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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만추(晩秋), 선암사 절마당에서


입력 2006.12.04 09:13 수정        

가벼운 오르막길 무우전(無憂殿) 가는 길은 벗어 던진 근심들이

응달져 있고 해소된 가벼움이 햇살비친 단풍으로 물들어있다

지난 이른 봄, 아직 꽃이 다 피기도 전에 순천만 와온(臥溫) 바닷가를 돌아 조계산 선암사(曺溪山 仙巖寺) 찾아들었었지. 아직 푸른 잎 돋지 않은 그늘진 승선교(昇仙橋) 아래에서 강선루(降仙樓) 바라보며 겨울 흔적 고드름처럼 뚝뚝 묻어나던 그 날, 하늘은 그래도 맑았다. 언제나 그 곳은 신선이 하늘로 오르고 선녀가 땅을 밟으러 내려오는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선암사 사하촌의 단풍

사하촌에서 활엽수에 매달린 겨우살이 보면서 바닷바람이 싸늘하여도 꽃소식은 산으로부터 바다로 내려오리라 기대하여 바쁜 걸음 치다가 화려한 일주문에서 미리 봄을 보았었지. 불조전 앞 청매화 튼실한 가지가 궁금하여 대웅전 앞 삼층석탑에 서둘러 합장하다가 응향각(凝香閣) 오래된 벽 앞에서 발길 잡히고 말았지. 봄보다 더 아까운 빛깔의 흙벽을 보면서 내 안에 아직 남아있었으나 알지 못했던 원형,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작은 눈을 뜨고 말았지.

봄은 매화나무나 산수유 노란 꽃에서보다 절 집 마당과 오래된 전각들에 든 볕에 먼저 닿아 있었던 거야. 원통전(圓通殿) 앞 600년 된 매화나무 움이 아직 깨어나지 않았어도 노스님 벗어 놓은 두툼한 겨울 털 신발에도 봄볕이 들고 조사전(祖師殿) 옆 작은 연못가에는 아직 그늘이 졌어도 양지바른 곳의 청매화 튼실한 가지가 아롱아롱 흰 꽃들을 피워내고 키 큰 산수유 노랗게 물들어 마음 포근하게 해주었지.

그대,
남도의 눈구름 안고
와온 바닷가 어디쯤에서 바람맞고 섰는가?
서걱이는 갈대소리에
대대포구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소절 기억하는가?
따뜻한 물 한 잔 머금고
솔섬으로 솟구치는 파도를 보는가?

그대
용산 머리에 서서
지는 해 길 잡아주는 물길을 보았는가?
돌아 엎드린 채 늪 사이로 흘러서 들고 나는
끈적이는 눈물 밟았는가?
파도에 씻긴 개펄의 서러움 천도하는
샛바람 오르는 것 생생하게 보았는가?

승선교 가을 풍경

봄꽃에 간지럼 타던 기억으로 늦은 가을 비 내리는 날 지난겨울 끝자락에 들렸던 순천만을 기억한다. 시인 나희덕은 <와온에서> 라는 시에서 떨기꽃 꺾어 바치지 않아도 / 세 개의 해가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에/ 찬란한 해도 하루에 한 번은 / 짠물과 뻘흙에 몸을 담근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곳 와온 사람들은 저녁 일몰을 보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순한 기억을 뒤로하고 서둘러 선암사로 간다.

사하촌부터 예사롭지 않은 은행나무에서 얕은 바람에 은행잎 숱한 이야기처럼 날리고 계속 큰길로 걸어 올라가면 왼편에 계곡을 가로지르는 작은 무지개다리가 비로소 보이고 이 다리를 건너 돌면 큰 무지개다리가 나오는데 이른 봄에 본 풍경이나 가을 늦은 때의 풍경이 얼추 닮았다. 큰 무지개다리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승선교(昇仙橋)이다.

부도밭 앞에 선다. 이곳에는 1928년 무렵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화산대사 부도(높이 4.1m)로가 눈에 띄는데 사자 네 마리가 비석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전남 구례 화엄사의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8호, 8세기 중엽 작품)이나 충북 제천 빈신사터 사사자석탑(보물 제94호, 1022년 작품)을 닮았다.

화산대사 부도

또한 줄지어 선 8개의 비석 중 하나만이 방향을 뒤로 보고 있는 것이 있다. 상월대사의 비다. 생애의 대부분을 선암사에서 보낸 상월대사가 정적 입적한 곳은 선암사가 아닌 묘향산 보현사라 한다. 따라서 보현대사가 입적한 후 나온 3과의 사리를 가지고 세 곳에 부도탑을 세웠는데 그 중 한 곳이 선암사이고 부도의 방향을 보현사 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한다.

다시 발품 팔아 오르는 길, 괭이나무, 팽나무, 층층나무 잎들이 진다. 계절이 바뀌는 것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어 절집 찾는 이들, 길 걸으며 인연법에 얽혀 실타래 같은 지난 시간들을 자연스레 뒤돌아보게 한다.

일주문의 화려하고 세밀한 단청

삼인당(三仁塘) 못가에서 사진을 찍는 중년 아낙의 웃는 표정이 순하고 벼락 맞아 죽은 나무가 선암사 본당 입구라 칭하는 나는 그쯤에서 아름다운 일주문 자꾸 올려다본다. 인근의 송광사나 태안사가 모두 다포계의 화려하고 무거운 지붕을 이고 있으나 선암사의 것이 으뜸인 이유는 적당히 빛이 바랜 화려한 단층의 정교한 무늬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일주문으로는 처음 보물로 지정된 범어사의 것은 배흘림기둥의 네 개의 석축 위에 지어진 특이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선암사의 일주문은 절의 전형적인 일주문 형태를 가진 것 중 으뜸이란 생각이 든다. 더구나 이 가을에 햇살 받아 반짝이는 그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들은 언제나 봄이라는 느낌을 줌으로서 시린 바람에도 아늑함을 느낀다.

태고총림(太古叢林) 일주문 지나면 육조고사(六朝古寺)라 단정하고 엄격한 예서체 현판이 붙은 만세루를 지나고 담담히 대웅전 앞을 지키는 소박한 두기의 삼층 석탑 가운데 서서 좌, 우 설선당(設禪堂)과 심검당(尋劍堂)에 마음으로 예를 올린다. 조계산으로부터 바람은 응향각과 대웅전 사이를 지나 바다로 불어 갈 것인데 그 길은 언제나 나를 흥분케 한다.

응향각의 오래 된 벽의 색깔이 주는 안정감을 느끼고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조사전(祖師殿), 불조전(佛祖殿), 팔상전(捌相殿)이 나란히 보이는데 비로자나불 모신 대적광전(大寂光殿) 없어도 그 앞뜰부터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 느끼기 때문이다. 봄이면 청매화, 산수유 눈이 부시고 여름이면 상사화 작은 물빛에 어리는 곳, 오늘 같은 늦은 가을엔 오래된 은행잎이 땅바닥을 메워서 산사람 죽은 사람 구분이 없어지고 선과 악의 구별이 없어서 대 정적만 바람소리로 남는 풍경을 보여준다.

조사전 옆 풍경

이른 봄 이 마당에서 매화 봉오리 똑똑 따서 작은 주머니에 담던 나이어린 스님을 보았지. 더운 찻물위에 띄웠을 것인데 꽃봉오리 잔 위에서 꽃을 피우듯 그 스님도 한 모금 차를 마실 때마다 세상에서의 어수선했던 기억들을 지워냈을까? 봄이면 이 마당을 지나 원통전 앞 고목이 된 등걸에서 뿜어 나오는 청량한 향의 매화 몇 그루 있는 곳으로부터 산길로 접어들어 무우전(無憂殿) 가는 길이 으뜸이다. 말 그대로 모든 근심 들어주는 행복한 길일 것이다. 그 자리엔 이미 매화나무 잎 다 떨어져 없고 몇 송이 철지난 붉은 동백꽃 힘겹게 매달고 있는데 원통전 꽃 문에는 언제나 봄꽃이 피어있다.

먹빛 기와를 이불처럼 덮은 단풍

이 가을엔 원통전 들어가는 입구 조사전 옆 작은 연못부터 원통전 앞 매화가 숨을 죽이고 있는 곳에 이르는 길 까지가 제일 예쁘다. 따라서 나는 봄보다 가을이 먼저 눈에 띄는지 도 모르겠다. 어지러이 떨어진 은행잎이 발길에 차이고 제법 쓸쓸한 기운이 몸에 물을 들이는 이곳에 서면 잠시나마 나도 코 끝 찡해지는 선한 사람이 된다. 낮은 담장의 먹빛 고운 기와를 이불처럼 소복하게 덮고 있는 은행잎들에 노루꼬리처럼 몇 뼘 안 되는 햇살이 비추이면 떨어지는 뭇 것들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또한 조락의 계절에 어울려 떨어지는 앞들을 받아주는 먹빛 기왓장들과 이끼들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미처 몰랐다.

원통전 앞 풍경

한참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은 그 아름다운 것들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다. 내 살면서 이미 잊어버렸던 기억들이 되살아나서 나가 귀히 생각했던 은행잎 같은 인연들과 나보나 나를 더 소중히 생각했던 기왓장 같이 오래되었으나 제 색을 잃지 않고 사는 인연들에게 미안함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근심은 털어놓고 볼 일이라 했지. 땅위에 구르는 잎들은 마른 눈물이던가? 가벼운 오르막길 무우전(無憂殿) 가는 길은 벗어 던진 근심들이 더러 응달져 있고 해소된 가벼움이 군데군데 햇살비친 단풍으로 물들어있다. 지천에 사태가 난 단풍길 따라 북부도와 동부도 보러 길을 잡는데 앞서가던 스님이 볼 수가 없단다. 내 애타는 눈빛을 보고도 그냥 피하는 뒷모습이 야속하건만 이런 일도 어쩌면 2000년 전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라 여기기로 했지만 미욱한 범부라 자꾸 단풍 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동부도 북부도 가는 길

아쉬움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 나오면서 은행나무 잎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대웅전 두 절 마당에서 산 아래쪽을 조망하는 즈음 해가 설핏 지려한다. 오전 내 내렸던 비가 그친 절집의 늦은 오후는 무르익어 터져버릴 것 같은 만추(晩秋)의 향기와 빛이 가득하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걷는 일은 마음이 편한가보다. 오를 때는 무언가를 하나라도 더 충족하기 위하여 뒤돌아보지를 못했는데 아래를 보는 가을 풍경은 더 넓게 보인다. 아직 제대로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산다는 말일 것이다. 다시 뒤돌아 조계산을 바라본다. 저 산을 오르면 아름다운 산죽 길 나올 것이다. 언젠가 눈 싸인 그 길을 걸어볼 일이다. 칼처럼 날이 선 푸른 대 잎에 무릎을 부딪치며 안으로 닫힌 편협한 문을 단칼에 베어내야 할 것이다.

무량수각(無量壽閣), 추사체를 집자한 스님들의 거처 앞에서 손톱만큼의 아량도 힘든 나를 본다. 더구나 선암사에는 사천왕문, 어간문과 더불어 주련이 없다. 특히 주련이 없는 이유는 개구즉착(開口卽錯, 입을 열면 틀리다)이라고 해서 깨달으면 곧 말이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해서 주련을 달지 않았다는데 나는 입을 열 수가 없다. 아무리 입을 열어도 깨달음 얻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미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선암사 늦은 오후

무량수각 뒤쪽에서 그 유명한 선암사 뒤깐과 해천당(海川堂) 지나는 길까지도 은행나무 농익어서 온 절간이 노랗게 물들었다. 앞서 본 거대한 현판들과 달리 작고 소박하게 쓴 해천당 글씨가 참 예뻐서 언제나 이곳에 오면 한참을 들여다본다.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선암사의 지세 때문에 화재 예방을 위해 영조 37년(1761)에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던 데서 유래한 해천당 마당에도 가을볕은 어김이 없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전문)

선암사 뒤깐에서 본 가을풍경

내가 이 절집을 처음 찾았던 80년의 봄에는 이 선암사 뒤깐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었지만 적어도 같이 동행했던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유명해지기 시작했었지. 문이 없어 봄바람이 밖으로부터 흘러들어 뒤로 빠져나가고, 칸칸이 작은 유리병에 꽃 한 송이씩 꽂혀있던 기억에 슬며시 웃음 나던 곳. 정작 이곳에 앉아 서러운 눈물을 쏟아낼 수 있을까? 나는 눈물이 나면 피아골 연곡사 다랭이 논길에 서고 싶은데 어둠이 내리려는 시간 선암사 뒤깐 작은 나무창살사이로 가을 빛 물든 나무들이 작별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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