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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 폴리테에서 똥개로 전락한 홍준표


입력 2020.05.19 08:30 수정 2020.05.19 08:21        데스크 (desk@dailian.co.kr)

<모래시계> 검사로 얻은 정의로운 투사 이미지 총선 후 제발로 걷어차

사감에서 비롯된 인신공격성 비난 지나쳐...대선 후보 명견 품격 상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21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공천 면접심사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래통합당 제21대 국회의원 예비후보자 공천 면접심사를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홍준표는 걸핏하면 남을 공격하는 사람으로 비친다. 그 공격은 그의 현재와 과거에 일어난 일로 인한 사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언론의 보도이다.


그래서 급기야 '똥개'로 비유되는 처지로 떨어졌다. 언론에서는 보통 똥을 X로 표기하고, 이를 해독하지 못하는 독자들은 거의 없지만, 필자는 똥을 똥으로 표기하고자 한다. 영어 식으로 한다면, 'ㄸ 단어'(F word 처럼)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똥은 굳이 그래야 할 단어가 아니다.


총선 전 여당 실력자들이 비례용 위성정당 설립 문제를 모처에서 논의할 때 '정의당과 함께 하는 순간 똥물에서 뒹굴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는 보도를 할 때는 X물보다는 똥물 그대로 표기하는 매체들이 많았다. 우리말의 똥은 ㅆ 단어와는 류가 다른, 저속한 말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그 지칭 대상이 홍준표 아닌 정의당이었기 때문이지 않았나 한다.


홍은 기개(氣槪)가 있는 사람이었다. 필자가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90년대에 송지나와 김종학이 쓰고 연출한 TV 24부작 <모래시계> 검사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그의 이미지는 정계 진출 초반부터 소신 있고 강직한 투사형으로 새겨졌다.


이 드라마 덕에 조폭과 권력 수뇌부를 잡아들이는 그를 마니 폴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들' 이란 뜻, 90년대 초 이탈리아 디 피에트로 검사 주도로 고위공무원 의원 기업인 등 3000여명을 수사한 부패와의 전쟁)로 불리게도 했다. 나중에 '꼴통 보수' 국회원의이 된 홍준표가 자신의 드라마 주인공 모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었는지 작가는 그것을 부인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말하자면 홍은 드라마로 이름값이 올라 간 것이었는데, 그 이미지에 맞는 정파의 선수가 되지 못함으로써 그 드라마 작가에게 실망을 주고, 결과적으로 <모래시계>의 '전설'에도 상처를 준 셈이 됐다고 작가도 일부 팬들도 본 것 같다.


드라마 방영은 1995년 1~2월이었고, 홍이 금배지를 단 것은 2001년 12월 서울 동대문을 보궐선거였다. 그는 이 선거에서 한나라당(현 미래통합당의 세 번 전 당명) 후보로 나와 50% 이상을 득표해 당선됐다.


그가 한나라당 선수로 나온 건 잘못이 아니다. 송지나가 그린 이미지에 맞추려고 민주당에 입당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념과 취향을 존중해줘야 한다.


문제는 그의 좌충우돌 기질이다. 네이버 인물정보에 나와 있는 그의 생월일은 12월 5일이다. 염소자리(Capricorn)다. 인터넷에 나오는 이 별자리 성격의 일반적 특징은 강인한 의지와 부지런함이 장점인 반면 고집이 강하고 밝지 않으며 날카로운 공격 성향이 단점이다.


필자에게 언론에 비친 홍의 모습이 바람직스럽지 않았던 순간이 종종 있었는데, 지난해부터만 보더라도 당내외 주요 인사들을 비판하고 비난한 경우가 최소한 4차례다. 이 네 번으로 그는 강직 소신파 이미지를 제발로 걷어차 버리고 한낱 불평불만 반대파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야인으로 내려 와 있을 때나 지도부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 심한 독설로 저격한다. 작년 여름 조국 사태로 보수 야당이 전선에 총집결해 있는 상황에서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을 즐기면서 아군에게 때로는 격려를 하면서도 자주 그 지휘부를 질타했다.


마치 자신에게는 절묘한 수가 있는데 당 대표(황교안)나 원내대표(나경원) 능력이 모자라 다 이긴 게임을 놓쳤다는 식이었다. 야당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한달 만에 장관직을 사퇴했다면 사실상 항복을 받은 것 아닌가?


그의 비난 독설은 늘 지나치다는 것도 팬들에게는 통쾌할지 몰라도 균형 감각을 가진 이들에게는 아슬아슬하게 느껴지는데, 그 대상이 대개 자신과 과거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사람들이란 점에서 또 그의 그릇 크기를 느끼게 한다.


거대야당(당시에는) 공천 총지휘자인 김형오가 자신의 희망대로 지역구를 주지 않자 사천(私薦)이라고 흥분하며 소속 당 공천 전체가 엉망으로 일그러졌다는 인상을 일반인들에게 심어 주었다. 이것도 사실 자당의 참패 원인 중 일부가 됐다. 자신은 보수 텃밭인 영남에 가서 상대적으로 손쉬운 승리를 거두면서 다른 동료 후보들의 힘은 빼버린 셈이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당에 자기 이름이 걸려 있을 때였다. 탈당하고 나서 참패한 보수 야당을 재건할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되고 영입이 타진되던 김종인에게 겨눈 그의 야유와 험담은 그에게 여태 동반되어 오고 있던 전 대통령 후보로서의 예우가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거의 자동으로 복당이 될 신분이긴 했을지언정 그때는 어디까지나 남의 당이다. 그 당이 존폐 위기에서, 이력이 순결하진 않을 망정 유일하게 난마(亂麻)를 풀 수 있는 인물로 지목해 모셔오려고 하는 대목에서 그가 쏘아댄 인신공격성 비난은 대선 후보를 지낸 사람의 품격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의 앙심이 '다음 대선 후보는 70년대생에서 나와야 한다'고 한 김종인의 발언 이후 나왔다는 점에서 몹시 구차하다. 대권 재수 의사가 강한 자신을 아예 후보 자격 제외자로 보고 있다고 봐서 격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보면 80세가 아니라 70세만 되어도 세속적인 욕심을 갖지 않게(또는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홍준표 자신 또한 66세이다. 그런 그가 80세 김에게 노욕이니, 정계에 기웃거린다느니 하는 건 인간적으로 무리한 언사였다. 혹시 그의 집착, 잘못된 애국심을 비판한다면 해도 되었을 것이다.


홍준표는 이렇게 자기 집 일도 아닌 일에 노구의 몸으로 대청소 용역을 맡을까 말까 저울질하고 있던 노인에게 막말을 하며 삿대질을 한 대가로 진보 논객 진중권으로부터 '집 밖에서 싸우는 똥개' 라는 식의 충격적인 낙인을 얻고 말았다.


진중권은 언젠가부터 보수 집단 안에서 하기 힘든 목소리를 '집 밖에서' 내고 있는 '보수 대변인'이다. 홍은 그에게 분수를 모르고 떠들다 똥개 취급 당할 수 있다, 라고 앙갚음하는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똥개 낙인도 모자라 말과 품위로는 당하기 어려운 대학교수 출신 논객을 향해 짖는 그의 모습에서 '마니 폴리테 대선 후보 명견'의 풍모는 사라지고 없다.


글/정기수 캐나다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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