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재미없는 영웅보다 이유 있는 악역이 낫다?!


입력 2007.11.21 17:39 수정         이준목 객원기자

사극 속 선악 경계 허무는 현실적 인물들

홍국영에서 설인귀에 이르기까지

최근 높은 인기를 달리고 있는 MBC 월화사극 <이산>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캐릭터은 이서진이 연기하는 주인공 정조 이산이 아니라, 바로 정조의 책사 홍국영(한상진)이다.


극중 정조의 오른팔로서 명철한 두뇌를 발휘하여 정조가 왕위에 등극하는데 일등공신이 되는 인물이 바로 홍국영이다. 현재 방송에서 아직은 세손의 지위에 있는 정조가 정적들로부터 여러 차례 위험을 맞이할 때마다, 매번 특유의 기지로 주인을 위험에서 구하는 홍국영의 활약상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드라마의 인기 급상승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홍국영이라는 인물의 정체성이다. 역사적으로 홍국영은 정조 즉위 후 권력의 최정점에 올라 무소불위의 세도정치를 휘둘렀으나 지나친 독선과 전횡으로 인하여 오히려 정조에게 버림받고 몰락한 인물이다.

현재 극중의 홍국영은 주인공인 정조의 편에 서있는 인물이기에 아직까지 활약상이 돋보이지만, 엄밀히 말해 홍국영의 문제해결 방식이나 처세는 소위 말하는 ‘정의’나 ‘공명정대함’과는 거리가 멀다. 홍국영이 정조를 돕게 되는 과정도 흔히 드라마에서 보듯 우정이나 의리 같은 이상적인 요소보다는, 현실의 이해관계와 개인능력에 따른 공생적 계약관계에 가깝다.

오히려 때로는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한 홍국영의 시니컬한 모습은, 정치적인 대의명분이나 도덕적 이상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정조 측 인물이 지닌 현실적 한계를 보완해주는 ‘필요악’ 같은 캐릭터로 보이기도 한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 <이산>, <태왕사신기> 등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사극은 비범한 인물들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한 ‘영웅주의’ 사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영웅의 활약상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드라마들은 흔히 권선징악 구도를 내세우곤 한다.

그러나 복잡한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들의 캐릭터, 정치적 이해관계 등을 모두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간단하게 정의내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주인공과 그를 따르는 집단은 언제나 정의롭고, 그에 반하거나 적대하는 세력은 모두 악이라고 규정할 수 있겠는가.

<이산>의 홍국영이나 <해신>의 염장(송일국), <주몽>의 금와, <왕과나>의 조치겸(이상 전광렬), <대조영>의 설인귀(이덕화) 등은 이런 드라마의 단선적인 선악 구도를 보완해주는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은 극중에서 선과 악의 경계선에 놓여있거나, 아니면 악임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나름의 명분과 원칙이 있는 합리적인 인물들로 설정된다.

대조영(최수종)이나, 담덕(배용준), 주몽(송일국)같은 캐릭터들은 ‘타고난 영웅’으로 묘사된다. 태어날 때부터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특별한 운명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홀로 완벽하고 초인간적인 모습으로 보는 이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하거나, 항상 원리원칙이나 대의명분만을 따지는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 종종 주변 인물들까지 곤경 속에 몰아넣는 경우도 예사다.

반면 <주몽>의 금와는 한때 주몽의 든든한 조력자였지만,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하여 어쩔 수없이 적대하게 되는 인물로 설정된다. <대조영>의 설인귀는 변방 거란족 출신의 장군으로 당나라 주류 세력들의 차별과 질시 극복하고 성공신화를 여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주인공에 대한 이유 없는 라이벌의식과 질투심에 불타는 대소(김승수)나 이해고(정보석)에 비하여 금와나 설인귀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행동하며, 때로는 자신의 적까지도 포용하는 공명정대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근의 드라마는 그야말로 현실적인 인물들이 대세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정직하지만 무기력한 이상주의자였던 최도영(이선균)보다 유능하지만 부도덕한 인물이었던 장준혁(김명민)이 오히려 더 많은 대중의 공감대를 끌어냈던 이유다. 때로는 세속적인 욕망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초라한 약점을 드러내기도 하는 극중 현실적인 ‘악역’ 캐릭터들이말로, 공허한 영웅보다 시청자들에게 오히려 ‘인간미’있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관련기사]

☞ 조선시대 세도정치를 처음 꿈꾸었던 ´홍국영´


☞ ‘다모’ 폐인들 ‘이산’에 오르다


데일리안 스포츠 미디어

이준목 기자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이준목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