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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국민 정쟁' 우려되는 민주당의 직접민주주의


입력 2020.05.07 07:00 수정 2020.05.07 05:51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민주당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민주당이 20대 국회 마지막 과제로 ‘국민 발안제 개헌안’을 들고 나왔다. 국민 100만 명 이상의 발의로 헌법개정이 제안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골자다. 대통령과 국회만이 가지고 있는 개헌안 발의권을 국민에게 돌려주자는 직접민주주의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나아가 민주당은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일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소에 정치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가 선거 때 한번 행사하는 이런 간접민주주의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도 국민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가 여론을 주도하지 못하고 광장에 이끌렸던 ‘촛불혁명’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는 만큼, 논리구조는 자연스럽다.


명분도 강력하다. 헌법상 주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에게 권한을 돌려주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원형에 가깝고, 현실적 이유에서 대의제에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가미해 운용하고 있다’는 일부 교과서의 내용은 이 같은 주장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하지만 사실 대의제는 원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고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제도다. 다양한 국민의견을 선출된 대표자가 수렴하고 반대진영과의 합의를 통해 민의를 반영하는 것이 누가 봐도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다. 대의기관이 민의와 괴리가 있다면, 그것은 대의기관의 문제이고 보완해야할 과제이지 직접민주주의로 해결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는 비교적 국회에 한정됐던 ‘정쟁’의 범위를 국민으로 넓힐 위험이 크다. 촛불집회 당시 반대편에는 태극기 집회가 벌어지며 국민들 사이 극심한 대치가 있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또다른 예다. 청와대가 공개적으로 국민의 민원을 직접 듣고 해결한다는 당초의 좋은 취지는 퇴색됐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청원’ ‘민주당 해산청원’ ‘통합당 해산청원’ 등을 놓고 서명 동의자 경쟁을 벌이는 여론전의 장이 된지 오래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국민발안제 개헌안도 마찬가지다. 국민발안으로 개헌안이 오른다고 해도 어차피 국회 내에서 논의와 합의를 거쳐야 한다. 총선승리로 180석을 확보한 민주당이 발의하는 것과 큰 차이는 없다. 결국 국민을 내세운 여론전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요한 정치적 결정에 대한 책임을 국민에게 미룬다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도 있다.


국회의원 국민소환제는 어떨까. 특정 정치인을 제거하거나 지지자들을 동원한 흠집내기 용도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특정 정치인 한 명을 놓고 국민 간 적대적 감정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례성과 표의 등가성을 확보하자며 ‘연동형비례제’를 도입했다가 거대 여야 꼼수위성정당의 출현이라는 취지와는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무엇보다 서구에서는 독재자들이 ‘직접민주주의’ 더 선호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역시 직접민주주의의 일환인 국민투표를 통해 독재정부가 탄생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거대정부를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크다. ‘국민’을 앞세워 야당을 찍어내기 좋은 환경임은 분명하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지난 2017년 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국민을 앞세운 반정치주의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었다.


“정치가 적폐 세력과 적폐척결 세력의 싸움으로 정의되면, 나머지 세력은 적폐옹호 세력, 방조 세력으로 단순화되게 마련이다.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세력을 배신자로 공격하려는 열정도 제어되지 못한다. …중략… 이 모든 일은 결국 국민을 앞세우는 한편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반정치주의로 귀결되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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