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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롯데 투수 박동희, 교통사고 사망


입력 2007.03.22 10:58 수정        

150km의 강속구로 ´제2의 선동렬´ 찬사

그의 사망소식에 팬들 애도의 물결

롯데 자이언츠서 ‘강속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박동희(39)씨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박씨는 22일 오전 3시 15분경 부산 광안동 도로에서 자신의 다이너스티를 몰고 가다 버스 승강장 기둥을 들이받고 현장에서 가슴 등을 크게 다쳐 숨지고 말았다.

사고 당시 승용차에는 박씨 혼자 있었고 사고 장소가 직선도로인 만큼, 경찰은 음주운전 여부 등 정확한 사고 경위 조사에 들어갔다.

서른아홉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박동희씨는 부산고 재학 시절부터 150Km의 강속구를 던지며 ‘제2의 선동열’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촉망받던 유망주 투수였다. 특히, 1985년 고교 3학년 시절 봉황대기에서 방어율 0을 기록하며 팀 우승을 이끌었고, 고려대로 진학해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는 등 최고의 주가를 올렸다.

박동희는 프로 입단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팀으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을 정도로 화제가 됐지만, 결국 당시 최고 계약금이었던 1억 5200만원을 받고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1990년)했다.

데뷔 첫 해 10승 7패 7세이브를 거둔 그는 데뷔전에서 10탈삼진을 기록, 국내 프로야구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91년에도 14승 9패 3세이브를 거두며 최동원-윤학길 등 롯데의 간판투수 계보를 이을 투수로 인정받았다. 이듬해 한국시리즈에서 2승 1세이브의 활약으로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리한 투구에 따른 고질적인 팔꿈치 부상에 시달리며 1997년 삼성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됐다. 삼성으로 이적한 후에는 7승만을 거두며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결국 2001년 7월 팀에서 방출, 2002년 선수 생활을 접었다.

박씨는 은퇴 후 지도자의 길을 걷기를 원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부산에서 식구들과 함께 식당을 운영했고, 스포츠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야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박씨의 빈소는 수영구 광안동 좋은강안병원에 마련됐다.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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