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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과의 전쟁


입력 2007.06.27 10:15 수정 2013.05.22 16:52        김헌식 문화평론가 (codessss@hanmail.net)

털은 공공의 적인가

얼마 전 SBS <야심만만>에서 가수 아이비가 콧수염 면도를 한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재미있으면서도 낯설었다. 아이비는 "콧수염을 미는 면도기를 가지고 있다. 밀수록 더 굵게 났다."라고 했다. 대중문화에서 여신으로 추앙을 받을 여성 스타가 털을 민다는 사실은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 연예인들은 털과의 전쟁을 벌일 만도 하다. 털은 동물을 상징하고 인간은 털의 박멸을 통해 동물이 아니라 인간, 아니 신이라는 점을 구가할 수 있으면 좋기 때문이다. 스타들은 더욱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털과의 전쟁을 벌인다. 어디 연예인들만일까?

노출의 계절, 털과의 전쟁은 개시된다. 날씨가 더워지면 짧은 치마와 반바지, 민소매 상의를 입는 등 노출의 정도가 증가한다. 더구나 올해는 미니스커트 열풍이 가실 줄을 모른다. 이제는 마이크로미니를 지나 ´나노 미니(nano-mini)´를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노출되는 신체부위에 신경이 가게 되는데 팔과 다리에 난 털 때문이다. 여드름이나 흉터는 어느 정도 화장을 통해 덮을 수 있지만 털은 곤란하다. 노출의 계절에 털은 공공의 적이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털깎기, 제모다. 본격적인 피서 철에 수영복을 입으려면 ‘제모’라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제모에는 면도날, 제모크림, 왁싱, 여성면도기, 제모기, 레이저 등 여러 가지 제품과 수단이 사용된다. 관련 산업이 팽창 중이라는데, 인터넷에서는 제모기, 제모젤, 제모 패드 등 100여종에 이르는 제모 상품들이 팔리고 있다. 작년에 하루에 1000여개 이상 팔렸다. 전년 대비 400% 이상 팔린 것이었다. 유럽에서 16세기에 아몬드와 비둘기, 벌꿀, 달걀노른자 등을 사용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분명 털 깎기는 산업화 되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털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을까? 여기에서는 남성보다 여성의 면도여부가 궁금해질만 하다. 한 면도기 제조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 40.8%가 매일 면도를 한다고 대답했다. 59.4%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을 경우 ‘꼭 면도를 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거꾸로 많은 여성들이 몸에 난 털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 털을 뽑는데 시간을 쏟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모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 전문가들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제모왁스, 제모용 테이프, 족집게 등으로 자칫 모낭염, 접촉성피부염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모낭염은 모낭에 세균이 침투해 화농성 염증이 일어난 것이다. 모낭 염증에 색소가 침착되기도 하는데 몇 달 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매끈한 다리를 만들려다가 오히려 여름 내내 긴 옷만 입게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여름철 제모는 여성들만의 전유물에서 남성들로 이동 중이라고 한다. 남성은 턱의 면도를 잘 하는 것이나 코털에 대해서 신경을 더 쓰면 되었다. 팔과 다리, 가슴, 겨드랑이에 난 털은 덜 신경을 써도 되었다. 최근에는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동안 신드롬이나, 깔끔한 인상의 ´훈남´이 대세가 되면서 남성의 털은 수난기에 접어들고 있다.

남성미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던 털이 결코 남성의 자랑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제 남성들 사이에서 털은 매끈한 피부 관리를 방해하는 골칫덩이다. 영업직이나 서비스업 등 사람을 대하는 일이 많은 남성들이 털을 더욱 제거하려고 한다. 제모는 단순히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생계 혹은 성공을 위한 방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제모 용품을 구입하는 남성들의 증가하고 있다. 한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는 제모용품 구매 남성 고객 최근 2년 사이 200%가량 크게 늘어났다. 반면 여성들의 구매는 매년 50∼60%가량 증가했다.

최근 한 조사에서 남성들이 이마의 제모를 많이 한다고 했다. 무슨 이유일까? 털은 관상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 좁은 이마는 좋지 않은 인상, 대인관계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때문에 한 전문 클리닉 남자 환자 중에 59%가 좁은 이마의 제모로 좋은 인상을 갖기를 원했다. 그 다음이 턱, 볼의 제모를 원했다. 여기에서 제모는 완전 제모다.

탤런트 송일국이 드라마 <주몽> 속에서 주몽의 청년기 연기를 위해 턱수염을 영구 제모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매번 촬영에 턱의 털은 귀찮은 존재가 된다. 하나하나 다 뽑아내면 좋겠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아프기도 무지 아플 것. 영구 제모는 레이저치료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레이저라고 해도 기존의 레이저는 수차례 제모시술을 해도 완벽한 제모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횟수를 줄이면서 효과 보는 방법이 생겨나고 있다는데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어쨌든 레이저로 아예 말라죽이고 태워 죽인다. 이제는 아예 제모만 전문적으로 하는 병원도 생겨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털과의 전쟁의 역사 아닌가 싶다. 특히 문명의 역사는 이렇게 털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털은 반문명이었고 야만이었다. 털은 짐승계에 속했다.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는 존재 증명을 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다. 털이 많으면 짐승이라거나 진화가 덜되었다고 하면서 털이 많은 이들을 학대(?)해왔다. 문명의 시대가 번창할수록 더욱 털은 동물임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인간은 동물임이 맞지 않는가. 털이 많은 사람들은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여름만 돌아오면 두려워진다.

여성에게는 더욱 가혹해온 것이 사실이다. 여성 중에는 다리와 팔의 털 때문에 긴바지나 긴 셔츠만 입고 여름을 보내는 경우도 많았다. 털에 대한 선입감이 여성에게 더 시선의 감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름철이면 잘려진 털이 휘날리는 이유일 것이다. 날마다 앉아서 털을 깎는데 많은 비용을 털과의 전쟁에 바쳐야 한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시간은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아니라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털을 깎는 모습을 상상하면 우습기도 하고 연민스럽기도 하다. 털을 반드시 깎아야 하는 것일까? 털과의 전쟁이 제모에 대한 강박관념을 부추기며 뷰티 산업적인 차원에서 악이용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헌식 기자 (codesss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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