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기자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레너드 코페트는 ‘포수는 투수를 리드하고 전체 경기를 조율하는 중요한 포지션’이라고 규정지었다.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저서에서 포수의 중요성을 투수 이상으로 설파했다. 그만큼 야구경기에서 포수라는 포지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래서 ‘대형포수 하나면 10년이 거뜬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올 시즌 프로야구도 포수의 활약에 따라 각 팀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 인사이드워크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이드워크다. 인사이드워크란, 한 마디로 포수의 전체적인 리드 능력을 일컫는다. 타자 또는 구종에 따라 포구 자리를 옮기거나 허를 찌르는 볼 배합을 요구하는 등 두뇌 플레이가 뛰어난 포수들은 인사이드워크가 훌륭하다.
인사이드워크는 볼 배합과 관련한 투수리드뿐만 아니라 투수에게 믿음을 주고 안정시키는 능력도 포함된다. 투수의 제구가 흔들릴 때는 조금씩 자리를 바꿔 앉으며 투수에게 심적인 안정감을 주는 것도 인사이드워크의 하나다.
포수는 한 팀의 사령관이다. 투수에게 사인을 내고 볼 배합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때때로 전체적인 수비위치까지 조정한다. 포수는 투수를 포함한 나머지 8명의 수비수를 마주보고 있는 위치에 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꿰뚫고 전체적인 경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그라운드 안에서 만큼은 포수가 감독을 대신하는 총사령관이다. 우리팀 투수와 상대팀 타자에 대한 분석은 물론,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대처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포수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적인 인사이드워크가 가능하다.
국내에서 인사이드워크가 가장 뛰어난 포수로는 단연 박경완(SK)이 손꼽힌다. 올해로 어느덧 데뷔 17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박경완은 공부하는 포수로 유명하다. 풍부한 경험과 노련미에 기록 분석까지 곁들이니 박경완의 인사이드워크는 발군일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김동수(현대)·진갑용(삼성)·홍성흔(두산) 등 오랜 기간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는 포수들도 인사이드워크가 좋기로 소문났다. 주전으로 출장한 기간이 많은 만큼 우리 투수와 상대 타자에 대한 분석이 축적된 것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 물론 꾸준한 자기계발도 빼놓을 수 없다.
▲ 블로킹·도루저지
포수에게 투수리드와 볼 배합을 비롯한 인사이드워크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블로킹·도루저지와 같은 수비능력이다. 포수가 블로킹이 약하다면 투수는 변화구를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포수의 도루저지 능력이 떨어지면 투수는 주자가 있을 때 제구가 흔들리거나 안정된 투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안정된 포구와 블로킹 그리고 도루저지까지 뛰어난 포수와 호흡을 맞출 경우, 투수는 포수를 믿고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할 수 있다. 포수는 투수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안방마님이 되어야 한다.
국내에서 포구가 가장 안정적인 포수로는 진갑용이 첫손가락에 꼽힌다. OB 시절에만 하더라도 진갑용은 ‘블로킹이 서툴다’는 지적을 달고 다녔다. 하지만 삼성에서 조범현 배터리코치를 만난 후 수비의 안정감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진갑용의 안정된 포구 자세와 재빠른 대처는 투수들로 하여금 변화구를 맘껏 던질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박경완·홍성흔·조인성(LG)·김상훈(KIA) 등도 블로킹이나 포구가 좋기로 정평이 나있다.
도루저지는 어떤 면에서 양날의 검이다. 도루저지는 포수의 힘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투수의 견제와 퀵 모션 그리고 내야수들과의 호흡이 일치되어야 도루저지의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도루저지에 민감한 포수는 주자를 잡기 위해 바깥쪽 직구와 같은 단조로운 사인을 고집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팀플레이와 볼 배합이라는 측면에서 도루저지는 팀에 저해되는 부분이 될 수도 있는 것. 물론 모든 포수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포수의 도루저지는 막을 수 있는 선에서 확실하게 막으면 되는 부분이다.
▲ 포수에 울고 웃고
독주체제를 구축한 SK에는 박경완이라는 리그 최고 포수가 있다. 지난해 공수 양면에서 극심한 부진으로 노쇠화 조짐을 보였던 박경완은 올 시즌 공수 양면 모두 부활에 성공했다. SK가 팀 방어율 1위(3.27)에 오른 것은 박경완의 효과적인 인사이드워크가 크게 작용했다.
특히 SK가 가장 많은 1점차 승리(13승)를 거둔 것도 승부처에서 박경완의 효과적인 볼 배합이 결정적이었다는 평. 게다가 지난해 0.242에 불과했던 도루저지율은 올 시즌 0.423까지 상승했다. 타격에서도 타율 0.250·8홈런·38타점으로 여전한 한 방을 과시하고 있다.
2위를 달리고 있는 한화에는 신경현이 붙박이 주전포수로 자리매김한 것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인사이드워크를 빼면 이렇다 할 장기가 없었던 신경현은 올 시즌 도루저지율에서 리그 전체 1위(0.482)에 올라있다. 지난해까지 통산 도루저지율은 0.268. 올해 도루저지의 비법을 터득한 것.
신경현이 선발 출장한 경기에서 한화는 21승16패, 승률 0.568를 기록했다. 시즌 팀 승률(0.543)보다 높은 수치다. 특히 류현진·정민철과 등 에이스들과 호흡을 맞춰 13승5패를 합작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진정한 ‘수비형 포수’로 한 단계 발돋움했다.
‘서울라이벌’ LG와 두산도 포수 덕을 보고 있는 팀들이다.
올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조인성은 그야말로 ‘몬스터 시즌’을 보내고 있다. 인사이드워크는 떨어지지만,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측면에서 최고로 평가받은 조인성은 타격에서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하고 있다. 올 시즌 타율 0.299·8홈런·43타점으로 타격에서 8개 구단 포수 중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특히 8개 구단 주전포수 중 상대의 도루시도(45회)가 가장 적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포수의 도루저지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 바로 상대의 도루시도다. 도루저지가 뛰어난 포수를 상대로는 발 빠른 주자들도 애초에 도루 시도를 함부로 감행할 수 없고, 투수는 상대적으로 마음을 편히 먹고 피칭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대이상으로 선전하고 있는 두산은 주전포수 홍성흔이 잦은 부상으로 올 시즌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지만, 군에서 제대해 복귀한 채상병이 힘을 보태고 있다. 채상병은 인사이드워크나 수비적인 면에서 홍성흔에 뒤질게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다만 정확히 3할인 도루저지율은 조금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위권으로 처진 KIA와 롯데는 포수가 약점인 팀들이다. KIA는 8년차 주전포수 김상훈의 부진이 아쉽다. 2003년 역대 한 시즌 최고 도루저지율(0.554)을 기록한 김상훈의 올 시즌 도루저지율은 0.246에 불과하다. 주전포수 중 현대 김동수(0.219) 다음으로 좋지 못하다.
특히 인사이드워크에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볼 배합이나 투수리드에 있어 젊고 어린 투수들을 이끌어나가기에는 단조롭고 투박하다는 지적이다.
고졸포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강민호도 시즌 초반 기세가 사그라졌다. 타격은 괜찮지만, 인사이드워크나 수비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에 롯데를 상대하는 팀들은 적극적으로 도루를 시도하고 있다. 강민호의 도루저지가 눈에 띄게 약해졌기 때문.
올 시즌 강민호는 가장 많은 도루시도(66회)를 허용했고, 그 중 저지한 경우는 19차례에 그친다. 도루저지율은 0.288. 볼 배합이나 인사이드워크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체력적으로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의 방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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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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