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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전교조 대항마’의 신념에 찬 외침


입력 2007.08.24 17:36 수정        

‘학교는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다’의 저자 정재학 신간 ‘전교조의 정체’ 출간

“어느 부모도 원하지 않은 친북반미 교육에 전학생의 혁명전사화”…생생한 고발 담아

‘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평생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기억하는 인물은 연인이나 부모만이 아니다. 또래들과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혹은 어린 날의 치기로 학창시절 반항-그것이 비록 야간자율학습을 ’빼먹는‘ 수준의 소소한 것일지라도-을 했던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관대하게 눈감아주는 대신 에둘러 훈계하던 선생님, 엄하게 매를 들어 기강을 다스리시던 선생님 등 지나고 보면 나를 이끌어주었던 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사은의 정은 깊다.

‘전교조의 정체’(정재학 저, 동문선, 343쪽, 12000원)
그러나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퇴색했다. ‘스승’의 자리는 일선 학교 교사 대신 학원강사나 전문과외강사가 차지하면서, 그리고 내리사랑의 따스한 불꽃 대신 이념의 붉은 띠와 강성 구호가 높아지면서 스승의 올곧은 목소리는 힘을 잃고 있다.

‘전교조의 정체’(정재학 저, 동문선, 343쪽, 12000원)는 이같은 교육현실을 바라보는 한 교사의 안타까운 물음이자 질문을 담고 있다.

89년 창립, 99년 합법화 이후 논란의 중심에 서온 전교조는 ‘개혁과 진보’라는 초기 궤도에서 이탈하여 정치적 탈선을 향해 과감한 질주를 감행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정재학씨는 전교조의 텃밭인 전라남도의 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전교조와 맞짱뜨는 ‘투사’를 자처하는 인물. <데일리안>에서 연재된 글들을 모은 이 책은 일반적 컬럼집으로 치부하고 넘기기엔 넘친다.

정씨는 과거 ‘학생의, 학생을 위한, 학생에 의한’ 교육을 부르짖던 전교조의 현재를 조명하고 이들의 실체를 해부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책의 어조가 강경하고 신념에 찬 것도 이 때문이다.

정씨는 교권추락과 학생·학부모 등 교육수혜자들이 공교육에 가지는 불신 등을 키운 8할은 전교조에 있다고 일침한다. 정씨는 전교조의 문제점, 특히 전교조가 모태인 한총련의 폐단인 독단과 독선, 아집과 몰역사성, 집단이기주의와 자가당착성 등을 포함한 채 전진하고 있다는 데 강한 우려를 나타낸다.

더욱이 전교조를 향한 대중의 싸늘한 시선과 자정 요구에도, ‘친북반미’의 오명을 쓴 원인이 내부에 있음에도 외면하는 전교조의 ‘직진정신’에 정씨는 날카로운 비판을 주저하지 않는다.

“학생들을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를 지내는 전교조. 좌익 이념을 실행할 미래의 동지를 확보하기 위해 ‘한고학련’을 만들어 학생적화사업을 벌이는 전교조. 성추행한 교사를 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징계조차 못하고 다시 교단에 서도록 하는 전교조. 국가공무원이자 신성한 직업인 교사를 단순한 노동자로 규정짓고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인 혁명과업을 위해 끊임없이 갈등을 유도하고 투쟁에 나서는 전교조. 자신의 아이들은 전교조 없는 지역 명문고로 전학까지 보내며 사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전교조. 남의 자식은 피켓 들고 재단 비리 고발하는 데 앞세우기에 여념이 없는 전교조. ‘참교육’이라는 달콤한 허언으로 선량한 교사를 끌어들이고 나아가 학생과 학부모까지 끌어들여 떼지어 몰려다니며 온갖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집단이 전교조다.”

정씨의 ‘전교조 고발’은 전교조의 전방위적 방해공작과 협박, 고소고발로 이어졌지만 그는 ‘아직은 꿋꿋하게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씨는 ‘진짜 교육은 부모가 마음놓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것’이자 ‘아이들이 선생님을 마음에서 우러나와 존경하고 그 아이들이 1~20년 후 학창시절을 돌아봤을 때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올바른 길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전교조는 ‘사소함’을 ‘대의’의 미명으로 억압하고 소통보다 일방적 주입에 주력하는 ‘거짓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정씨의 지적.

한때는 전교조의 열성적인 투사로서 선봉에서 투쟁했다는 정씨의 고발은 꽤 설득력있다. “학생은 노동 운동과 사상과 혁명의 도구일 뿐이지 목표가 아니다. 학생을 완성된 인격체로 기르는 보다 노동 운동과 미군 철수가 목표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자본가와 미국을 쫓아내자고 가르치지, 정대로 개인의 자아를 완성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라고 하지 않는다.”

김정일 만세를 부르지 않아도 북한의 소외되고 핍박받는 아이들이 행복과 평화를 누리는 통일, 사소한 일상의 고마움을 되새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통일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통일이라고 강조하는 정씨의 ‘증언’은 전교조의 폐해에 휘둘리는 학생과 학부모를 향한 안타까운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어느 부모가 자신의 아들딸이 미군 부대 앞에 몰려가서 죽창을 겨누고 농성을 벌이는 등, 노동(혁명)투사로 살아가길 원하겠는가? 어느 부모가 이런 교육을 부탁했단 말인가?”

정씨의 물음이 무겁고 씁쓸한 것은 전교조의 권력화에 맞서는 미약한 힘이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그들의 변함없는 생명력에 압도된 자신들이 부끄럽기 때문일까.

스승을 스승답게 만드는 것은 교사 자신의 양심과 신념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교육 수혜자와의 협력 또한 일조한다. 1980년대 우리의 가슴을 덥혔던 ‘호랑이 선생님’의 부활은 전교조의 권력과 이기주의에 가려진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정재학씨의 그것처럼 멍투성이의 영광뿐일지라도 외면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값어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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