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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룡’을 말한다…절권도, 그리고 불행한 가족사


입력 2007.07.22 18:44 수정         이충민 객원기자 (robingibb@dailian.co.kr)

미국출신 동양인 영화배우 이소룡은 1970년대 최고의 격투 전문 배우였다. 영화 정무문(1972), 맹룡과강(1972), 용쟁호투(1973) 등에서 보여준 그만의 독창적인 격투 기술은 대단했다.


이름 하여 절권도. 패쇄적인(?) 중국 쿵푸 문파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격투기술을 조합해 최상의 전력을 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격투기술이 절권도다. 보여주기 위한 격투가 아니라 실전을 위한, 실전에 강한 효율적인 격투기술이다.

이소룡의 끊어 치는 정권은 프로복서의 펀치만큼 파괴력을 지녔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내뿜는 발차기도 태권도나 가라데의 발차기이상 위협적이다. 급소를 향한 전광석화 타격 등 이소룡이 창시한 절권도는 팬들의 시선을 모으며 쿵푸 붐으로 확대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소룡 자신도 밝혔듯, 절권도를 가리켜 쿵푸나 무술이라 칭하지 않았다. 절권도는 쿵푸나 여타 무술처럼 준비된 품새, 즉 기본동작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형의 원초적인 격투 기술이 절권도의 동기라 할 수 있다.

이소룡은 미국에서 절권도 강좌를 열며 절권도 전파에 힘을 실었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절권도 도장이 생겨날 정도로 이소룡과 절권도는 유명해졌다. 특히 절권도와 상관없이 엄지손가락으로 콧볼을 튕기며 ‘아쵸오’라고 기합을 내지르는 이소룡의 특이한 버릇은 남녀노소 연령 할 것 없이 유행동작이 되기도 했다.

이소룡은 취권의 ‘성룡(재키찬)’과 더불어 남자의 로망인 강해지고 싶은 욕구를 충족해 준 격투 전문 영화배우 대표주자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영화계에서 대역을 허용치 않는 살신성인 파 무술인 연기자로도 유명했다.

그러나 이소룡은 최근에도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성룡과 달리 불행한 사고로 단명했다. 지난 1973년 7월20일 오후, 절친한 여배우 띵 뻬이의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된 것. 이소룡은 앰블란스에 몸을 싣고 병원으로 향했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고작 33살, 의문의 죽음이었다. 당시 이소룡이 주인공으로 출연 중이던 ´사망유희(死亡遊戱)´는 안타깝게도 그의 유작이 됐다. 영화 마지막 촬영 분을 앞두고 절권도 창시자가 팬들 곁을 쓸쓸히 떠난 것이다.

이소룡의 뜻밖의 단명 소식에 전 세계 팬들이 슬퍼했다. 영화인 일반인 할 것 없이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역사상 최고의 격투 전문 배우를 잃었다고 외쳤다. 문제는 이소룡의 불행한 죽음이 이소룡 자신에게만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1965년 배우자 린다 에머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이국호(브랜든 리)는 지난 1993년 3월31일 영화 ´크로우´ 막바지 촬영 도중 총기사고로 숨졌다.

불가사의한 소재를 주제로 삼는 MBC 신 감각 예능프로그램 ´신비한TV 서프라이즈´도 22일 이소룡의 불행한 가족사를 다뤘다.

린다 에머리가 증언하길 이소룡은 숨지기 몇 달 전 전 자신이 묻힐 무덤 위치를 알려주고, 100만 달러의 사망보험도 가입했다고 한다. 린다 에머리는 또 이소룡이 살아생전 자신은 저주받은 몸이라고 밝혔다. 이소룡 가문은 안타깝게도 유일하게 남은 딸 이향응(셰넌 리)을 통해서 유지되고 있다.

한편 이소룡의 불행한 가족사를 다룬 신비한TV 서프라이즈는 예언가 ‘솔로그’에 대해서도 다뤘다. 솔로그는 1997년 영국 다이애나 스펜서의 사망과 미국 9.11 테러 등을 예언한 인물이다. ‘솔로그 정체’는 미국 출신의 평범한 40대 후반 시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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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민 기자 (robingibb@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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