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달린 李정부 실용외교…성과는 확인했지만 리스크는 커졌다

맹찬호 기자 (maengho@dailian.co.kr)

입력 2025.12.07 06:00  수정 2025.12.07 06:14

관세·안보 협상 타결…'핵잠'까지 끌어낸 성과

막대한 투자 부담…산업·재정 후속 검증 필요

내년 미북대화·일중균형, 실용외교 성패 좌우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중심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며 비상계엄 여파로 멈춰 섰던 정상외교의 시동을 다시 걸었다. 그러나 인수위원회 없이 곧장 국정운영에 돌입한 만큼 외교 무대의 현실은 결코 가벼운 수준이 아니었다는 평가다.


가장 시급했던 과제는 미국이 8월부터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한국이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협상 조건을 확보하는 일이었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철강·배터리 등 주요 산업 전반에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워싱턴과 서울에서 동시에 제기됐다.


이같은 압박 속에서 이 대통령은 막판까지 이어진 실무 협상에서 마감 시한 직전까지 버티며 협상력을 집중했다. 그 결과 7월 31일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약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제시하는 이른바 '빅딜'을 성사시켰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 산업의 대미 수출 여건을 유지하는 동시에 중장기 미국 시장 투자 기반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절충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막대한 투자 규모가 국내 산업·재정에 어떤 부담으로 돌아올지에 대한 후속 검증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이어 8월 말 워싱턴DC에서 첫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며 협상이 탄력을 받는 듯했지만, 투자금 운용 방식을 둘러싼 이견이 불거지면서 분위기는 다시 냉각됐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10월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2차 한미 정상회담이었다. 양측이 팽팽히 맞섰던 쟁점들이 이 자리에서 일괄 정리되면서 사실상 협상의 ‘마지막 고비’를 넘긴 것이다.


결국 한미 양국은 통상·안보 분야 세부 합의문을 양해각서와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형태로 공개했다. 이 대통령은 관세 문제를 매듭짓는 데 그치지 않고, 핵추진잠수함 건조 추진을 공식 의제로 끌어올리는 성과까지 확보했다. 외교·안보 두 축에서 모두 예상보다 큰 진전을 이뤄내며, 취임 이후 처음 맞은 본격적 외교 시험대에서 '합격점'을 받았다는 평가가 정부 안팎에서 나온다.


한미 정상의 대화 ⓒ대통령실

다자외교 일정도 숨 돌릴 틈이 없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12일 만에 캐나다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을 시작으로, 9월 미국 뉴욕 유엔총회, 10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11월 주요 20개국(G20) 회의까지 6개월 동안 다섯 차례 국제무대를 오가며 '외교 정상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발신했다.


연말 APEC 정상회의는 올해 외교 일정의 정점으로 평가된다. 한국이 21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 경주선언을 이끌어낸 데 이어, 국제사회가 주목한 미·중 정상회담을 별다른 파열음 없이 마무리했다는 점은 우리 외교의 존재감을 한층 분명히 각인시켰다는 분석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국이 단순한 개최국을 넘어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 이번 회의의 가장 큰 의미”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실용외교가 직면할 본격적인 시험대는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가운데 미·중 전략 경쟁이 지속되고, 보호무역주의 확산이 구조적 흐름으로 고착되는 등 한국 외교·경제 환경은 한층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특정 현안의 단기 조정보다는 중장기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전략적 포지셔닝이 더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반도 평화 구상 역시 정부가 본격적으로 손봐야 할 주요 과제로 꼽힌다. 이 대통령은 지난 반년간 'E.N.D.(교류·Exchange, 관계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이니셔티브'를 제시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스메이커’ 역할을 강조하는 등 북미 대화 재가동을 위한 외교적 기반을 조성해왔다.


여기에 미국 행정부 내부의 기류 변화, 북한의 신호 파악 등이 맞물릴 경우 새로운 협상 구도가 형성될 여지도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집권 2년 차부터 남북 간 대화 채널 복원,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 경제·인도 분야 교류의 단계적 복원을 동시에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미북대화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핵 없는 한반도'라는 원칙 아래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분명히 세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앞세워 한국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한 만큼, 외교 공간을 되찾고 협상 테이블에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 정부의 첫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일중 갈등이 빠르게 격화하는 가운데, 주변국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잡을지도 향후 외교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한일, 한중 관계 모두 관리·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안보 측면에서는 한미일 공조가 필수적이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불가결하다는 현실도 외면할 수 없다. 결국 이 복잡한 삼각 구도 속에서 한국이 어느 지점을 선택하느냐가 향후 외교 지형을 좌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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