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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으로 당신의 눈이 되어드릴게요"


입력 2008.06.23 08:54 수정         김희정 기자 (adhj22486@hanmail.net)

<인터뷰>대구효목도서관 시각장애인실 봉사자 박은숙, 김명숙씨

때 이른 장맛비로 촉촉하게 젖은 18일의 아침.
한 시립도서관 안의 자그마한 공간 속에 분주한 두 사람이 보인다.

‘탁타다다닥...’ 한 사람이 컴퓨터 앞에서 쉴 새 없이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다.
또 한 사람은 녹음실 부스 안에 들어가 있다.

이들은 대구 수성구 효목도서관 시각장애인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다.

효목도서관 시각장애인실 자원봉사자(좌로부터)박은숙, 김명숙씨

효목도서관은 시각장애인복지관이나 점자도서관을 제외하고 공공도서관으로서는 드물게 시각장애인을 위한 녹음도서, 워드입력, 방문대출은 물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화유적답사와 ‘두 눈감고 영화보기’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실은 1991년 1월부터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실 신정인씨는 “녹음도서나 워드입력 봉사활동의 경우 점자책보다는 테이프와 CD 등 녹음도서들을 선호하는 것이 요즘 시각장애인들의 독서특징 중 하나이고 후천적인 시각장애인들의 도서관 이용률이 높아 점자를 배우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활성화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들의 ‘눈’ 이 되어주고 있는 박은숙(45), 김명숙(43)씨를 만났다.

박씨는 3년째 이곳에서 녹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도서관에서 구하기 어려운 책이나 읽고 싶은 책의 녹음을 요청해오면 박씨의 녹음은 시작된다.

“녹음실에 한 번 들어가면 거의 2시간은 꼼짝없이 녹음작업을 해요. 그렇다보니 요즘 같은 여름, 특히나 장마철엔 습하고 더운 게 제일 힘들죠. 잡음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에어컨이나 선풍기도 틀 수 없고 녹음실엔 창문조차 없으니까요.”

박씨는 문화센터 등지에서 시낭송 대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시낭송 수업을 해오다 지금은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다.

또 박씨의 봉사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문화원에서 영화에 대한 해설과 자막을 읽어주고 연극이나 오페라 공연에 시각장애인들과 동행해 설명해주는 자원봉사활동을 해왔다.

녹음 봉사자 박은숙씨가 칼 구스타프 융의 ´원형과 무의식´ 을 녹음하고 있다

비교적 전문적인 영역에 속하는 녹음봉사. 그렇기 때문에 지원만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음질, 발음 등을 체크하는 테스트 기간을 거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수년간 목소리를 쓰는 일을 해온 박씨 만큼 마침맞은 봉사자도 없다.

“시각장애인분들은 또박또박하게 천천히 읽는 것 보다 조금 속도감 있게 읽어주는 걸 좋아하세요.”

“그래프나 도표, 화학식 등이 나올 땐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일일이 풀어서 설명하는 식으로 녹음하면 됩니다” 김씨가 녹음봉사에 대해 소개했다.

또 다른 봉사자인 김씨는 워드입력을 담당하고 있다.

김씨는 “입력된 책의 내용이 음성으로 재생되는 기능을 갖춘 특수컴퓨터를 이용,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대신 음성으로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 이라고 설명했다.

녹음봉사가 한사람이 한권의 책을 모두 맡아야하는 반면 워드의 경우 여러 명의 봉사자가 일정분량씩 돌아가면서 입력한다.

시간은 녹음봉사와 워드입력봉사 모두 일주일에 한 번, 2시간 정도다.

지난해 여름부터 이 일을 시작한 김씨는 1년차 초보봉사자지만 그 열성만큼은 베테랑이다.

“예전부터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만하고 있다가 효목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시각장애인봉사자를 모집 한다는 안내를 보고 바로 지원하게 됐죠.”

워드입력 봉사자 김명숙씨가 동의 부항 처방집의 내용을 입력하고 있다

김씨는 한자능력시험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고 중학생들에게 한자과외를 하고 있을 정도로 한자실력이 뛰어나다. 이로 인해 다른 봉사자들에 비해 한자가 많은 책을 입력할 때도 수월하다고 한다.

“간단해 보일 수 있는 작업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절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나 수필은 거의 없고 요청이 들어오는 책들은 대부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종교서적이나 의학서적들 이거든요.”

“한 페이지마다 한자나 영어로 된 의학전문용어들이 절반이상이다 보니 사전을 뒤지다 봉사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리기도 하죠.”

최근 요청이 들어온 책들을 살짝 펼쳐 보니 한자가 빼곡한 불교법전, 침술과 부항에 관한 서적들이었다.

“저 같은 경우도 한자의 경우 음과 뜻, 영어의 경우 철자까지 녹음해야할 때도 있고요. 예를 들어 ‘망상(妄想)’ 이면 ‘망령될 망, 생각 상’ 이렇게 읽고 ´special´ 이면 s, p, e...´ 하나하나 읽어야 해요.”

“그렇다보니 몸(?)을 이용해 청소나 빨래, 식사 등을 돕는 다른 봉사활동과는 달리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답니다” 옆에 있던 박씨가 한마디 거든다.

녹록치 않은 봉사활동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두 사람의 얼굴은 무척 맑다.
미소도 떠나질 않는다. 이들은 행복한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효목도서관 시각장애인실의 신정인씨와 자원봉사자 박은숙, 김명숙씨가 봉사활동에 관한 견해를 나누고 있다

“시각장애인분들보다 봉사활동을 통해 저희가 얻는 것이 더 많아요. 봉사활동을 마치고 도서관을 나설 땐 말로 다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죠. 우리가 가진 작은 재능이 뜻 깊은 일에 사용될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이 마음의 양식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이들은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웃을 생각하는 나눔의 마음, 그 자체를 살찌우고 돌아간다.

목소리가 나오고 손가락이 움직일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두 사람. 시각장애인 대상 봉사활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당부도 잊지 않았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면서도 “남는 시간이 많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쪼개서 하는 일이니 만큼 좀 더 책임감을 가졌으면 한다” 고 말했다.

“봉사활동이 마음의 부담이 되면 안되겠지만 일회성 봉사활동이 될 수 없는 시각장애인 대상 봉사활동의 경우에는 일단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꾸준히 임해줬으면 한다” 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눈과 안경 전문포털 아이앤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www.eyeng.com

김희정 기자 (adhj2248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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