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귐의 과정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은 불안한 결과를 잉태하기 충분
첫눈에 반한다는 말에 따르면 사랑에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나 사랑의 지속도 순식간이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이성의 매력과 호감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50마이크로초(10만분의 15초)다. 대화로 상대의 매력을 판단하는 데는 90초에서 4분 정도다.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로버트 쿠르즈반 교수의 연구에서는 남녀 1만526명의 대부분이 첫 3초 동안에 얻은 인상 정보로 교제 여부를 결정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 연구팀 조사에서는 매력과 호감도, 신뢰도 등의 판단에 0.1초가 들었다. 0.1초 뒤의 판단과 0.5초, 1초 뒤에 내린 결론에 차이가 없었다. 이렇게 형성된 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상당히 오랜 시간 접촉이 필요했다. 학자마다 다르지만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길어야 7초다.
‘티핑 포인트’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블링크’(순간적인 판단)에서 “2초간의 판단이 오랜 시간의 이성적 논리 분석적인 판단보다 낫다”고 했다. 영화제작자들은 10분만 보아도 영화의 흥행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심리학자 존 고트먼은 부부의 일상대화 15분 테이프를 보고 15년 뒤에 이혼할지 여부를 95%의 정확도로 예측했다.
물론 블링크에는 상당한 전문적인 경험과 통찰이 농축되어야 한다. 마이클 르고는 ‘싱크’에서 면밀한 사고가 더 중요하다며 블링크론을 비판한다. 빼어난 외모에 압도당한 미국인들이 워런 하딩을 29대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그는 ‘최악의 대통령’이었다. 첫맛만 달았던 펩시콜라를 따라 코카콜라가 ‘뉴코크’를 개발했는데 대실패했다.
첫인상이라는 것도 실제의 사람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 1970년 미국 텍사스 휴스턴대학 의대에서는 필기 시험 뒤 면접을 통해 인상이 좋은 훌륭한 학생들을 뽑았다. 그런데 더 많은 인원이 배정되어 탈락자들도 합격했다. 그러나 탈락자들은 시험 성적이나 학교생활에서 기존 합격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미국 코넬 대학 인간행동연구소가 2년 동안 전 세계 37개 문화권 5000명을 연구한 결과, 사랑에 빠진 지 18∼30개월이 지나면 사랑과 관련된 화학 물질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냈다. 첫인상에 따른 사랑만으로 결혼 생활이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열명 중 한쌍은 국제결혼이라는 통계조사가 있다. 특히 농촌 총각 3명 중 1명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결혼이 모두 짧은 첫인상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농촌 총각들이 동남아시아에서 배우자를 선택하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순전히 첫눈에 반하는 여성을 블링크와 첫인상 이론에 의지해야 하는데, 2∼4시간 동안 많게는 400여명의 여성을 ‘골라잡기’ 한다. 에번 슈워츠가 ‘선택의 패러독스’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정보가 너무 많거나 선택 사항이 많으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포자기 한다.
비록 선택을 해도 맞는지 불안해진다. 아무리 첫눈에 반했다고 한들 그 화학작용이 수십 개월 내에 바닥이 난다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그 첫인상에 의지하는 것이 위험스럽기만 하다. 그렇다고 농촌 총각들이 이성에 대해서 블링크를 이룰 만큼 전문적인 식견이나 직관이 뛰어날까? 무엇보다 남성들에게 선택권이 있고, 여성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는 경우라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시민단체와 정부에서는 결혼 이후에 적용될 ‘코시안’이나 동남 아시아 여성의 적응, 지원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월 29일 오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다문화가족지원법´ 제정을 위한 입법공청회를 열었다. 다문화가족지원법은 국제결혼이 많아지면 문화적 차이가 많은 가족들에 대한 지원을 모색하는 법이다.
발제자는 다문화가족을 지원하는 목적이 그들이 한국 사회에 조기에 적응해 사회를 통합하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요컨대, 그들이 한국에 정착하는데 필요한 지원책의 제공 규정이다.
이는 2006년 정부가 밝힌 안정적인 체류지원, 조기적응 및 정착지원, 아동의 학교생활적응지원, 안정적인 생활환경 조성 등을 골자로 ´여성결혼이민자 가족의 사회통합 지원 대책´과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일방적 동화주의’는 경계하면서, 지원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비판은 타당하다.
다만, 정책적 명분은 타당하지만, 모두 사후 약방문일 수 있다. 법무부의 ´재한 외국인 등의 처우기본법´(외국인기본법)이나, 국가인권위원회의 출신국가, 출신민족, 인종, 피부색, 가족형태 등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도 국제 결혼과 가족 형성에 관해서는 사후적 규정이다.
결혼은 단순히 순간적인 호감만으로 결정하기에는 여러 변수가 있다. 또한 한국 남성위주의 일방적인 결혼 행태를 필연적으로 문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는 불법적인 중개여부를 떠나 존재하는 현재 국제결혼의 근원적인 문제이다.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라 사전에 서로 면밀하게 사귀는 과정을 국가와 시민단체가 마련해줄 수는 없는 것일까?
사귐의 과정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은 불안한 결과를 잉태하기 충분해 보인다. 사후가 아니라 사전방책의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KBS <러브인 아시아> 같은 경우에도 사회적 의미는 높이 평가할 수 있지만 사후적인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사태의 심각성을 생각해서, 시민단체와 연계해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서 농촌 총각 국제 커플 연결을 마련해줄 수는 없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