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정보광' 국정원장 박지원, 고양이한테 생선 맡기나


입력 2020.07.08 09:00 수정 2020.07.08 15:44        데스크 (desk@dailian.co.kr)

비판과 충성 오락가락 기회주의자 ‘탕평’

정권 후반 정치공작 PD 역할 주도 우려

박지원 전 국회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박지원 전 국회의원.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겠다.”


국정원(국가정보원, 안기부 후신) 원장 내정자 박지원의 청와대 지명 발표 후 일성(一聲)이다. 국정원장의 제1임무가 대통령에게 중요 정보를 보고하고 조언하는 일이므로 이 말 자체는 옳다. 그래야 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박지원이 ‘충성’을 말할 때는 긴장하고 들어야 한다.


그의 충성심은 전설적이고 전투적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동아일보 기자 출신 민주당 의원 양기대가, 긍정적인 취지로 했겠지만, 그 무서운 충성심을 겪은 일화를 SNS에 소개했다. 김대중 정부 초기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던 그가 보수 언론으로 DJ 측과 불편한 관계였던 이 신문사 정치부원들과의 술자리를 마친 뒤 ‘DJ를 잘 봐 달라’며 정치부장에게 무릎을 꿇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대변인으로 당 총재 김대중을 모시던 그가 새벽까지 기자들과 술을 마시고도 졸리는 몸을 이끌고 몇 시간 뒤 동교동 자택으로 가 ‘선생님’을 알현, 전날의 일들을 보고하고 조언함으로써 신임을 얻어 동교동 가신들을 제치고 최측근 위치를 점한 그의 성공 스토리를 모르는 정치인이나 기자들은 없다.


박지원은 70년 단국대 상대를 나와 럭키금성(현 LG) 상사 등에서 회사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피혁, 가방 수출 사업으로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미(渡美)한 지 불과 몇 년 후인 80년대 초 뉴욕 한인회장이 됐다. 필자가 해외 대도시에서 20년 산 경험으로 볼 때, 몇 년만에 뉴욕과 그 교민사회를 알 리 만무한데, 그 자리를 탐한 정치 지향성이 놀랍다. 그 시절 해외 한인회는 회장 자리를 놓고 편이 갈려 서로 날마다 싸우는 게 일이었다. 일반 교민들하고는 유리된, 정치지망생 또는 이권 추구자들의 그들만의 리그였다.


전남 진도 출신인 박지원은 이 한인회장을 할 때 5공 당시 미국으로 반(半) 망명 온 김대중을 극진히 모신 이후 부름을 받아 92년 민주당 소속으로 전국구 의원이 됐다. 그러고 보니 김대중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이 요즘 한국 정치를 움직이고 있다. 이낙연, 이해찬, 추미애 등이 다 언론계, 운동권, 법조계에서 뽑혀진 ‘DJ 키드’들이다.


이상한 것은, 그가 마치 얼마 전까지 대통령 문재인을 혹독하게 비판했던 사람인 것처럼 언론에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방송에 매일 아침 나와 그를 까내려 ‘문모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 것인데, 필자는 이 시기에 한국 정치 뉴스를 잘 보지 않았고, 봤더라도 박지원이 문재인을 향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기억에 없는 것 같다.


다만, 그가 조국 사태를 전후에 문 정부쪽에 듣기 좋은 말을 할 때부터는 눈여겨봤다. 무슨 계산이 있어서 저러나 하고 말이다. 그는 민생당인지 대안신당인지, 4.15 총선 후 소멸한 당 소속, 이른바 범여권 의원으로 조국 측을 응원했다.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는 선택이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검찰총장 윤석열에게 조국 부인 정경심을 옹호하며 다그쳤다가 한방을 맞는 일도 있었다. 그가 “정경심 교수는 소환도 안하고, 조사도 안하고 기소를 했다”라고 하자 윤석열이 “국정감사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느 특정인을 여론상으로 보호하시는 듯한 말씀을 자꾸 하시는데......”라며 맞받은 것이다.


그가 대통령 문재인에게 집권 초기에 안 좋은 말을 한 것은 그 2년 전인 2015년 2월 새정치민주연합(민주당 전신) 당대표 선거에서 맞붙었던 앙금에서 비롯된 연장선으로 보인다. 그 때만 해도 ‘정보통’이라는 박지원의 컴퓨터 머리는 ‘문재인=미래 대통령’ 등식을 연산 처리하지 못해낸 듯하다. 대통령 노무현의 영원한 비서실장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그랬던 그가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 몇 달 후부터 지지율이 80%에 육박하고 남북정상회담도 성사시키자 “역시 문대통령은 나보다 낫다”며 방향을 180도 바꿨다. ‘문모닝’은 잠시 뭘 모르고 그를 여전히 정적으로 상대했을 때의 별명이었을 뿐이다.


이렇게 표변(豹變)한 그에게 ‘기회주의자’라고 말해도 그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는 국무총리 이낙연에게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구애(求愛)하는, “겸손하면서도 할 말을 다해 의원들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식으로 칭찬인지 아첨인지 모를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자기 의견이나 해법은 없이 중요 사안마다 ‘엄중히 보고 있다’는 태도로 일관하는 이낙연에게는, 대선 주자 선호도 1위 주자에게 보험을 드는 의도로밖에 해석이 안 되는, 좀 과한 점수가 아닌가?


박지원은 정보를 좋아하고 그래서 정보가 많은 사람이며 그 정보를 공개하고 활용해 정치를 해 온 사람이다. 정보광(狂)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정보 등을 활용해 민주당에 줄곧 우호적 입장을 취했으나 ‘보답’을 얻지 못하고 결국 내키지 않은 민생당 후보로 4.15 총선에 출전, 목포에서 떨어진 그는 모교 단국대로부터 석좌교수라는 영광스러운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 교수라는 직함은 전혀 영광스러운 것이 되지 못했다. 3개월도 못돼 헌신짝처럼 그것을 내던지고 나랏님(나라님의 비표준어)이 내려주신, 그가 25년 전에 이미 지냈던 장관급 벼슬을 받는 모습에서 그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김대중-김정일 회담 추진 밀사 역할을 하며 북한에 4억5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뒷돈을 건넨 ‘불법 대북송금’ 사건의 주역이다. 이는 5000억원이 넘는 천문학적 액수의 국제 뇌물이다. 북한은 이 돈으로 당시 극심했던 기아(飢餓) 해결과 핵 개발에 매진할 수 있었다. 박지원은 이 사건과 관련해 1년 5개월의 징역을 살았다. 문재인 정부는 정권 후반에 경색된 남북관계 돌파구를 위해 박지원에게 또 이런 밀사 역할을 맡기려고 하는가?


박지원은 정보광이면서 그 정보를 알리길 즐기는 사람이었다. 방송은 그런 그를 이용해 라디오, TV 등에 단골 출연시켜 ‘정치 9단’으로,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를, 승단(昇段)을 공인했다. 그는 지난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에서 조국 딸이 허위로 받은 동양대 표창장 컬러 원본 사진이 자기한테도 들어와 있다며 “이게 문제다”라고 휴대폰을 흔들어댔다. 그는 검찰이 자신에게 흘린 것처럼 암시했으나 검찰이 압수수색한 표창장은 사본이었다. 컬러 원본은 조국 아내이자 동양대 교수 정경심 측이 위조한 것이었으므로 그 쪽에서 박지원에게 보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는 이처럼 신뢰도와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요구되는 진실성(Integrity)과는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비판과 아첨, 그리고 충성이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자의 당적이 다르다고, 구원(舊怨)이 있는 인물을 등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탕평(蕩平) 인사는 아니다. 오히려 그 ‘용도’가 더 의심스럽고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정보기관은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는, JP(김종필)가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 남긴 표어대로 오직 국가 안보를 위해서만 일해야 하는데, 그의 특기를 보고 발탁했다면 잘못 골랐다. 대북 밀사는 국정원장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더욱이 정권의 국내 정치 공작을 기획하고 감독하는 PD 역할을 문재인 정부가 기대하거나 박지원 자신이 자임한다면, 문재인과 박지원, 그리고 국민을 위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국가정보라는 건 자산이자 흉기이다. 정치인, 더구나 노회(老獪)한 정치인이 맡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다. 국정원 전신인 중정(중앙정보부)의 모델이었던 미국 중앙정보국(Central Intelligence, CIA)의 국장(Director)은 주로 현역 장군이나 군 출신 민간인이 맡는다. 최초의 여성 CIA 수장인 지나 해스펄(Gina Haspel) 현 국장은 직업 정보관으로 공군 가정 출신이며 전임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 국무장관은 육군 대위 출신이다.


78세 박지원은 편안한 여생과 자랑스러운 일대(一代)를 위해 국정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깊이 공부해야 한다. 충성만 말고 말이다.


ⓒ

글/정기수 자유기고가 (ksjung7245@naver.com)

'정기수 칼럼'을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