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美 노동시장 구조조정 핵심사유 부상
비용절감 넘어 노동력 대체하는 AI
韓 기업, 구조적 경직에 신규 채용↓
ⓒ게티이미지뱅크
인공지능(AI)이 글로벌 고용시장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미국에서 AI는 이미 구조조정의 핵심 사유로 떠올랐고, 그 영향이 우리나라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지난달 글로벌 고용 컨설팅 기업 챌린저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가 발표한 ‘10월 감원 발표 보고서’는 AI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노동력 대체 수단으로 자리 잡았음을 수치적으로 증명하면서 충격을 줬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월 미국 기업 감원은 15만3074명으로, 전달보다 183% 급증했다. 10월 기준으로는 2003년 이후 최대치다.
감원 규모보다 놀라운 것은 감원의 사유였다. 미국 기업들이 가장 많이 꼽은 감원 사유 1위는 ‘비용 절감(5만400명)’이었지만 ‘AI(3만1000명)’가 3만1000명으로 2위에 올랐다. AI로 인한 감원이 경기 악화, 구조조정 등 전통적인 감원 사유를 제친 것이다.
CG&C 보고서에서 AI가 감원 사유 항목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올해 5월(3900명)이었으나, 불과 5개월 만에 핵심 사유로 급부상했다. 이는 AI가 미국 고용시장 지형을 급격히 바꾸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AI는 테크 분야를 넘어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 고객 응대 등 화이트칼라 영역까지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노동 대체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낮은 고용유연성 AI 혁신 발목
미국의 강한 고용 유연성은 AI 혁신을 가속화하고 노동력 재조정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AI발 고용 충격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과 차이가 있다.
한국은 고령화와 저출생에 따른 잠재성장률 둔화를 반전시킬 핵심 동력으로 AI를 설정하고 있으나, 지나치게 낮은 고용 유연성이 AI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가 어려운 구조적 경직성 탓에 기업들은 AI 혁신을 진행하더라도 기존 인력을 감축하기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는 특히 청년층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AI 확산과 청년 고용 위축’ 보고서에 따르면, 생성 AI가 등장한 2022년 11월 이후 AI 고(高)노출 업장에서 청년 고용은 20만8000명 줄어들었다. 반면, 조직 관리 역할을 하는 50대 이상 고용은 14만6000명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AI 기반의 노동 대체가 연령대별 고용 충격의 불균형을 야기하며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와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고용유연성 높이는 타협 필요…고용 안전망 확보 필수
한국이 AI 시대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AI 혁신을 위해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해 기업의 자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실업급여와 근로자 교육 및 재훈련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 노동자의 고용 안전망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는 정년 연장과 관련해 현행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를 둔 채 정년만 서둘러 연장할 경우 노동 경직성을 확대하고 청년 취업난을 가중시켜 AI발 고용 충격을 더 세게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한국 전체 실업자 중 대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0년 37.7%에서 2024년 47.8%로 상승했고, 올해 1~3분기에는 49.6%까지 올라갔다. 인구 감소로 인해 전체 실업자 수는 줄고 있는 추세이지만 실업자 중 대졸 비중은 꾸준히 우상향하고 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 정책의 경우 현재 경직성이 지속된다면 과도한 자동화와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인간 노동을 중시하는 사회안전망 전반의 재설계와 함께 다양한 사회적 필요들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제도적 조정이 요청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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