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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후레자식’인가?


입력 2020.07.14 09:00 수정 2020.07.14 15:03        데스크 (desk@dailian.co.kr)

“저널리즘은 여전히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업”

이해찬 대표의 진심어린 사과와 결자해지가 필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기자(記者)는 험한 직업이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19년 1년 동안 49명의 언론인이 취재와 관련해 피살(被殺)됐으며 389명의 언론인이 감옥에 있고, 57명은 인질로 붙잡혀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에는 155명이 피살됐지만, 과거 20년간 연평균 피살자는 80명 선이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저널리즘은 여전히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 직업”이라고 결론낸다.


지난 10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서울대 병원에서 질문을 한 기자에게 ‘후레자식’(미디어 오늘 보도)이라고 욕을 했다. 그것도 큰 소리로. 한동안 노려보기도 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사회 정의를 위해 취재(질문)를 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기자도 공인(公人)이다. 공인(公人)인 집권당의 대표가 공인인 기자에게 “예의(禮儀)가 없다”면서 보통 사람도 쓰지 않는 험한 욕을 했다. 피살, 수감, 인질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이렇게 모욕(侮辱)을 당하는 기자는 전 세계에서 부지기수(不知其數)다.


1998년 6월 9일,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공동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미 양측에서 각 2명의 기자가 질문하기로 돼 있었다. 정상회담 의제는 한국의 IMF 사태, 대북 화해정책 등이었다.


그러나 미국 기자 2명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Lewinsky)와의 섹스 스캔들에 관해 질문했다. “르윈스키의 드레스에 묻은 액체는 대통령 것입니까?” 옆에 앉은 74세의 김대중 대통령은 아주 민망해했다. 이 질문은 예의에 맞는가?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동남아국가연합+3’ 회의에 참석했을 때 대선 자금과 관련된 최도술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당시 수행기자들은 “최도술 사건을 사전에 보고 받았는지?”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노 대통령은 “나도 그 내용을 다 알지 못한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후일 노무현 대통령은 그 질문이 나왔을 때 “하늘이 깜깜해 지는 느낌”이었다고 술회했다. 해외 순방 중에는 가급적 국내문제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급한 것은 물어봐야 한다. 이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인가? 이해찬 대표는 답해야 한다.


1981~1989년 까지 미국의 40대 대통령으로 재임한 레이건(R. Reagan)은 “위대한 소통자 (Great Communicator)”라고 불린다. 국민과 소통을 잘 했고 소통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대통령이라는 뜻이다. 그런 레이건도 기자들에게 욕을 한 적이 있다.


1986년 3월 25일, 76세의 레이건 대통령이 정례기자회견에서 국방 예산 지출이 너무 많다고 기자들에게 한참을 시달린 뒤 회견을 마치면서 배석한 보좌진을 향해 “휴-, 개자식들! (Sons of Bitches)”이라고 했다.


얼핏 들은 기자들이 대변인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우리한테 욕한 거 아닌가?” 레리 스피크스(Larry Speakes) 대변인은 “안했어. 글쎄, 인사 겸해서 ‘It’s sunny, and you’re rich‘ 라고 했나...”라고 했다. 그냥 넘어갈 기자들이 아니다. 회견을 녹화한 테이프를 되돌려 보니, ‘개자식들(SOB)’이라고 욕을 한 게 맞았다.


얼마 뒤 기자들이 SOB가 큼직하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기자들은 레이건에게 항의하는 뜻으로 지하에 위치한 기자실을 빗대 자신들을 ‘지하실의 자식들(Sons of the Basement)’ 이라고 한 것이다.


며칠 뒤 레이건도 SOB이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거기에는 “예산을 절감합시다(Save Our Budget)”라고 쓰여 있었다. 국방예산을 낭비한다고 기자회견에서 혼이 난 레이건이어서, 기자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폴 볼러 주니어, <역대 미국 대통령의 일화들>, 1996).


그런데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그게 아니었다. 민주당 소속의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 등이 성범죄와 관련해 자리를 그만 두거나 자살했는데, “당 차원에서 어떻게 할 계획인가?”하는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런 질문이다. 기자가 묻지 않더라도 민주당이 먼저 사과하고 대책을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에게 표를 준 유권자에 대한 예의 아닌가? 국민들이 그런 짓 하라고 표를 주고 월급을 줬나? 그 피해자들이 가졌을 두려움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뻑뻑해진다. 그런데 이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의 이 질문에 대해, 답변은 않고, “후레자식”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후레자식’이 어떻게 생겨난 욕인지 알고나 있는가?


마침 한국기자협회는 13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진심어린 사과를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협회는 성명에서 “이해찬 대표는 집권당을 대표하는 공인(公人)이다. 기자의 질문에 사적 감정을 개입시켜 과격한 언행으로 대응하는 것은 분명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기자협회는 “당 대표의 욕설과 관련해 수석 대변인이 사과를 한 것은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표의 진심어린 사과와 결자해지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묻는다. 과연 누가 ‘후레자식’인가? 해야 할 질문을 용기 있게 한 그 젊은 기자인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집권당의 대표인가, 아니면 청(淸) 나라에 잡혀갔던 수많은 환향녀(還鄕女)가 홍제천과 연신내에서 아랫도리를 씻고, ‘호로(胡虜, 胡奴) 자식’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 숙정문(肅靖門) 앞에서 목을 맨 성추행자 박원순인가?


ⓒ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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