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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소환 '87 대선 컴퓨터 부정'의 추억


입력 2020.05.31 08:30 수정 2020.05.31 04:35        데스크 (desk@dailian.co.kr)

당시 패배 불복 평민당의 일목요연 의혹 제기 광고 충격적

컴퓨터 무지 등이 낳은 구시대 선동 정치가 2020년에 부활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15총선 개표조작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민경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11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15총선 개표조작 의혹 진상규명과 국민주권회복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그날 아침에 난 대문짝만한 광고를 생생히 기억한다.


1987년 12월 17일, 13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조간 신문들에 시커먼 고딕체 활자로 조목조목 의혹(광고는 정말이지 의혹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확신이 들게 했다.)을 나열한 김대중(DJ)의 평화민주당 주장 얘기다. 30년이 더 지난 일이고, DJ도 대통령을 지냈으니 이제야 맘놓고 말하지만, 이것은 컴퓨터라는 기계에 무지하고 무엇인가에 홀리지 않고서는 감히 외칠 수 없는 마타도어였다.


개표 결과는 대략 노태우 37 - 김영삼 28 - 김대중 27 - 김종필 8 순이었다. 양김이 단일화했으면 거의 6-4로 압승할 수 있었던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를 1노3김 구도로 분열 경쟁해 대권을 헌납한 셈이 되어 버렸다.


비판의 화살은 DJ 쪽으로 빗발치게 돼 있었다. 71년에 그는 신민당 경선에서 김영삼(YS)를 꺾고 박정희와 본선에서 붙어 봤으니 이번에는 YS에게 그 기회를 양보해야 한다는 영남지역 등의 여론 때문이었다.


평민당은 그런 비판도 두려웠겠지만, 개표 결과가 너무나 믿을 수 없어 선제적으로 의혹 제기를 했다고 본다. 그들은 절대로 이긴다고 자신했었다. 분열이 해가 되는 게 아니라 득이 될 것이라고 자기들만의 셈법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의혹의 핵심은 부산 지역 개표 추이였다. 밤 11시 반에 DJ 표가 19만여표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더니 0시쯤에 결국 6만표도 못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13만여표가 증발한 이 해프닝을 선관위나 방송국에서 어떻게 해명했는지는 기억에 없으나 컴퓨터 개표에 의해 방송을 한 것이 그 선거가 처음이어서 일어날 수 있었던 착오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부산은 집권당과 YS 에 유리한 지역이었으므로 부정을 하려 했다고 한들 하필 여기에서 DJ 표를 깎을 이유가 없었다. 이 지역 최종 개표 결과는 노 56만 - YS 96만 - DJ 6만 정도였다.


해외에서는 당시 광고 카피를 구할 길이 없어 정확한 문장은 알 수 없지만, 광고는 시청자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한 규모로 DJ 득표가 점차 감소하도록 고도의 프로그램을 짜 실행했는데, 부산에서는 DJ 표가 적어 들통난 것이라는 주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평민당이 이 의문의 득표 수 점진 감소와 함께 결정적 부정 증거로 본 사례는 한 친정부 신문의 호외였다. 17일 아침 7시에 서울 잠실 지역에 배포된 '노태우 대통령 당선'이라는 제하의 이 호외에 오전 7시 현재 후보별 득표 상황이 게제돼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인쇄했을 호외에 어떻게 7시 현재 방송 화면에 나오고 있는 득표 상황과 정확히 일치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일반인들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자 의심이었다.


그러나 이는 신문 메커니즘을 잘 모른 데서 비롯된 의혹 제기였다. 0시도 못돼 개표의 거의 90%가 완료됐고, 당락은 이미 결정돼 있었다. 자정 이후는 2-3위 대결만 진행되고 있던 시간이었다. 신문은 90% 개표 시점에서 최종 결과를 예측, 인쇄를 결정한 것이었다.


평민당의 광고에도 불구하고 호남 출신들과 DJ 지지자들은 물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그날 아침 신문에 일제히 실린 '1노3김' 분열 때문이라는 패인 분석에 수긍하고 광고에 잠시 충격을 받긴 했으나 곧 잊었다.


<이희호 회고록>에 보면 아직도 이들은 그 광고대로 여전히 의문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람은 한 번 의심하면 쉽게 풀지 못하는 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30여년이 흐른 2020년 선거에서 방송 앵커에 대변인까지 지낸 민경욱이 컴퓨터 개표 부정 의혹에 매달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마음은 매우 곤혹스럽다.


그는 2020년 시대 의혹 주장에 어울리게 중국 해커를 등장시키긴 했다. 암호문을 2진법으로 풀어보니 "FOLLOW THE PARTY(당을 따르라)" 라는 문구가 나왔다나 뭐라나... 당을 망신시키는 괴담 설파자는 'LEAVE THE PARTY(당을 떠나라)' 라고 그를 상대로, 역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3선의 동료 의원 하태경은 이 영문 해독이 조작됐다는 증거를 입수했다고 한다.


괴담(선거 불복)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때도 나왔었다. 투표함 개봉보다 빠른 개표 방송, 무효표 아닌 미분류 표가 3% 이상(통상 1% 미만) 된 사실들을 들며 해킹 가능성도 역시 제기됐다. 이밖에 통진당, 민주당 모바일 경선 등 부정선거 주장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컴퓨터 개표 부정을 말하는 사람들은 이렇듯 좌우 구분이 없다. 지면 주장하고 보는 것이다.


선관위 투개표 작업에 10년간 참여했다는 전 컴퓨터공학과 교수 김인성은 "유권자에 의한 부정은 가능하지만, 선관위에 의한 부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선관위에는 각 정당 지지자들이 참관하고 있으므로 이들 모두를 속이거나 이들이 모두 동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한다.


선관위의 개표 부정을 의심하는 사람은, 그러나, 민경욱만이 아니라는 점이2020년대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마음을 더욱 착잡하게 한다. 보수 우파 일각과 일부 여론 주도자들에게 상식 회복을 권하고 싶다.


ⓒ

글/정기수 캐나다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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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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