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무마 대가와는 무관한 듯..인사철 앞둔 청탁 또는 관행에 무게
정상곤(53.구속기소)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6천만원의 성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건네진 돈이 여러 차례 나눠 긴 시일에 걸쳐 전달된데다 세정 최고 책임자에 대한 뇌물치고는 규모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 전 청장은 지난해 8월26일 서울 모 한정식당에서 정윤재(구속) 전 청와대 비서관이 동석한 가운데 부산 건설업자 김상진(42.구소기소)씨와 저녁식사를 한 뒤 헤어지면서 김씨로부터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현금 1억원을 받았다.
정 전 청장은 구속 뒤 받은 1억원의 용처와 관련 면회온 지인들에게 "(1억원은) 내 돈이 아니다. 말하기 매우 민감하다. 내가 입을 열면 다친다"고 말하면서 세무조사 무마에 또 다른 배후가 있음을 암시했다.
이때문에 국세청 내부의 상급라인 또는 또 다른 권력핵심부가 세무조사 무마에 관련됐을지 모른다는 관측이 제기돼 왔다.
◇특정사안 세무조사 관련 대가는 아닌 듯 =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대로라면 6천만원을 4∼5차례에 걸쳐 나눠 준데다 시기도 지난해 9월에서 12월까지 상당히 긴 기간이어서 김상진씨 관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에 대한 상납으로는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만일 전군표 국세청장이 김씨 관련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돈을 받았다면 정 전 청장이 1억원을 받은 직후 한꺼번에 돈을 줬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를 여러 차례에 걸쳐 줬다면 정 전 청장이 건넨 것으로 알려진 6천만원 안에는 김씨로부터 받은 1억원 외에 다른 돈이 섞여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신의 인사청탁·관행 유력 = 정 전 청장이 현직 국세청장에게 돈을 건넸다면 자신에 대한 인사 청탁이 목적이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한 관계자는 "정 전 청장이 준 돈은 인사청탁 명목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1일자로 부산지방국세청장에 부임한 정 전 청장은 부임직후부터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자신의 인사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당시 정 전 청장은 1급으로 승진해 서울청장 또는 중부청장으로 가는 것을 절실히 희망했던 것으로 국세청 안팎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 전 청장의 노력에도 불구, 승진 대상자에서 빠지자 부산청장 유임을 강력히 희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 전 청장이 국세청장에게 돈을 줬다면 인사를 염두해 두고 업무보고 등 상경하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지속적으로 상납금을 줬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그러나 12월 28일 이뤄진 인사에서 부산청장과 같은 급이지만 국세청 본청 부동산납세관리국장이라는 그다지 요직이 아닌 보직으로 전보돼 ´인사청탁 로비´는 실패로 끝났다.
이와 관련해 정 전 청장이 전군표 국세청장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면 인사실패에 대한 감정때문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당시 용퇴설이 나돌던 정 전 청장이 본청에 입성한 자체만으로도 로비는 성공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어 검찰의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인사청탁을 염두해 뒀을 수도 있지만 상납관행에 따라 돈을 줬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인사청탁의 경우 이 보다 더 큰 돈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향후 검찰 수사에서 금품전달사실이 확인되고 돈의 성격이 관행으로 드러날 경우 세정 주무부서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되는 것은 물론 공직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
◇검찰 혐의 입증 쉽지 않을 듯 = 검찰에서 흘러나온 여러가지 발언을 종합해 보면 정 전 청장이 국세청장에게 돈을 준 것은 일단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확한 액수와 일시, 횟수, 전달방법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은 뇌물의 특성상 현금이 오가는데다 목격자도 없는 ´폐쇄성´ 때문에 입증하기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정 전 청장의 일부 진술 외에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데다 정 전 청장의 진술도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전해져 수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도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뇌물의 경우 당사자 진술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과거 판례도 있지만 공판중심주의 재판이 이뤄질 경우 증거로 인정받기 쉽지 않아 향후 수사는 정 전 청장의 진술을 뒷받침할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