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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 "장애인 향한 편견 깨고 싶었죠"


입력 2020.05.24 09:52 수정 2020.05.25 19:30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 이야기"

부산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영화사진진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영화사진진

보고 나면 감독이 궁금한 영화가 있다. '나는보리'가 그렇다.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따뜻한 이 영화를 보고있으면, 이런 작품을 만든 감독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만난 김진유 감독(32)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보리처럼 따뜻했고, 말 한마디마다 영화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왔다.


'나는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가족 사이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열한 살 아이 보리(김아송 분)가 가족들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에 특별한 소원을 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聽人),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의 이야기다. 보리는 소리를 듣지 못해서 외로움을 느끼다 소원을 빈다. "나도 엄마, 아빠, 동생처럼 소리를 못 듣게 해달라고."


그간 나왔던 장애인 소재 영화는 장애인의 힘듦과 고난, 좌절, 그리고 극복에 중점을 뒀다. 하지만 '나는보리' 속 보리네 가족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장애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존재한다.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많은 영화에서 장애인들을 불쌍한 존재로 소비되는 게 불편했고, 이런 점 때문에 장애인을 우리와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장애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일상적이고 보편적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농부모를 둔 김 감독은 2015년 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참석했다. 세 아이를 키우는 현영옥 씨가 연사로 나섰는데, 그는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영화의 출발점이었다.


"저도 현영옥 씨 같은 생각을 한 적 있어요. 저만 들리는 세상에 있었기 때문에 어려운 것들을 제가 해결해야 했거든요. '소리가 없는 세상에서 살면 어떨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마냥 어렸던 것 같아요(웃음)."


영화 속 보리네 가족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감독은 누가 봐도 행복해 보이는 가족을 만들려고 했다. 보리의 아버지는 제스처 형태의 수화로만 의사소통을 하면 살아온 인물, 엄마는 도시에 살았었고, 구화(입 모양을 읽는 것)를 할 수 있는 인물로 설정했다. 보리는 평범하게, 동생 정우(이린하 분)는 일반학교에 다니는 농인으로 그러냈다.


김 감독은 "'농인은 이럴 거야'라는 편견을 깨고, 캐릭터 그 자체를 담고 싶었다"며 "영화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영화사진진 '나는보리' 김진유 감독.ⓒ영화사진진

영화에서 보리의 아빠는 항상 딸과 눈높이를 맞춘 채 대화한다. 강릉시 미디어 강사 센터에서 교육 강사를 했었던 김 감독의 경험이 반영된 장면이다.김 감독은 아이들과 눈높이 교육을 통해 함께하면 좋은 행동이나 에티켓을 배웠고, 이를 영화에 넣었다.


'나는보리'를 이끈 주역은 아역 배우들이다. 김아송(보리 역), 이린하(정우 역), 은정(황유림 역)은 진짜 친구, 가족처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200대 1을 뚫고 캐스팅된 김아송은 보는 내내 반짝반짝 빛난다. 캐스팅 단계에서 김 감독은 세 배우의 어울림을 중요시했다.


"세 친구 모두 천재라고 생각들 정도로 타고난 배우예요. 따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연기를 준비를 철저히 했고 현장에서 좋은 연기를 펼쳐줬어요.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인데 참 놀랐죠."


영화는 김 감독이 나고 자란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다. 강원영상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받아 강원도에서 찍었다. 발품을 팔며 장소를 찾아다녔고 지난해 봄, 아름다운 강원도와 사랑스러운 보리네 가족을 담은 영화는 국내외 영화제의 러브콜을 받았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 수상, 제24회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켐니츠상 2관왕, 제20회 가치봄영화제 대상, 제21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동전상 등에서 수상했다.


"영화 작업을 다 마치고 다음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촬영 외적으로 해야할 부분들이 많아서 지쳤거든요. 부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고 힘을 얻었어요. '또 한 번 해봐라'라는 응원의 목소리를 들었거든요."


영화는 농인들을 위해 한글 자막 버전으로 상영된다. 김 감독의 아이디어다. 종인들은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도 먼저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를 확인해야 했다. 가족들끼리 영화관 구경에 가기 힘든 이유다.


"농인들은 흥행 중인 영화를 나중에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나는보리'가 농인들의 갈증을 해소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부모님이랑 함께 극장에 간 적 없어요. 농인 가족들이 '나는보리'를 통해 극장에 함께 가는 경험을 했으면 해요. 가족들의 첫 영화가 '나는보리'이지 않을까요?"


"들리든 안 들리든 우린 똑같아"라는 대사는 영화의 메시지다. "옆집에 살고 있는 이웃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다려주세요. 그러면 서로 함께할 수 있을 겁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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