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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에 조선이 망해? 당쟁 아닌 정쟁


입력 2009.03.21 09:32 수정         데스크 (desk@dailian.co.kr)

<신봉승 칼럼>"식민지살이 일본 밑에서 한게 다행" 망언 지속

고도의 이론대결 학식 낮으면 참가 못해…식민사관 추종 한심

10여 년 동안이나 여러 법원의 부장 판사를 지내신 분이 ‘기왕에 식민지 살이를 할 것이면 일본제국에 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말을 아주 태연히 입에 담는 것을 보았다.

그분의 말씀으로는 철도를 놓아주고, 학교를 세워주고, 공장을 지어준 것이 고맙다는 뜻이겠지만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분 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었던 어느 장관은 그나마 일제의 식민지 살이를 했기에 오늘 이정도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단언한다.

일본제국이 대한제국을 강제로 병합하면서 저지른 만행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왕실의 주궁인 경복궁(景福宮) 근정전(勤政殿)의 앞마당에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의 청사를 석조(石造)로 지은 것은 그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천박한 사람들인가를 여실하게 보여준 결과다.

이런 식이면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스 독일군은 베르사유 궁에 점령군 사령부를 지어야 하고, 전후에 일본에 진주한 미군은 그들의 천황이 머무는 궁성에 GHQ(점령군 사령부)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나치스도 미군도 그런 무도한 짓을 하질 않았다.

1924년 5월, 일제는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의 관제(官制)에 따라 법문학부(法文學部)ㆍ의학부(醫學部)를 설치하고, 5월 10일 예과(豫科)를 개강함으로써 이른바 <경성제국대학>이 개교하게 된다.

조선은 찬란한 역사를 간직하였고 역사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으로 가득한 민족이었지만, 불행하게도 근대학문(近代學問)으로서의 역사연구는 그 시도조차도 하지 못했던 시절이다. 박은식(朴殷植), 신채호(申采浩) 등 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있었으나, 조선의 역사를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조선사(朝鮮史)>라는 과목이 설치되었어도 그 강의를 담당할 조선인 학자가 전무한 상태다.

조선총독부의 역사편수관이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경성제국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부임함으로써 일본인 교수가 근대학문으로서의 <조선사>를 강의하게 된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마니시 류와 같은 일본인 학자들이 <조선사>를 근대적인 학문으로 정립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읽어야 할 책들이 있다.

바로 그것이 <조선왕조실록>, <대동야승(大東野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과 같은 조선의 역사를 적은 책 들이다.

이 같은 책들은 일본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조선에 있었는 데도 조선의 지식인들은 탐구하지 않았고, 조선을 침탈한 일본인 학자들이 그것을 읽고 <조선사>를 근대학문으로 정립하였다는 사실에 엄청난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조선사>를 학문으로 익혀야 하는 조선인 청년들의 참담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안다.

조선인 수재들에게 <조선사>를 강론하는 이마니시 교수가 조선의 정체성(正體性), 조선인의 역사인식 등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강론할 까닭이 없다.

그는 일본인이었기에 조선국과 일본국이 합병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강론할 수밖에 없다.

조선왕조는 이씨 성을 가진 일부 부족(部族)이 다스린 나라이기에 <이씨조선(李氏朝鮮)>이 되어야 했고, <조선>이라는 말 대신 <이조(李朝)>라는 말을 쓰게 되고 보니 <조선왕조실록>은 <이조실록(李朝實錄)>으로 비하되고, <조선백자>는 <이조백자(李朝白磁)>로 비하될 수밖에 없다.

뿐만이 아니다. 조선 사람은 셋만 모이면 싸우기 때문에 <사색당쟁(四色黨爭)>이 되었고, 이같이 국론의 통일을 이룰 수 없었기에 일본국에 의존하여 새로운 문물을 익혀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심어지게 된 것이 소위 <식민지사관(植民地史觀)>이다.

경성제국대학에 입학한 조선인 수재들은 그것을 그대로 공부하여 답습하면서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바로 그들이 조선총독부의 편수관이나 전문학교의 역사학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스승 이마니시 류가 입에 담았던 식민사관이 이번에는 조선인 교수의 입을 통하여 더 넓고 깊게 퍼져나가는 악순환이 20여 년이나 반복 되었다.

-당파 싸움 때문에 조선왕조는 망했다.

이만 저만한 망언이 아니다. 각 파당의 이익만을 위해 싸우는 당파 싸움은 조선왕조시대보다 지금이 더 치열하고 치사하다.

우리 한국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그렇고, 바다건너 일본의 자민당과 민주당이 또한 그렇다.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의 당파싸움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선일보 워싱턴 지국장이 쓴 칼럼 한 절을 인용해 본다.

-요즘 미국의 아침 뉴스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견으로 시작하고, 밤 뉴스는 양쪽 사람들이 벌게진 얼굴로 설전을 벌이는 것으로 끝난다.

경기 부양법안, 재정적자, 세금, 예산, 건강보험, 이라크 · 아프가니스탄 전략 등 모든 국정현안에 사사건건 다 이렇다. 그 양상은 정책차원이 아니라 당파 싸움이라야 옳다.

-지금은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도 안 된 시점이다. 그런데도 며칠 전 한 공화당 집회에서 유명한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가 “오바마가 실패하기 바란다”는 저주를 퍼부었다. 놀라운 것은 군중들의 환호였다.

이미 공화당 하원의원 한 사람은 “우리는 반군처럼 싸워야 한다.”고 했고, 공화당 전당대회 의장선거에 출마한 어떤 사람은 오바마를 “니그로”라고 부른 노래를 배포하기도 했다.


한국의 사정, 일본의 사정 그리고 미국의 사정이 똑 같은 데도 당파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한 예는 없다.

왜 조선왕조만이 당파싸움 때문에 나라가 망하겠는가. 조선왕조의 당파싸움은 고도한 이론이 대결한다. 학식이 모자라는 사람은 끼어들지도 못했다. 그래서 당쟁이 아니라 <정쟁(政爭)>이다.

글/신봉승 극작가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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