밀도가 여전함을 증명해낸다. 공연은 2026년 1월 25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