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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션 실격’ 추성훈…재일교포 4세의 비애


입력 2007.01.13 12:37 수정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FEG 측, 추성훈-사쿠라바 가즈시 결과..돌연 무효선언

추성훈(32)은 유도인 시절, 한국에서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재일교포 4세라는 배경과 텃새, 편견이 맞물리면서 마음 고생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유도계 막강 파워 모 대학 출신 선수들에 밀리면서 끝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지 못했다.

비운의 스타 추성훈은 파벌색이 강한 유도계에 회의감을 느꼈다. 하지만, 사랑하는 유도 자체만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새 유도인으로 환생하기 위해 일본을 택하기에 이른다.

추성훈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출전했다. 아키야마 요시히로(일본 이름)로 변신, 안동진과 81kg급 결승전에서 만났다.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혼신의 힘을 다한 플레이를 펼쳐 보인 끝에 동료 한국 선수를 판정으로 꺾고 태극마크 한을 씻어냈다.

이후 추성훈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종합격투가로 전향했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열정, 집념, 근성, 노력이 점철된 불굴의 파이터로 변신했다. 다이너마이트 2004에서 프로복서 출신 보타를 암바로 꺾는 괴력을 발휘했고 맥스에서 마이클 러마, 히어로스에서 토미, 서울대회에서 오쿠다 마사카츠를 꺾었다.

그런 추성훈은 지난해 31일, 일본 격투기계 간판스타 사쿠라바 가즈시의 안면을 일그러뜨렸다. 재일교포 4세가 일본에서 현지 본토인을 꺾었다는 사실은 묘한 쾌감. 그러나 추성훈은 또다시 한국에서 겪었던 텃새판정을 떠올릴만한 일을 겪었다. 사쿠라바는 패배 직후, 굴복하지 않았다. 비겁한 일본인은 추성훈의 다리가 미끄럽다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K-1 주최 측은 사쿠라바의 건의를 적극 재검토하기에 이르렀다.

FEG ‘사장’ 다니카와 사다하루 입김이 크게 작용한 걸까. 보스가 K-1 소속 심판진을 압박한 덕분(?)일까. 실제 다니카와 사다하루 FEG 대표는 추성훈-사쿠라바 가즈시 경기 종료 직후, 사쿠라바의 오일 의혹 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바 있다. 다나카와는 한 발 더 나아가 심판진에게 해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결국, K-1 주최사인 FEG는 11일 기자회견을 갖고 추성훈이 다리에 로션을 발랐다는 명분으로 몰수게임을 선언했다.

일본 종합 스포츠 언론매체 「스포츠나비」도 11일 1면 톱으로 추상훈-사쿠라바 최종 판결 소식을 전했다. 「스포츠나비」는 “FEG가 기자회견을 열어 추성훈 실격패를 선언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자존심 사쿠라바의 명예 회복을 반기는 듯한 눈치였다.

FEG는 추성훈이 사쿠라바와의 경기 직전, 다리에 로션을 바른 점을 반칙(?)으로 간주하고 노우 콘테스트(경기 무효)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FEG는 또 사쿠라바 측의 오일 의혹 제기를 무시한 레퍼리 등 심판진에게도 K-1 다이너마이트2006 당시 받은 수입의 50%를 토해낼 것을 촉구했다.

추성훈은 사쿠라바와의 경기 전 로션을 사용한 점이 문제될 것 없다고 봤다. K-1 히어로스 룰 규정에는 오일이나 크림, 식용유 따위의 명백하게 미끄러운 물질을 바르는 것은 금지하고 있지만, ‘로션 정도는 해당사항에 포함되지 않을 줄 알았다’고 밝혔다. 심지어, 추성훈은 경기 직전 카메라가 자신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도 로션을 바르기도 했다. “겨울철 지나치게 건조한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그 이유다. 경기 전 늘 하던 행동이었다. 현지관중도 목격했고 심판진도 봤으며 사쿠라바도 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성훈은 실격 처리됐다.

사연 많은 사나이는 11일 FEG의 판결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 내 실수였다”며 오히려 경기 무효 처리에 수긍하며 단념했다. 편견의 진수를 경험한 과거 아픈 추억 덕분(?)에 시니컬해진 듯하다. 논란 있는 판정에 대해 서 체념한 듯해 팬들은 서글프다.

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재일교포 4세의 말 못할 비애다.

데일리안 스포츠

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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